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부산행 ❺

▲ 석우는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딸을 위해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1세기를 맞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온갖 기대에 부풀었던 시기. 당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胎兒(21세기)에게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태명을 붙여줬다. 그는 윤리성을 상실한 과학기술과 자본, 환경파괴, 소외되고 억압당한 개인과 집단의 반발, 무질서한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런 경고를 덧붙였다. “이는 곧 모든 사람을 대책 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할 것이다.”

울리히 벡은 이런 위험과 불안의 무차별적인 확산을 “부富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는 말로 정리했다. 난데없이 전성시대를 맞이한 온갖 재난영화의 범람은 불행하게도 울리히 벡의 선견지명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 ‘부산행’의 대재앙(좀비) 역시 어느 바이오회사와 펀드회사의 부를 위해 파생된 ‘스모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구조다.

영화 속 펀드회사의 ‘소심한’ 김 대리는 자신들이 뿌린 재앙의 씨앗에 ‘내가 이러려고 펀드 매니저 했나?’라는 일말의 자괴감을 느낀다. 하지만 바이오회사 주가 띄우기 작전의 총책임자인 석우(공유)는 그나마 죄책감도 없다. 석우는 스모그를 마시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사랑하는 내 딸이 스모그에 오염된 공기를 마시지 않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할 뿐이다.

영화의 좀비 창궐은 구제역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신약개발의 ‘사고’로 시작된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들어오는 ‘세계화 현상’이지만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지금 수천만 마리의 닭들이 살처분되고, 애꿎은 대공원의 원앙들까지 안락사당하는 조류인플루엔자(AI)의 재앙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생소했던 재앙들이 때되면 반복되다시피 들이닥치지만 대책이 마땅찮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의 부를 위해 뿌려진 스모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뒤덮는다.

우리는 소위 ‘글로벌 경제시대’를 살지만 세계경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모른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자동차를 운전하지만 그 작동원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그것으로 온갖 편의를 누리지만 원자력발전의 실체는 알 길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 ‘위험사회’의 불안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적 신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산다. 복잡하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멈추거나 잘못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절망과 재앙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둘러싼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국가’라는 시스템 속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너무 많다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국가라는 복잡한 시스템은 어느 하나만 잘못돼도 멈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고 감시할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것에 나를 맡기고 있다는 것은 이처럼 위험(risky)하고 불안한 일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21세기 화두로 ‘신뢰사회’를 들고 나온 것도 21세기 ‘위험사회’의 불안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적 신뢰’ 외에 달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자와 관리자를 ‘신뢰’하고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회사를 ‘신뢰’하고 자동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듯 국정책임자의 양식과 도덕성, 능력을 ‘신뢰’하고 정부의 방침을 따르고 세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위험사회’에서 ‘신뢰’마저 무너진다면 그것은 곧 ‘부산행’ 좀비의 재앙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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