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새해효과

▲ 기업ㆍ가계 등의 심리가 비관적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잃었다.[사진=뉴시스]

새해가 밝았지만 영 새해 같지 않다. 사회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새해 새롭게 시작하며 기대감을 키우는 ‘새해(1월)효과’를 내기는커녕 지난해 10월부터 우리 사회를 짓눌러온 ‘최순실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경제계 신년인사회도 그랬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GS그룹 회장)을 비롯해 10대 그룹 총수가 모두 불참했다. 전체 참석자도 지난해보다 30% 적은 1000여명에 그쳤다. 1962년 시작된 신년인사회는 경제를 잘 꾸려가자며 덕담과 각오를 나누는 재계 최대 행사다.

오는 17~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는 재계 인사도 예년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미르ㆍK스포츠 재단 기금 모금책으로 지목돼 해체 수순을 밟는 전경련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 바람에 전경련이 2009년부터 현지에서 마련해온 국내외 정ㆍ재계 인사들의 협력 마당인 ‘한국의 밤’ 행사도 열리지 않는다.

예년 같지 않은 국내외 행사장은 요즘 기업 분위기의 연장선이다. 다수 대기업 신년사가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몇몇 대기업은 정례 임원인사를 연기하고, 투자ㆍ채용 등 올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진 결과다.

기업들이 눈치 보는 사이 가계는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신음한다.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값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 말 라면ㆍ맥주가격 인상에 이어 올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공공요금을 올리고 있다. 기업활동 위축과 생활물가 상승은 얼마 남지 않은 설 경기와 내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저런 분위기가 반영돼서일까. 갤럽 인터내셔널이 지난해 10~12월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새해 경제전망이 가장 비관적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66%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란 응답은 28%, 나아지리란 전망은 4%에 그쳤다. 전년도 조사와 비교하면 나아지리란 응답이 12%포인트 감소한 반면 어려워질 것이란 응답은 32%포인트 급증했다. 낙관론이 비관론을 앞선 세계 평균(나아질 것 42%, 어려워질 것 22 %)과도 한참 차이난다. 살림살이 전망도 지난 38년 동안 실시한 조사에서 낙관론이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비관적이었다.

 

기업의 실적 부진, 이태 연속 감소한 수출, 내수 침체, 미국의 금리인상과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 대내외 경제환경이 악화한 데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된 정치 불안정이 한국 국민의 어깨를 짓누른 결과이리라. 경제는 상당 부분 심리에 좌우된다. 기업과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의 심리가 비관적일수록 정부, 즉 경제팀이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데 새해 경제정책방향이나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그런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 지난 5일 경제부처 합동 업무보고 내용은 일주일 전 나온 새해 경제정책방향의 재탕삼탕 되풀이였다. ‘튼튼한 경제’를 주제로 내세웠지만 나라 안팎으로 산적한 현안을 타개할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20일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등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 기준을 완화하면 한국도 환율조작국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를 확대하는 한편 일본도 위안부 소녀상을 빌미로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하는 등 이웃 국가들이 외교안보 사안을 경제문제화하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로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경제만은 상호 호혜적 차원에서 계속 협력해 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국민은 저성장ㆍ고실업에 등골이 휘는 데도 공무원 봉급 인상률은 3년 연속 3%대다. 2015년 3.8%, 2016년 3.0%에 이어 올해도 평균 3.5% 오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심리를 자극할 수 있도록 언론이 도와 달라”고 말했다. 언론에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경제팀이 더욱 혁신적인 정책으로 시장에 믿음을 주어야 한다. 공직사회는 지금 조기 대선과 새 정부 출범을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릴 때가 아니다. 경제팀은 적어도 봉급 인상률만큼의 성장을 이끌어내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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