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비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처럼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렸을까. 필자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당나라 위징魏徵을 떠올린다. 지독한 직언으로 탐욕스러운 이세민을 시대의 성군으로 우뚝 세웠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위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 박근혜 대통령은 직언을 하는 비서를 옆에 두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관료들의 비정상적 행위가 점입가경이다. 막장 연출극이 어디까지 갈지 그 끝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런 위중함을 초래한 것은 자연재해도, 해외요인도, 국민도, 경제인도 아니다. 단연코 대통령과 일부 그 추종자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는 기필코 100% 인재라고 단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위징魏徵이 청와대에 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궁금해진다. 위징은 서기 600년대 중국 당나라의 정치가다. 역사상 문화가 가장 융성한 제국을 꼽는다면 로마제국(유럽)과 당나라가 1순위일 것이다. 당의 전성기를 연 사람은 당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은 태자였던 형과 동생을 죽이고 당태조인 아버지 이연을 겁박해 황제에 오른 이다. 더구나 동생의 처를 후궁으로 앉힌 패륜아에 불과한 사람이다.

이랬던 이세민이 어떻게 위대한 당제국을 건설한 지도자가 됐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의 옆에 불세출의 비판가이며 직설가인 위징이라는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징은 이세민의 정적이던 형(태자)의 신하였다. 태자에게 야욕이 많은 이세민을 죽이라고 줄기차게 건의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세민은 철천지원수 같은 위징에게 나라를 경략할 중책을 맡긴다. 이세민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뜻에 반해 직설적으로 간하여 내가 잘못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위징을 중용했다.”

태종은 위징의 잔소리 탓에 좋아하던 사냥이나 연회를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몰래 하려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사냥하고 연회하는 시간이 어디 있느냐. 그 시간에 더욱 정사에 매달려야 국민을 위하는 위민정치를 할 수 있다”고 다그쳤다고 한다. 이세민의 황후도 한몫했다. 그도 사람인지라 잔소리를 들으면 그를 제거하려 했다. 그때마다 황후는 이렇게 말했다. “직언하는 신하를 둔 것은 당신이 성군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슬피 울며 “내가 가진 세개의 거울 중 한개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세 개의 거울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의관을 보는 거울, 둘째는 패망한 역사를 보며 배우는 정치 거울, 셋째는 그릇됨을 비추는 거울 ‘위징’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은 무엇을 한 걸까. 이세민이 말한 ‘세개의 거울’ 중 하나의 역할이라도 했을까. 대통령의 무분별한 성형수술은 의관을 보는 거울이 없음을 보여준다. 비정상적인 통치행위는 정치의 거울이 없음을, 아무도 대통령의 잘못을 직언하지 못했다는 것은 위징과 같은 그릇됨을 비추는 거울이 없음을 방증한다.

위징과 같은 비서가 있었다면 박근혜는 그를 쳐냈을까 아니면 중용했을까. 사람들은 ‘쳐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간 대통령의 인사를 통해 어림잡을 수 있다. 역시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잔소리꾼 위징을 빛나게 만든 건 이세민이다. 또한 이세민을 성군으로 우뚝 세운 건 위징이다. 양손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