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 후퇴한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

새해로 들어서자마자 한국 재계의 스타 기업인 한 사람이 2선으로 후퇴했다. ‘박카스 신화’의 주인공 강신호(90)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그다. 35년간 앉았던 회장 자리를 4남 강정석(53) 회장에게 물려주고 영욕榮辱의 세월을 뒤로한 것이다. 90 고령인데다 변화의 시기인 지금이야말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때로 본 것 같다. 그가 물러난 동아쏘시오호號가 순항할지 주목된다.

▲ 지난해 7월 1일 제19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출정식에 참석한 강신호 회장(당시 직함ㆍ사진 맨 왼쪽). 그는 신념을 중시한 열정적인 경영인이었다.[사진=뉴시스]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리더가 되지 않으면 동아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2일 오전 열린 동아쏘시오그룹 시무식에 참석한 임직원들에게 강신호 명예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명예회장에 추대되는 순간 임직원들을 향해 “변화하고 리더가 돼달라”고 주문한 셈이다. 회사 생활 58년, 회장 생활 35년을 농축해서 고별사처럼 이런 말을 남겼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최근 그는 자신의 2선 후퇴를 암시하듯 구시대와의 작별과 새 시대의 도래를 말하는 등 유독 ‘변화’를 강조해 왔다. 지난해 11월 창립 84주년 기념사를 통해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도태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명하달의 구시대적 기업문화로는 결코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리더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일을 스스로 꾸밀 줄 아는 사람, 동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이번 시무식에서 “가슴 속에 점화된 불씨를 여러분이 가진 열정과 가능성으로 잘 키워 ‘글로벌 동아’를 만들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1959년(32세) 오너 2세 경영자(상무)로 동아제약에 입사한 그는 1981년(54세)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 올랐다. 선친 강중희 회장이 1932년 창업(강중희 상점)해서 물려준 동아제약을 국내 제약업계 선두권으로 올려놓은 다음 오너 3세인 4남에게 넘겨준 것이다. 

기업인 강 명예회장은 그동안 한국 재계와 제약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영욕榮辱으로 점철됐던 그의 지난 세월을 요약하면 대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의사 출신으로 성공한 제약인, 제약 연구개발(R&D)와 신약 개발의 선두주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강조한 기업인, 한국 재계 간판인 전경련 회장을 연임한 인물, 2세 승계 과정에서 골육상쟁骨肉相爭을 겪었던 오너 기업인 등이다.  

그는 원래 의사였다. 195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내과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어 독일 유학을 가 1958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내과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귀국 후 촉망받는 의료인이 될 수도 있었던 그는 이듬해인 1959년 동아제약 상무로 입사해 제약인으로 변신한다. 당시 제약 선진국인 독일에서 시대를 앞서 가는 제약 산업을 목격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한국 제약업계의 산증인이란 얘기까지 듣게 된다. “의사 출신인 내가 제약인이 된 것은 의사는 몇몇 개인을 살릴 수 있지만 제약기업은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사업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의사 출신 제약인이 만든 ‘박카스’

‘강신호’라고 하면 ‘박카스’를 떠올릴 정도로 그가 일궈낸 ‘박카스 신화’는 유명하다. 오늘날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의약전문 동아쏘시오그룹 축성의 1등 공신이라 할 만 하다. 동아제약 입사 3년째인 1961년 그는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직접 개발하고 이름까지 붙였다. ‘박카스’란 이름은 유학 시절 독일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 입구에 있는 포도주와 풍요의 신 ‘바커스(Bacchus)’를 본 기억에서 따왔다고 한다. 박카스는 출시 이후 55년간 드링크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15년에 매출 2000억원이란 대기록을 올렸다. 단일 제품 국내 제약업계 첫 기록이다. 55년간 누적판매량 192억병, 판매액 약 4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그는 국내 제약업계의 R&D와 신약개발을 주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제약사 최초로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동아쏘시오그룹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공헌은 신약개발”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결과, 동아에스티는 국내 최초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와 당뇨 치료제 슈가논,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시벡스트로 등 업계 최다인 4개의 신약을 보유하게 됐다. 지난 연말엔 다국적 제약사인 미국 애브비 자회사에 차세대 면역항암제 기술을 수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계약 규모만 5억2500만 달러(6300억원) 상당으로 그가 전폭 지원한 혁신신약연구소의 첫 결실이었다. 

1994년 그룹명을 고민하던 그는 ‘사회’를 뜻하는 라틴어 ‘SOCIO’를 떠올렸다. 평소 “기업은 사회와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마침내 그룹명을 ‘동아쏘시오그룹’으로 정했다. 동아쏘시오가 새로운 과학기술을 활용한 신약개발, 그중에서도 뚜렷한 치료약이 없는 미개척 분야의 혁신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다 그런 생각 때문이다. 기업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는 사업을 전개해야 하며, 사업 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환원할 책임이 있다고 늘 강조했다.

사회 공헌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1987년 한국제약협회장에 이어 2004년 2월~2007년 3월 사이 제29ㆍ30대 전경련 회장까지 맡게 된다. 제약전문그룹 회장으로 전경련 회장을 연임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재벌개혁 요구가 거셌던 상황에서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경상이익의 1% 이상을 자발적으로 사회를 위해 쓰도록 한 ‘전경련 1% 클럽’ 발족을 주도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대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대학생 국토대장정 대회를 마련하고 이를 주관해 왔다. 이 대회에는 지난 19년간 총 2736명의 대학생이 참석했으며, 앞으로도 자신이 직접 챙길 생각이다.

4남 강정석 회장 승계 과정에서 부자父子간ㆍ형제간에 심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 그 자신은 물론 주위도 놀라게 했다. 골육상쟁이 집중됐던 2003~2008년은 그가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짐작컨대 이때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들고 부끄러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2세 승계 과정의 ‘아픈 역사’

그는 4남 2녀를 두었다. 2004년 유력한 후계자였던 차남 강문석 당시 동아제약 대표이사 사장이 사장직에서 해임되면서 부자 갈등이 증폭된다. 그런 와중에 그는 장ㆍ차남의 생모인 첫번째 부인과 이혼했고, 차남과 두번째 부인 소생인 4남간 경영권 분쟁으로도 비화됐다. 결국 2008년 차남 강 전 대표가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하고 그룹을 떠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강 명예회장은 이런 곡절 끝에 4남 강정석 회장에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대의 동아쏘시오호號 항해를 맡겼다.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할 정도로 아직 정정하다고 한다. 당분간 출근하며 후배 경영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물려주기 위해 경영 자문에 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 회장과 임직원들이 창립 100주년을 앞둔 동아에 그의 기대만큼 새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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