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 기술수출계약 시스템 괜찮나

▲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바이오제약 업계 특성상 불확실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사진=아이클릭아트]
8조5136억원. 2015~2016년 한미약품이 신약 기술수출계약을 통해 확보한 금액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금액에 열광했고, 주식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8조5136억원은 확정 금액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선 반토막이 날 수도 있는 ‘잠정 수치’였다. 우리는 모래 위에 성을 쌓았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2015년. 제약업계 ‘다크호스’ 한미약품이 큰일을 냈다.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 파마수티컬즈와의 계약(2015년 2월)을 시작으로 대형 기술수출계약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놀라운 쾌거는 2016년 9월(미국 제약사 제넨텍과의 계약)까지 줄줄이 이어졌는데, 한미약품은 그 기간 총 7건의 신약 기술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규모는 8조5136억원. 한미약품은 제약업계 매출 1위에 등극했고, 업계와 미디어는 ‘신화’라는 타이틀을 붙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히 주가도 춤을 추면서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화려한 봄날’은 금세 막을 내렸다. 2016년 하반기부터 이상징후가 포착되더니 7건의 신약 기술수출계약 중 3건의 계약이 차질을 빚었다.

첫번째 이상 신호는 2016년 9월 29일 켜졌다.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계약규모 8515억원ㆍ계약당시 환율 기준)과 맺은 계약이 파기되면서다. 이유는 상품성 하락이었다. 베링거인겔하임과 한미약품이 개발 중이던 신약과 같은 기능의 제품을 경쟁사에서 먼저 출시한 결과였다.

예상치 못했던 계약의 파기는 주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16년 9월 29일 62만원이었던 한미약품의 주가가 하루만에 22%나 주저앉았다. 늑장공시, 내부정보유출 등 잡음도 ‘나쁜 변수’로 작용했지만 투자자들이 발을 뺀 근본 원인은 계약 파기였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업계에서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지만 2016년 12월 일은 또 터졌다.


미국 제약사 얀센(계약규모 1조449억원)과 진행 중이던 임상실험이 유예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표면적으로 공개된 원인은 한미약품의 시약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서 임상환자 모집을 유예한 것이다. “당장 계약이 해지되는 건 아니다”는 옹호론이 적지 않았지만 투자자들은 이번에도 발을 뺐다. 베링거인겔하임 사태의 ‘학습 효과’가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결과다. 

세달간 세건의 계약에 문제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불과 21일이 흐른 12월 28일 세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계약규모 4조8344억원)가 한미약품과 계약한 3개의 신약기술 중 1개를 반환했기 때문이다. 이 계약이 한미약품이 체결한 것 중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업계 안팎에 큰 회오리가 불었다.

실제로 신약기술 1개의 반환으로 한미약품의 대對사노피 계약 규모는 1조2097억원(위약금 포함)이나 쪼그라들었다. 반환 사유는 ‘상품성 하락’으로 베링거인겔하임과 마찬가지였다.[※참고 :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수출한 기술은 지속형인슐린ㆍ에페글레나타이드ㆍ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인슐린의 복합약. 그중 반환된 기술은 지속형인슐린이다.]

종합하면 세달간 세건.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 사태가 터진 후 한달에 한번꼴로 진통을 겪었다. 그 기간 주가는 쉴 새 없이 빠졌다. 각종 기술수출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회사의 주가는 2015년 11월 27일 81만867원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3건의 사건이 문제를 일으키자 주가는 올 1월 5일 현재 29만7500원까지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8조4614억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3조1044억원까지 줄어들었다.

“기세가 대단했던 한미약품 신화가 1년여 만에 깨졌다”는 투자자들의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생각보다 침착하다. 기술수출계약의 진통이 바이오제약 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이유에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우리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신약 개발 실패가 각종 의혹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게 억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 사람들이 바이오제약 산업의 특성을 잘 몰라서 그런다. 신약 개발은 워낙 실패 확률이 높은 사업이다. 개발 기간도 길게는 10년 이상이다.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과도하게 우려하는 것 같다. 반면 해외에선 이런 업계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개발이 실패해도 쉽게 용인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이런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익명을 원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제약은 대표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불확실성이 높아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거나 전망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단적으로 말해 한미약품의 남은 5건의 계약은 모두 실패할 수도, 모두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한 건이라도 성공하면 한미약품은 수조원대의 매출을 내는 글로벌 50대 제약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업계의 특성인가

제약업계 입장에선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니다. 신약 개발의 성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 투자비용 부담이 크고 개발 기간이 길다는 점 등은 제약업체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이 말을 들으면 ‘무책임의 극치’다.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쯤은 투자자들이 안고 가야 한다’고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술수출계약 시스템에 허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제약업계의 수출계약은 확정되지 않아도 공시를 한다. 투자자들은 이게 확정금액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그 사유를 속시원하게 밝히는 것도 아니다(익명을 원한 투자업계 관계자).” 우리가 신약 기술수출계약 시스템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련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한 탓에 애먼 투자자만 피해를 볼 공산이 커서다.

그렇다면 신약 기술수출계약 시스템의 허점은 무엇일까. 첫째 허점은 제약업체가 신약 기술수출계약의 마일스톤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일스톤이란 계약금을 일부 지불한 뒤 임상실험 결과에 따라 단계별로 잔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말한다. 바이오제약업계의 독특한 계약 방식인데, ‘착시 효과’가 나타난다는 단점이 있다. 제약업체의 실적이 실제보다 커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미약품이 2015년 2월~2016년 9월 체결한 계약규모 8조5136억원은 ‘최종 실적’이 아니다. 임상실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쪼그라들 수 있는 일종의 ‘잠정 실적’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약업체는 단계별 마일스톤의 금액과 시점 등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극단적으로 투자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둘째 허점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터져도 정확한 원인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한미약품의 경우, 현재 얀센과 진행 중인 임상실험이 유예 중이다. 사노피와 체결한 계약 중 1건(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실험도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약품 측과 글로벌 제약업체들은 “시약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구체적인 원인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약 생산문제라면 신약 자체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산이 중단된 구체적인 원인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구멍 뚫린 신약 기술수출계약 시스템만이 아니다. 계약이 차질을 빚으면 제약업체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미약품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미약품은 사노피와 계약한 신약기술 3건 중 1건을 돌려받으면서 부담이 커졌다.

▲ 바이오제약은 대표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으로 꼽힌다. 사진은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사진=뉴시스]
한미약품이 공시한 사노피와의 계약조건 변경 내용을 보자. “주 1회 제형의 인슐린 콤보의 경우에는 일정기간 한미약품의 책임으로 개발한 후 사노피가 이를 인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 … 에페글레나타이드의 라이선스는 유지되고 단계별 마일스톤 감액 및 개발 비용은 한미약품이 일부 부담.” 신약의 임상실험 과정에서 한미약품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커졌다는 건데, 한미약품으로선 치명적이다.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을 자체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노피와의 계약이 살아 있는 나머지 두 기술은 각각 임상3상, 임상1상을 앞두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의 경우처럼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조원대의 비용이 든다”면서 “임상3상까지 왔다고 해도 앞으로 들어갈 비용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에 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먹거리에 숨은 한계

글로벌 제약사가 반환한 신약 기술의 처리 문제도 골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도 있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 수도 있다”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임상실험을 직접 진행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 게다가 기술 반환의 이유가 상품성 하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 파트너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이오제약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미약품이 맺은 신약 기술수출계약의 의미를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기술수출계약의 시스템에는 이처럼 ‘맹점’이 많고, 투자자는 이를 알 길이 없다. 한미약품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을 때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귀띔했다.

“공시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수출계약이 확정금액은 아닙니다. 투자할 때 조심해야 하는데, 누구도 경고하지 않는 게 이상합니다. 한미약품이 대형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건 높게 평가해야 하지만 아직은 ‘모래 위 성’에 불과합니다.”

한창 주가가 치솟을 땐 누구도 꼬집지 않았지만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았고, 많은 개미들이 눈물을 훔쳤다. 한미약품의 위기는 어쩌면 ‘예고된 거품’이었을지 모른다. 개미만 몰랐을 뿐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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