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두번 울리는 졸업유예제도

졸업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수년간 갈고닦은 실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겠다는 당찬 포부가 무색할 만큼 취업의 벽은 갈수록 높아진다. 졸업을 하자니 갈 데 없는 백수가 될 것 같고, 졸업을 미루자니 가벼운 주머니가 야속하다. 학교를 떠나지도, 남지도 못하는 유령 같은 졸업유예생의 겨울은 뼛속까지 시리다.

▲ 취업준비를 이유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 중인 한승우(가명ㆍ28)씨. 그는 최근 고민 끝에 졸업유예를 결정했다. 한차례 휴학을 하면서까지 취업준비를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탓이다.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에 매진할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청년백수’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을 거 같더라고요. 채용하는 기업들이 졸업생보다는 졸업예정자를 더 선호한다는 얘기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결국 가족과 상의한 끝에 학생 신분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사회진출이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늦어지겠지만 어쩌겠어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사회 구성원 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한씨는 학교에 제출할 졸업유예 신청서도 작성해 놨다. 그가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1학점을 신청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70만원. “면목 없지만 부모님께 한 번 더 손을 벌려야 할 거 같아요.” 대학 5학년생이 될 한씨의 겨울은 매섭기만 하다.

취업시장에 몰아친 한파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중 구직활동을 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구직니트족 수가 93만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도 예외일 순 없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졸자의 실업률은 3.4%로 평균 실업률인 3.2%를 상회했다. 한씨처럼 졸업을 유예하는 대학생 수도 최악의 취업대란 속에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졸업유예’는 졸업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해당학기에 졸업하지 않고 일정기간 졸업을 연기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마디로 졸업할 때가 됐지만 졸업을 미룬다는 거다. 모든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지만 상당수 대학이 졸업유예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실이 지난 9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2015 대학별 졸업유예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07개 대학에서 총 1만7744명이 졸업을 유예했다.

졸업유예자들이 학교에 낸 등록금은 35억7529억원에 달했다. 그중 졸업유예생이 100명 넘는 학교는 40개교였고, 연세대와 한양대는 각각 2090명, 1947명으로 가장 많은 졸업유예생 수를 기록했다. 두 학교는 개인이 신청한 학점에 따라 등록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집계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총 합계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연세대의 경우 채플수업만 들으면 34만1600원을 수업료로 내야 한다.

돈 있어야 학생신분 유지 가능

또한 107개 대학 중 절반에 해당하는 54개 대학은 최소 1학점 이상을 수강해야 졸업유예가 가능했다. 대다수 학교에서는 등록금의 6분의 1을 최소수업료로 받고 있었지만 학교의 학칙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건국대의 경우, 졸업을 유예하려면 최소 1학점 이상을 수강해야 한다.

건국대 학칙 제32조 2항은 “학생이 졸업요건을 충족하고서도 졸업연기를 하고자 할 때는 소정의 기한 내에 연기신청으로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졸업희망 해당 학기에 1과목 이상 수강신청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국대의 졸업유예 최소수업료는 평균 67만6228만원. 건국대는 지난해 382명의 학생이 졸업을 유예해 3억1132만원의 등록금을 거둬들였다.

2015년에 93명의 학생이 졸업을 유예한 동덕여대의 학칙에는 ‘졸업을 연기하는 자는 다음학기에 최소 1학점 이상을 수강해야 하며(제8장 2조)’ ‘1~3학점은 등록금의 6분의 1, 4~6학점은 3분의 1, 7~9학점은 2분의 1을 내야 한다(제22장)’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3명의 학생이 평균 62만1273만원을 내고 학생 신분을 이어갔고, 졸업유예 수업료 합계는 1억1075만원이었다.

▲ 취업이 간절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한다는 지적이다.[사진=뉴시스]
반면 광운대는 학점이수 의무 규정이 없다. 하지만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 졸업유예를 신청할 경우에는 4학년 등록금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졸업유예금으로 내야 한다. 이것이 약 33만원이다. 2015년 광운대에서는 6명의 학생이 졸업을 유예했다.

필수학점을 이수하지 않고 졸업유보비만 내는 대학도 있다. 조선대는 ‘졸업유보제’ 세칙 제8조 3항에 따라 졸업유보비 1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반드시 들어야 할 수강학점은 없지만 수강신청을 할 경우에는 계절학기 수강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하도록 돼 있다.

졸업유보비 받는 학교도…

이처럼 대학들은 각 대학 기준에 따라 학생들에게 졸업유예금을 징수하고 있다. 가뜩이나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까지 미루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졸업유예금이라는 또다른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취업이 간절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2015년 9월 처음으로 졸업유예생들에게 등록금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졸업유예제 개선 법률안(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 19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봄을 기다리는 대학 5학년생들에게 따뜻한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