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문제 없어” vs “법 안에서 정치게임”

▲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이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기업 침략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불투명한 이유로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반론에도 힘이 실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문제가 있을 순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엔 절차적 문제점이 없다.” 국민연금이 당시로선 ‘찬성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주로 시장주의자들이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적절한 지적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논리로 치고 받아봤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11.21%의 지분으로 삼성물산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연금에 누군가 입김을 넣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어서다.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합병 찬성’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전문가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엘리엇의 공격에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과 궤를 함께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씩 살펴보자.

합병 비율 공정성 문제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비율을 0.35대 1. 자산 등 몸집이 훨씬 큰 삼성물산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비율이었다. 두 기업의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절차였다는 의혹에 불이 붙은 핵심적 이유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는 쪽은 이렇게 주장한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산출된 합병 비율을 비난해선 안 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법(제 165조의 4)과 시행령(제176조 5)의 규정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최근 1개월의 평균 종가, 최근 1주일의 평균종가, 최근 거래일 종가의 평균으로 합병 비율을 결정했다. 그 결과가 제일모직의 합병 기준가 15만9294원, 삼성물산의 합병 기준가 5만5767원다. 쉽게 말해,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데 법적 문제는 없다는 얘기다.

거듭되는 합병 비율 논란

하지만 법적 절차에 흠이 없더라도 합병 기준가의 적절성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합병 기준가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시기에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5년 5월 삼성물산 주가의 최고가는 6만5700원, 최저가는 5만4300원, 평균가는 6만2694원이었다. 합병 기준가가 최저가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같은 시기 제일모직 주가의 최고가는 19만2000원, 최저가는 14만1500원, 평균가는 16만1306원이었다. 제일모직의 합병기준가는 평균가에, 삼성물산은 최저가에 가깝게 결정된 셈이다. 이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가 제시한 1대 1.21,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1대 0.42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심지어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우려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고 제일모직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합병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면서 “합병 비율을 자본시장법이 정한 절차대로 결정하는 건 맞지만 그 시기가 적당했는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삼성전자 오너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결정된 건 사실”이라며 “적법성에는 문제가 없어도 비율과 시기의 적절성에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래가치 갑론을박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주장의 또다른 근거는 미래가치와 시너지다. 두 요소를 함께 고려했기 때문에 불리한 합병 비율에도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합병 시너지로 2020년 매출액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회사의 공통사업 부문인 건설은 시장침체, 수주악화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사진=뉴시스]
게다가 2014년 1조9000억원이었던 패션부문의 매출을 2020년 10조원 규모로 늘리겠다는 계획은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대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대주주 지위도 마찬가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전세계 1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유니클로의 2015년 매출액이 19조원 가량이었다”며 “삼성물산의 패션 부분이 5년만에 유니클로의 절반에 달하는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성이 기대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잘나가는 기업의 주주라는 게 기업의 성장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 손실 수익으로 상쇄 =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게 결과적으로 손실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지분 4.8%ㆍ평가금액 1조1763억원)과 삼성물산(지분 11.21%ㆍ평가금액 1조2209억원)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삼성물산의 손실을 제일모직의 수익으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투자적 관점에선 손실을 수익으로 상쇄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주주로서의 영향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의 지분이 11.21%에서 5.78%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인수ㆍ합병(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의 주주로서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와 주주 제안을 통한 기업 감시자로의 기능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백기사 역할 필요했나 =
국민연금이 없었으면 삼성전자가 엘리엇과 같은 글로벌 투기자본의 희생양이 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합병에 실패했다면 삼성그룹주 하락, 투기자본의 저가매수, 무리한 배당 요구 등 경영권 침해가 잇따랐을 거라는 근거에서다. 하지만 이는 과한 해석이라는 비판이 더 많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의 요구대로 합병이 이뤄져도 삼성물산에서 차지하는 주식 비중은 크지 않았을 것”이라며 “배당 확대 등의 요구가 있을 순 있겠지만 경영권 침해, 성장동력 유출 등의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 비중은 54%에 달하고 그중엔 헤지 펀드도 많이 포함돼 있다”면서 “헤지펀드의 비중이 높다고 경영권 침해의 위협이 커지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헤지펀드의 목적이 돈벌이인 만큼 리스크를 안고 기업 경영을 침해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이재용-홍완선 만남 괜찮나 = “합병 전 주요 변동사항과 관련해 투자기업의 주요 경영진과 면담하는 건 일반적 검토과정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전 이재용 부회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면담한 것을 두고 국민연금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의사결정 전 당연한 절차라는 거다.

문제는 이 부회장을 주요 경영진으로 볼 수 있느냐다. 금감원의 2015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두 회사의 주요 등기ㆍ미등기 임원 명단에는 이 부회장의 이름이 없다. 합병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은 주요 경영진이 아니라 최대주주였고, 지금도 그렇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은 주요 경영진이 아닌 합병으로 수혜를 볼 수 있는 최대주주를 만난 셈이다. 정상적인 절차로 보기엔 ‘흠’이 있다는 얘기다.

김화진 서울대(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누구를 지지했든 의사결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누군가의 이익 때문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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