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본 한국경제의 위기

수출은 줄고 내수는 답이 없다.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속출하고, 민생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2017년 한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그런데 누구 하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컨트롤타워는 힘을 잃은 지 오래고, 정치권은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한다. 아무래도 2017년이 걱정이다.

▲ 내수활성화가 절실하지만 정부는 능력이 없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수출길이 갈수록 막혀서다. 세계 경기 침체, 중국경제 성장 둔화, 미국을 중심으로 불거지는 보호무역기조 등 수출길을 막는 요인도 숱하다. 자동차ㆍ정보통신기술(ICT) 제품ㆍ조선ㆍ석유제품ㆍ철강 등 그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해온 주요 수출품들은 힘이 약해진지 오래다.

자동차의 경우, 2016년 11월 수출액은 360억7000만 달러(약 42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12.9% 줄었다. 2년 연속 감소세다. ICT 분야는 2016년 10월까지 13개월 내리 수출이 감소했다가 11월 들어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석유제품은 최근 들어 수출과 정제마진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2016년 10월까지만 해도 수출이 10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3.7% 줄었다. 철강은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데, 수출 단가는 떨어져 낭패를 보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로 상황은 더 악화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조선업계 불황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시한폭탄’ 심지에 불이 붙었다. 12월 14일(현지시간) 미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거다.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면 달러 가치도 올라 세계 자금들이 미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한국에선 달러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은행은 이를 부정하지만 기축통화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2017년 상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문제는 금리가 오르면 저축을 하는 사람들에겐 득이지만 돈을 빌린 이들에겐 독이 된다는 거다. 먼저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가계의 숨통을 조일 게 분명하다. 한은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경제현안보고 자료에서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전체 가계의 추가 이자상환 부담 규모는 약 9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는 얘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나올 때마다 “저신용, 취약계층의 이자상환 부담을 금리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출ㆍ내수 침체에 금리인상까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전체의 33.9%(2016년 상반기 기준)에 달한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건 한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금리까지 오른다면 자금회전이 안돼 휘청거리는 기업들이 늘어날 게 뻔하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내수를 활성화해 기업과 가계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수출만큼이나 내수도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내수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장을 가보면 나오는 말은 딱 하나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룻밤 사이에 멀쩡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던 당시보다 더 나쁘다는 게 말이 될까 싶지만 빈말이 아니다.

내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통계 하나를 보자. 한은이 발표하는 민간소비증감률(실질ㆍ전년 동기 대비)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민간소비가 0%대 혹은 마이너스에 머물렀던 분기는 총 20개 중 7개였다. 그것도 연속 석달을 넘기지 않았다. 1~3%대로 증가한 분기는 13개였다. 특히 1998년 1분기(-13.6%)와 2분기(0.2%)에만 잠깐 민간소비가 줄었을 뿐, 그 해 3분기부터는 8개월 연속 2~3%대를 유지했다.

반면 2011년 4분기부터 2016년 3분기까지 5년간 민간소비가 마이너스였거나 0%대에 머물렀던 분기는 총 20개 중 14개였고, 특히 2013년 4분기부터 2015년 2분기까지 7분기 연속 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민간소비가 늘어난 분기는 6개에 불과했고, 그마저 1%대를 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증감률도 비슷하다. IMF 외환위기 직후 설비투자가 줄긴 했지만 1998년 1ㆍ2분기를 제외하면 9분기 연속 가파르게 늘었고, 설비투자가 줄어들거나 정체된 기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설비투자는 2012년 1분기(12.2%)를 제외하면 두자릿수 증가는 없었다. 이런 통계에서 보듯 IMF 외환위기 직후엔 민간소비나 설비투자가 줄긴 줄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민간소비ㆍ설비투자 감소기간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IMF 때보다 어렵다”는 상인들의 말을 볼멘소리로 깎아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내수를 활성화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책임 있는 정책을 펼칠 컨트롤타워가 없다. 국회가 제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은 대선준비와 개헌론에 매몰돼 있다. 살길을 찾기 위해 당을 쪼개고, 다음을 노리는 대선주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흠집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정치 불안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번져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의 금리인상과 보호무역 기조, 미ㆍ중 간 무역분쟁 등 대외 악재들은 수출감소와 자본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살길만 찾는 정치인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2016년 12월 29일 ‘2017년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됐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성은 경기ㆍ리스크 관리, 민생안정, 미래 대비로 압축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땜질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경제정책방향은 길어야 6개월짜리 한시 정책”이라면서 “그렇다면 2017년 하반기부터 새 정부의 출범을 가정해 다음 경제팀을 고려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런 고민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2017년 한국경제는 아직 ‘비상구’도 찾지 못했다. 민생이 걱정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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