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전봇대를 뽑을텐가
누구를 위해 전봇대를 뽑을텐가
  • 김다린 기자
  • 호수 221
  • 승인 2016.12.28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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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프리존법 리스크

행정기관이 30일 동안 답을 하지 않으면 관련 규제가 풀린다. 제품의 안전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면 일정기간 시범사업을 펼칠 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법이 다 있나. 이름하여 ‘규제프리존법’이다. 문제는 이 법이 대기업만을 위한 요술방망이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 규제프리존법에는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를 구분하는 기능이 없다.[사진=뉴시스]

지역 균형 발전의 ‘만능열쇠’로 꼽히는 법이 있다. 이 법은 자율주행차, 드론,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선결 조건이기도 하다. 법의 이름은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법)’. 골자는 수도권을 뺀 14개 시도가 신청한 27개 전략산업의 규제를 풀고 재정과 세제를 함께 지원하는 것이다.

지자체와 국회, 재계는 이 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한다.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별로 특화된 미래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중요한 카드라는 게 이들의 주장. 기획재정부는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되면 향후 5년간 17여만명의 고용과 14여조원의 투자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도 이 법은 힘을 잃지 않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지자체장들도 여ㆍ야를 가리지 않고 이 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직무대행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와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 처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야당 의원은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규제프리존법의 입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대체 어떤 법이길래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걸까. 꼼꼼히 살펴보자. 이 법을 관철하는 키워드는 법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규제 완화’다. 이 법이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일반특례, 입지특례, 산업별 특례로 구성된 총 78건의 규제 특례가 나열됐다. 이중 일반특례와 입지특례는 총 26개로 전국 모든 규제프리존에 공통 적용된다. 산업별 특례는 개별 지역특화산업과 관련된 것으로 해당 지역에서만 효력을 낸다. 특별법에 없는 규제라면 네거티브 방식(어떤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허용 행위만 예외적으로 규정)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정의와 방식에서 보듯, 규제프리존법의 초점은 기업 활동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미래 성장을 견인할 지역전략산업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규제프리존법의 장밋빛 미래

그런데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두고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며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덩어리’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 법은 박 대통령의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적용됐다. 국회가 스스로 ‘규제개혁 입법 역사상 가장 과감한 시도’라고 인정할 정도다. 문제는 법의 짜임새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풀어야 할 규제와 필요한 규제를 구분하는 기능이 전혀 없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법령의 내용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민감한 이슈인 의료ㆍ환경ㆍ교육ㆍ개인정보보호 등과 관련된 규제도 무력화될 수 있다. 법안 원문을 살펴보자. “법령상의 기준이 없거나 불명확 또는 불합리한 경우에 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실증된 경우 (기술이나 제품을) 허가(제2조 4항)”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경우에 다른 법령보다 우선해 적용(제3조 1항)”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 또는 금지사항을 제외하고는 허용하는 것을 원칙(제4조 1항)”.

모호한 규정이 생긴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레이존 해소’ ‘기업실증특례’ ‘신기술기반사업’ 등으로 이뤄진 ‘규제혁신 3종 세트’ 때문이다. 이들은 이 법이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완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들이다. 그레이존 해소는 행정기관이 30일 내에 규제적용 여부를 답변하지 않으면 관련 규제가 풀리는 제도다. 기업실증특례는 특정기술이나 제품의 안전성만 확보하면 시장 출시가 즉시 가능한 제도다. 신기술기반사업은 안전성 검정이 필요하다면 그 지역에 일정기간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제도다.

이렇게 규제가 완화된 환경에 놓인 기업의 활동을 가정해보자. “규제프리존을 적용받는 A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신기술을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안전성 검증은 기업 자체적으로 했다. 위원회는 시장 출시를 승인했다. 그런데 다른 법령에 이 기술과 관련된 금지사항이 있었다. 관련 행정기관에 이 기술도 규제에 적용되는지 물었다. 행정기관은 한달 뒤에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기술에 해당 금지사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덕분에 이 기술은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기술에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돼 있었고 기업은 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한달이 더 지나고 난 뒤에 검토를 끝낸 관련 행정기관은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이 이야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이렇게 꼬집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우리 법은 ‘허용 행위’를 늘어놓았다. 나머지는 금지 행위다. 그런데 이 법 아래에서 ‘금지 행위’만 빼고 다 할 수 있다고 해봐라. ‘금지 행위’가 충분히 적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다 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법 시스템에서 무작정 네거티브 규제 완화를 적용했다가는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게 뻔하다.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가 4차 산업혁명에 꼭 필요하다면 보다 꼼꼼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재부에 맡겨진 ‘규제 해제권’

이런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와 ‘필요한 규제’를 구분하는 기구를 세웠다. 바로 ‘규제프리존특별위원회’다. 규제프리존을 심사하고 지정할 뿐만 아니라 변경ㆍ해제ㆍ평가 등의 업무를 맡는다. 네거티브 규제 완화의 핵심인 기업실증특례를 심의하는 것도 이 기구의 몫이다.

그런데 이 위원회 구성이 수상쩍다.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위원 구성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정무직 공무원이다.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도 기재부 장관의 위촉으로 이 기구에 들어간다. 착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솎아내야 하는 위원회의 ‘장’이 기획재정부의 수장이라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친親기업, 더 나아가 대기업에 편향된 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셈이라는 거다.

박동욱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부양’에 집중하는 기획재정부에 규제프리존의 지정 권한을 넘겨주면 자칫 기업 논리에만 편중된 규제 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불필요한 규제와 필요한 규제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프리존을 실행하는 ‘지역추진단’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가는 점도 마뜩잖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됐다는 의혹을 차치하고라도 이 센터의 성과가 워낙 부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각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들이 연계돼 있다. ‘규제프리존법’이 대기업을 위한 법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정치권에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사진=뉴시스]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우리나라에는 ‘경제자유구역’ ‘외국인투자구역’ ‘자유주역구역’ ‘기업도시’ 등 유사한 정책이 많다. 이들은 다른 지역과 구분해 생산ㆍ무역ㆍ조세 등의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성과가 문제다. 경제자유구역은 지난해 기준 미개발지역이 총 면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부터 경제자유구역의 구조조정 방안을 고민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들 정책이 실패한 이유로 정치권 주도의 성급하고 폐쇄적인 절차를 꼽는다.

규제프리존법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 정책을 처음 제안한 게 지난해 10월이었는데, 27개의 지역전략산업이 선정된 건 같은해 12월이었다. 불과 두달여 만에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신산업이 결정됐다는 거다. 지역 의견수렴 과정이 길지 않았거나 아예 없었다는 방증이다. 지역별로 차별성을 강조한 점도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도리어 인근 지역의 유사업종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착한 규제까지 풀릴 수 있어

이런 허점은 규제프리존법의 본래 취지인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저해할 공산이 크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는 자사의 불리한 사실을 은폐했다. 그 결과, 우리는 1000여명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비극을 봤다.

여기에 발생한 사회적 비용은 계산조차 할 수 없다.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AI 사태 뒤에도 촘촘하지 않은 규제와 이익 우선을 앞세운 기업 논리가 있었다. 규제프리존법으로 규제가 ‘제로베이스’가 되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규제프리존법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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