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도 멈춰선 을지로~종로 상권

사람이 붐비는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가게 사장 열에 아홉은 멍하니 가게를 지키고 있고, 온종일 아무것도 못 팔았다는 이들도 많다. 무언가를 날라야 할 오토바이는 갈 곳을 잃은 채 줄지어 서 있고, 가게 곳곳엔 ‘임대문의’라고 쓰여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바라본 을지로~종로 일대 상권의 슬픈 풍경이다.

▲ 인도 위에 서 있는 오토바이들만 봐도 을지로~종로 상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사진=김정덕 기자]
2016년 12월 28일 오전 10시. 다른 때 같으면 오토바이로 붐빌 서울 을지로 일대가 한산하다. 오토바이들은 인도 한쪽에 체념한 듯 줄지어 서 있다. 이 지역 물동량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고, 내수 경기가 바닥을 긴다는 방증이다. 지역 상인들의 체감경기는 어떨까. 을지로3가~을지로5가~종로5가 일대를 돌면서 상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조명상가들이 밀집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주변을 먼저 들렀다. 추운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여닫이 문 사이로 머리만 내밀고 주변을 살피던 한 조명전문점 직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가게 안으로 들어오란다. “손님이 워낙 없어서인지 사람이 그립네요.” 가게에서 일한 지 16년쯤 됐다는 점원은 “이렇게 경기가 안 좋았던 적은 없었다”면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 가게는 5~6년 전만 해도 저녁 9시까지 근무를 했고, 토요일에도 일을 했어요. 급하게 조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은 4~5시면 거의 문을 닫고, 6시 넘게 영업하는 가게가 없을 정도예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이 일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다른 가게 사장님들 얘기 들어보면 그때보다도 더 못하답니다.”

내수 침체로 을지로 울다

큰길에 있는 상가의 상황도 신통치 않긴 마찬가지였다. 또다른 조명전문점 사장은 “대부분 도매상가여서 전에도 일반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건설경기가 쪼그라든 지금은 도매주문조차 확 줄었다”면서 “입찰 단가까지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2017년 건설경기는 대출 제한 등으로 인해 더 위축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 ❶광장시장 먹자골목엔 열선을 깔아놓은 빈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❷오토바이들로 북적여야 할 세운상가가 한산하기 짝이 없다.[사진=김정덕 기자]
문제는 이 일대에서 2015년부터 조명축제 ‘을지로 라이트웨이’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권 부활을 위해 서울디자인재단이 추진한 이 축제는 지난 11월에도 열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다. 일부 상인은 “워낙 경기가 나쁜 탓에 가게들이 모두 일찍 문을 닫으니 불빛만 덩그러니 남는 축제가 돼 버렸다”면서 “손님이 없어 전기세라도 아끼겠다는 걸 뭐라 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을지로4가역 인근의 방산시장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교차로 모퉁이에서 화공약품전문점을 운영하는 점포로 들어갔고,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부부를 만났다. “화공약품은 쓰임새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기를 바로 바로 체감하는데, 2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지금 같은 불경기는 처음 겪어요. 최순실 이슈까지 겹치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니까 우리 같은 업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 같아요.” 부부는 “주말에 광화문은 촛불집회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초도 많이 팔렸다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도배나 장판 등을 취급하는 가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 보였다. 이사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인은 “토요일 오후에도 문을 연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시장 수요가 워낙 부족해 ‘대목’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광장시장 먹자골목도 예년만 못하긴 마찬가지. 먹자골목에 도착한 건 낮 12시 반. 한창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없다. 추운 날씨 때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곳 노점 의자엔 열선이 깔려 있어 엉덩이가 뜨끈뜨끈하다. 날씨 탓이 아니라 경기 자체가 안 좋다는 얘기다. 칼국수 노점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중국인 관광객이 아니면 하루 벌기도 힘든 상황”이라면서 “만약 중국인 관광객마저 사라지면 먹자골목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을지로와 청계천 인근 상가들을 돌아다니면서 상인들로부터 힘들다는 말만 들었던 건 아니다. “장사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세운상가 인근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 손님이 꽤 있는 한 조명전문점을 찾아 들어갔다. 2004년에 개점했다는 젊은 사장은 조금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허탈감에 휩싸인 상인들

그는 “상인들이 전반적인 경기를 얘기한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점포 주인들이 열심히 뛰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을 적극 이용하고, 제품으로 승부하면 소비자들은 입소문을 따라 시장으로 온다. 가만히 앉아 손님 오기만 기다려선 안 된다. 장사가 안 된다고 사장과 점원까지 힘 빠진 모습으로 가게 앞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는데, 그래서 손님이 오겠는가. 열심히 해도 안 되면 장사를 접어야 하지 않겠는가.” 상권을 살리기 위한 점주들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쓴소리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힘이 빠져 푸념을 늘어놓는 상인들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골백번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면 시장에, 아니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얘기다. 문득 ‘임대 문의’가 적힌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먼지 쌓인 오토바이가 외롭게 서 있다. 시장이 죽어 가고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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