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강호갑(63) 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회장이 지난 연말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국회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 법안을 양산한다며 이를 빗대 ‘입법공화국’이란 표현까지 썼다. 중견기업 육성에 몰두해 온 그는 아직도 주어진 환경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의 중심에 중견기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그가 향후 중견련을 어떻게 이끌지 주목된다.

▲ 강호갑 회장은 중견기업의 수를 전체 기업의 1%대(3만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사진=뉴시스]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정치권이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무분별하게 발의하고 있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은 작심한 듯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12월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송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대개 경제단체 수장들은 정부나 정치권을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잘 하진 않는다. 그래 봐야 별로 득 될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강 회장은 거침이 없어 보였다.

그는 “20대 국회 개원 이후 7개월 동안 발의된 4000여건의 입법안 중 상당수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입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검토 대상 입법안으로 ▲과세표준 구간 신설 및 세율 상향을 담은 ‘법인세법’ ▲가업승계 공제 한도를 하향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징벌적 손해배상이 담긴 ‘제조물책임법’과 ‘환경오염구제법’ ▲해고 승인제 도입 및 해고계획 90일전 통보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등을 꼽았다.

정부의 중견기업 지원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10년 임시법인) 중견기업특별법이 (2014년 7월) 시행되고 중견련이 법정단체로서 본격 활동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정책이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견기업 정책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특별법 시행으로 중견기업 정책의 기본틀은 마련됐지만 개별 법령상 걸림돌과 규제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현장에선 “중견기업을 위한 법령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 

하지만 강 회장은 중견련 회장 재직 4년 동안 마치 ‘중견기업 투사鬪士’처럼 일해 왔다. 중견기업의 위상 강화 및 존재감 알리기, 규제 개선 및 경영 애로사항 해소 등에 진력해 왔다. 2013년 2월 제8대 중견련 회장을 맡았고 3년 후인 2016년 2월 제9대 회장에 연임됐다. 중견련은 1992년 9월 한국경제인동우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1995년 3월 통상산업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1998년 4월 지금의 한국중견기업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2대 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장을 지냈던 고故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이었다. 3~7대 회장은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과 이상운 마누카목재 회장, 윤봉수 남성 회장 등이 맡았다.

강 회장은 그동안 중견기업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견기업특별법(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을 2014년 7월 발효토록 한 게 가장 큰 공적이다. 중견련 조직도 많이 키웠다. 2014년 7월 경제단체로선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에 이어 3번째 법정단체로 재출범시켰다. 중견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산하에 중견기업연구원과 중견기업M&A지원센터, 명문장수기업센터 등을 설립했다. 회원사도 12월 28일 현재 541개로 늘었다.

‘중견기업’ 육성에 못할 일 없다

사실 중견기업은 그동안 세간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중소기업이 아니면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이 사람들의 생각과 정책을 지배해 왔기 때문. 중견기업과 중견련이 주목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국정 화두인 ‘창조경제’ 실현에 중견기업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 중견기업특별법 시행, 중견련 법정단체 변신 등이 모두 박근혜 정부 때(2014년 7월) 실현됐다. 박 대통령은 중견련 법정단체 출범식 때 참석했다. 지난해 7월 22일 청와대에서 중견기업인 격려 오찬을 열기도 했다. 

지난 12월 10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련한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도 중견련의 존재감이 부각됐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인한 경제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재계에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간담회에는 김인호 무역협회장, 박병원 경총 회장, 박성택 중기중앙회장,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 강호갑 중견련 회장 등이 참석했다. 최순실 사태로 존폐의 기로에 놓인 전경련(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불참한 자리를 강 회장이 대신해 중견련의 위상 제고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중견기업이란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의 범위는 벗어나지만, 흔히 대기업을 일컫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에는 소속되지 않는 기업을 가리킨다. 정부가 50년 넘게 수출대기업 지원 및 중소기업 보호ㆍ육성을 산업정책의 골격으로 삼아온 탓에 중견기업은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래로는 중소기업과 정부 지원책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고, 위로는 대기업에 몫을 뺏기지 않으려고 애써야만 했다. 특히 정부 지원책을 놓고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나 소상공인연합회(회장 최승재) 등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강 회장은 그동안 중견기업을 옥죄는 ‘신발 속 돌멩이’를 찾아내 개선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입만 열면 전체 기업의 0.12%(3800여개) 정도에 불과한 중견기업을 그 10배인 1%대(3만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이 크면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나 양극화, 세수 부족 등이 동시에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중견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은 약 120만명, 총고용 비중은 10% 상당을 차지한다. 수출 비중은 16% 정도이며. 법인세 비중은 약 24%(8조원 이상)다. 중견련 회원 명부를 보면 쿠쿠전자, 린나이코리아, 광동제약, 귀뚜라미, 도루코, 모나미, 샘표식품, 쌍방울 등 눈과 귀에 익은 기업들이 많다.

정치권에 쓴소리 마다치 않아

강 회장의 투사 기질은 무에서 유를 키우다시피 한 그의 사업 경력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는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인 ㈜신영의 오너 대표이사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고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아 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 후 회계사로 현지서 취업했다가 1988년 큰형인 강호일 비와이(BY) 대표의 도움 요청에 기업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당시 아내에게 “2년만 형을 도와주고 다시 돌아가자”고 한 게 28년을 넘겼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당시 주위의 반대에도 매물로 나온 자동차부품회사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1999년 12월 경북 영천의 부도 중소기업인 신아금속을 190억원 상당에 인수했다. 이 회사가 신영의 모태가 됐다. 기술력 덕분에 18년 만에 계열사가 6개로 늘면서 매출 1조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차제 제작과 자동차 부품 금형 기술면에선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이젠 100년 이상 가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게 꿈이 됐다. 신영을 키운 경험을 살려 중견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데 발 벗고 나선 그의 향후 활약이 기대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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