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잃은 가계부채

가계부채 때문에 난리다. 규모도 최대지만 증가세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 중반인데, 가계부채 증가율은 10%를 넘볼 기세다. 질도 나빠지고 있다. 비은행 금융회사 대출이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신용ㆍ저소득 서민들이 ‘채무 불이행’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이를 해결할 대책이 있을까.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

▲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계부채가 매분기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295조원. 2016년 3분기 기준 가계부채 규모다. 더 놀라운 건 증가세다. 1분기 20조원, 2분기 34조원, 3분기 38조원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붇는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정부 역시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가계부채 대책’을 꺼내들었다.

대책의 핵심은 ‘가계부채 총량 줄이기’. 정부는 2016년 2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은행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주택담보대출 소득심사를 깐깐하게 하고 대출 초기부터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게 해 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책은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 신규 분양시장 활황과 맞물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집단대출(중도금대출)에 가계대출 수요가 쏠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2016년 8월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가계부채의 수요(금융)만 단속하는 게 아닌 공급(부동산)까지 줄여 부채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집단대출을 두고는 은행이 사업성을 평가해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했다. 안타깝게도 이 정책 역시 역효과를 냈다. 공공택지 공급 감소로 신규 아파트 물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자 자금은 오히려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여기에 아직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적용되지 않은 상호금융 등 2금융권과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비주택담보대출도 급증했다. 정부는 이를 막고자 집단대출은 물론 2금융권의 주담대까지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비주택 담보대출에 대한 LTV(담보인정비율)를 낮추는 등 추가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다. 결국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면서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줄이기’ 정책은 실패했다. 총량만 증가한 게 아니다. 다른 리스크가 생겼다. 바로 ‘취약 계층의 대출 증가’다.

우리나라 가계의 지갑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 척도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2016년 3월말 기준 165.4%로 2015년(159.3%)보다 6.1%포인트 상승했다.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가계가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에서 세금ㆍ보험료 등 의무지출을 빼고 남은 금액을 온전히 빚 갚는 데 써도 상당 부분(가처분소득의 65.4%)이 계속 부채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내놓는 정책마다 역효과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저소득자(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자(신용등급 7~10등급)’에 해당되는 ‘취약계층’의 가계대출 규모는 78조6000원이다. 이들의 대출 특성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非은행 금융회사 대출이 많다. 저신용자의 가계대출 가운데 비은행 대출 비중은 74.2%를 차지했다. 저소득자와 다중채무자의 비은행 대출 비중은 각각 47.3%와 52.3%였다. 전체 비은행권 대출 비중 평균은 42.3%다. 평균을 훨씬 웃돈다.

연 15% 이상의 고금리 신용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저신용자 17.3%, 저소득자 5.8%, 다중채무자 8.0%로 전체 평균(3.5%)보다 높다. 일부 은행 대출자들이 ‘저금리 파티’를 벌이는 동안 은행을 이용 못하는 저신용자들은 독배를 든 채 제2ㆍ제3금융권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들은 언제든 ‘채무불이행’의 늪에 빠질 공산이 크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 절실한 건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줄이는 일이다. 실마리는 금융위기를 겪은 주요국의 대처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을 통해 부실 무기지 증권 매입에 적극 나섰다. 동시에 압류위기에 처한 가구가 채무불이행으로 압류에 처하지 않도록 지원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공적 채무조정’이라 부른다. 취약계층의 대출은 채권자의 입장에서만 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 생활’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돕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공적 채무조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 박 대통령은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상환 능력이 부족한 채무자의 채무조정을 약속했다. 문제는 이 기금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 특히 추심을 위한 소송이 적극 진행 중이다.

제윤경(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으로 실제 구제된 채무자는 전체 287만명 중 30만7000명으로 10%에 불과했다. 그사이 기금은 채권 시효연장을 위해 32만건의 소송을 하는 등 채무자 추심에 열을 올렸다. 우리가 이런 지적을 하는 사이에도 가계부채 총량 증가는 계속되고 있고 채무불이행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리스크의 뇌관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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