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풍향계 택시 타보니 …

▲ 손님이 줄면서 교대시간 이전에 복귀하는 택시기사가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 관악구 은천동에 위치한 한 운수회사. 올해만 30여명의 택시기사가 일을 관뒀다. 한남동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쌓이는 미수금을 보면 이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다.” 지갑이 얇아지면서 술자리가 줄고 대중교통 이용이 증가한데 따른 결과다. 민생경제의 풍향계라는 택시업계도 흔들리고 있다.

동장군이 오랜만에 힘을 쓰던 2016년 12월 27일. 서울 봉천역(지하철 2호선) 앞은 바람이 유독 찼다. 둔탁한 마찰음을 내며 트럭 몇대가 지나갈 뿐 인적이 뜸했다.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 크고 작은 가정집과 상점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골목에 들어서니 한적함을 넘어 적막함이 느껴졌다.

기자는 지금 운수회사로 가고 있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운수회사 중 한곳이지만 골목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민생의 풍향계’로 불리는 운수회사의 상황은 어떨까. 골목길처럼 쥐죽은 듯 적막할까.

운수회사 앞에 도착한 건 오후 2시께. 일반회사에서는 업무가 한창일 시간인데 운수회사 안은 주차된 택시들로 가득했다. 택시기사들은 군데군데 모여 각자 차를 정비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듯 보이는 한 택시기사에게 캔커피를 건냈다. 1983년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는 박승택(59ㆍ가명)씨는 손님이 적어 일찍 들어왔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원래 교대시간은 오후 4시예요. 하지만 요즘 손님이 없다보니 장사를 일찍 접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주간이나 야간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원래 야간에는 손님이 많아 밤새 택시를 모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엔 새벽 2시면 다들 들어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기사분들도 다 똑같아요. 장사가 안 돼 일찍 들어온 겁니다.”


택시업계의 최대 성수기는 뭐니뭐니해도 ‘연말’이다. 송년회ㆍ종무식 등 모임이 많아서다. 하지만 ‘연말이 곧 성수기’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이젠 연말이라고 3차, 4차까지 놀지 않아요. 대중교통 끊기기 전에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는 게 요즘 분위기입니다. 몇년 전부터 이런 추세가 지속됐는데 올해 들어선 더욱 심해진 거 같아요. 심야버스가 늘어난 탓도 있어요. 예전엔 늦게까지 술을 마신데다 날씨까지 추우면 택시부터 잡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추워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어요.” 

성수기 사라진 택시업계

박씨는 이런 분위기가 연말만의 얘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주로 여의도를 도는 박씨는 밤이 되면 택시를 잡는 손님들로 북적이던 여의도 대로변이 올해는 휑해졌다고 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회식을 줄이거나 간소화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게 그 이유다. 가계에서도 외식이나 모임을 줄이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직장인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데 따른 반작용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직장인(택시기사)을 괴롭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씨가 다니고 있는 운수회사는 꽤 건실한 회사로 알려져 있음에도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300명가량이던 이 회사의 택시기사는 올해 260~270명으로 줄었다. 벌이가 급감하면서 운전대를 놓는 기사들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는지 야간근무자들이 하나둘 택시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앞을 지나가던 택시에 올라탔다. 21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정기훈(가명ㆍ56)씨는 “회사를 나가기도 전에 손님을 태웠다”면서 좋아했지만 이내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손님이 일찍 떨어질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까지도 적막한 골목을 빠져나온 택시는 한남동으로 향했다.

한남동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빌딩숲을 넘어가고 있다. 대학병원 앞 대로변, 주유소를 조금 지나면 한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 시간대엔 퇴근ㆍ하교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광역버스와 시내버스가 한데 모이는 교차점이라서다.

이곳은 택시기사들에게도 목 좋은 곳으로 통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을 태우기 적합하기 때문인데, 5년 전만 해도 이 택시를 타기 위해선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눈치싸움을 벌여야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도 버스정류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육교 아래에는 7~8대의 택시가 장사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쪼그라든 소비심리의 여파가 미친 탓일까. 20여분이 흐르는 동안 손님을 태운 택시는 한대에 불과했다. 가장 앞에서 대기 중인 택시에 올랐다. 택시를 몰기 시작한 지 19년 됐다는 한건욱(가명ㆍ51)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납금도 못 채우는 날이 태반

“하루 사납금이 15만원인데 이거 못 채우는 날도 꽤 많아요. 월급명세서에 적힌 미수금 내역 보고 있으면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그는 사납금은 갈수록 오르는데 수입은 줄어 이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토로했다. “야간에 잘 벌리면 하루 30만원도 거뜬했죠. 근데 요즘은 잘 뛰는 기사들도 운때가 맞아야 20만원을 겨우 벌어요.”

어둠이 깔린 도로 위에는 붉은 LED로 ‘빈차’라는 글자를 띄운 택시들이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당장 내일 실업자가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왜 택시를 타지 않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교통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추위를 버텨가며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야간근무를 서는 것도 다 우리 서민이 감내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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