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의 역습」

내 하루가 쓸데없이 바쁜 이유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 업무를 보려면 은행에 직접 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간단한 송금 업무부터 은행상품 계약까지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해결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삶이 편해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기업이나 조직의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소비자가 대신하게 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은행원이 해주던 일을 보수도 받지 않는 소비자가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기업에 더 많은 이윤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는 오스트리아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주장한 ‘그림자 노동’이다. 저자는 그림자 노동의 개념에 착안해 현대인의 모습을 살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보수가 따르지 않지만 현대인이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일을 짚어봤다.

매일 아침 스팸 메일을 지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스타벅스에서 다 마신 음료잔을 치우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주유, 가구 조립, 최저가 검색까지 직접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늘 바쁘다. 저자는 하는 일도 없이 바쁘다면, 또 늘 시간에 쫓긴다면, 그림자 노동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상품 경제라는 미명 아래 많은 일들이 교묘하게 개인과 소비자에게 넘어가고 있어서다.

그 이면에는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꼼수가 있다. 인원 감축, 자동화 이전에는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를 고객이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다는 거다.
‘셀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에 점령당하고 있는 소비자는 이를 깨닫지 못한다. 고객들은 기꺼이 샐러드바에서 직접 음식을 담아 오고, 공항에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직접 티켓을 발권한다. 호텔 로비에 체크인 기계를 설치하면 프런트에 있는 직원을 한 명 줄일 수 있다. 그림자 노동이 대체하기 쉬운 초보적인 일자리, 저임금 미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는 원인인 셈이다.
▲ 현대인들은 '셀프서비스'라는 미명 아래 기업에 시간을 헌납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인터넷을 통해 지식이 대중화하고,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게 용이해진 것도 그림자 노동을 증가시킨다. 한때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지식을 이제는 누구나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정보를 검색하는 그림자 노동을 자처한다. 특히 의료나 법률 관련 전문 지식이 궁금할 때 스스로 정보를 검색하는데, 때로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잘못된 정보더라도 조회수나 추천수가 높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림자 노동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그림자 노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림자 노동이 우리의 시간을 갉아먹어서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자 노동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그림자 노동을 수면 위로 꺼내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통찰력을 갖자는 거다. 

세가지 스토리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저자가 한겨레21에 연재한 ‘한창훈의 산다이’를 정리해서 묶은 책이다. ‘산다이’는 거문도 방언으로 여흥이라는 뜻이다. 거문도 출신인 저자는 섬 사람들과 자신이 겪은 스물여덟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노는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불안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쫓기지 말고, 갇혀 있지 말라고, 맑은 날씨를 즐기고 행복하자”고 말한다.

 
「스무 살 클레오파트라처럼」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펴냄

키 작고 통통한 못생긴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빚이 많고 무능력했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아이가 훗날 세상을 쥐락펴락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다. 이 책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함 뒤에 숨은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조명한다.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학벌, 재산, 외모가 아닌 클레오파트라처럼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지음 | 돌베개 펴냄

신영복 선생의 글 중 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을 모았다.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20대 청년 시절 신영복의 자취를 보여주는 글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1부에는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출소 이후까지 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들로 선생의 철학적 사색을 엿볼 수 있다. 3부에서는 공존과 연대, 평화와 생명 등 그의 사상의 정수를 담았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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