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행복지수에 숨은 통계 해석해보니…

▲ 경제행복지수에 숨은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사진=뉴시스]
‘가방끈 길어야 행복지수 높다’ ‘연 6000만~8000만원 벌어야 행복지수 높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ㆍ발표한 우리나라 경제행복지수 통계 결과다. 언뜻 봐도 뻔한 결과다. 하지만 이 통계를 살짝 뒤집어보면 한국경제의 민낯이 보인다.

100점 만점에 38.4점.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경제행복지수 조사 결과다. 이 연구원은 2007년부터 매년 두차례씩(상ㆍ하반기) 경제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는데, 2016년 상반기 대비 0.5점 떨어졌다. 그만큼 한국경제가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경제행복지수 구성 항목(경제적 평등ㆍ안정ㆍ우위ㆍ발전, 전반적 행복감) 가운데 ‘경제적 평등(16.7점)’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고, ‘경제적 불안(25.2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지수는 다소 뻔하다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가방끈 길어야 행복지수 높다’ ‘연 6000만~8000만원 벌어야 행복지수 높다’ ‘평균 5억원은 있어야 행복하다’ ‘공무원은 행복하다’는 식이다.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지수에 숨은 통계를 살펴봤다. 한국경제의 민낯이 보였다. 중산층은 무너졌고, 자영업자는 절규했으며, 20~30대를 자녀로 둔 부모는 허리가 더 꺾였다.

자영업자의 절규 “무직보다도…” 

자영업자들이 어렵다는 건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국세통계연보(2015년 기준)에 따르면 106만8000명의 개인사업자가 창업을 하고, 73만9000명이 폐업했다. 계산상으로만 보면 매일 2926명이 창업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2024명(69.1%)은 사업을 접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의 창업 성공률이 30.8%에 불과한 셈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자영업자 수는 2015년 대비 7000명이 더 늘었다. 
이런 치열한 시장에서 발버둥치는 이들의 경제행복지수가 높을 리 없다. 자영업자들의 경제행복지수(28.1점)는 무직ㆍ기타(27.8점)를 제외하면 일을 하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낮았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행복감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주부(29.4점)보다도 낮았다.

그럼에도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의 고용사정이 안정적이지 않아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까지 치솟았다. 역대 최고치다. 실업자수는 101만2000명으로 통계 방식이 바뀐 2000년 이후 신기록을 세웠다.

고용이 돼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기업은 수시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 입사 초년생도 희망퇴직 대상에 오를 정도다. 기업에서 밀어내는 직원이 많으니 자영업 시장을 노크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는 한국경제가 악순환에 빠졌음을 시사한다. 자영업 시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아도 경제행복지수가 낮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 활력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부모 품인데 뭘…” 

20~30대 젊은층의 경제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다른 연령대의 행복지수가 30점대로 나온 것과 대조적으로 20대와 30대는 각각 46.5점(100점 만점)과 42.7점으로 집계됐다. 5포 세대로 불리는 20~30대의 경제행복지수가 높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경제연구원은 “20~30대는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나 책임감이 적다”고 분석했다. 20~30대의 높은 경제행복지수 이면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세태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15~36세 5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8차 청년패널조사(2014년) 결과를 살펴보자. 4290명의 취업자 중 본인이 생활비를 부담한다고 답한 비율은 26.7%였다. 반면 “부모님이 생활비를 부담한다”는 대답은 53.2%로 두배가량 높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독립하지 않는 걸까. 그 답은 잡코리아가 지난해 20~30대 성인남녀 10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캥거루족 관련 설문조사에서 엿볼 수 있다. 전체의 48.4%가 ‘주거비’ 부담 때문에 독립을 못 하거나 안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경제적 독립을 ‘못’하는 거라고 답한 이들의 과반수(51.9%)는 ‘집값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20~30대가 경제적으로 정말 행복한 게 아니라 부모의 품속에 숨어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탈감 느끼는 중산층 “갈수록 힘들다”

경제적 여유와 행복감은 정비례한다는 게 통설이다. 실제로 소득별로 보면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경제행복지수는 상승했다. 연소득 8000만원 이상(56.4점) 계층의 경제행복지수는 2000만원 미만(30.3점) 계층보다 86.1%나 높았다. 자산별로 봐도 자산 10억원 이상(63.8점)인 계층이 자산 1억원 미만(33.0점) 계층보다 경제행복지수가 93.3% 더 높았다.
다만 눈여겨볼 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연소득 8000만원 이상 혹은 자산 10억원 이상인 계층 등 우리가 흔히 부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전기 대비 경제행복지수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돈이 많든 적든 지금 가진 것보다 소득이나 자산이 줄어들면 행복감은 줄어들게 마련이라는 거다.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경기가 침체하면서 소득과 자산증식에 타격을 입은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둘째는 경제적 중산층이 경기침체에 따른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거다. 경제행복지수 하락폭을 소득별로 보면 6000만~8000만원 미만 구간(-6.3점)이 가장 크고, 자산별로 보면 5억~10억원 미만 구간(-4.2점)이 가장 컸다. 이는 경기침체기에는 중산층이 무너진다는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경기연구원은 ‘소득ㆍ자산기반 중산층 측정 및 계층이동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커지고,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혼 안 하면 행복 “솔로가 대세” 

미혼자의 경제행복지수는 43.9점. ‘기혼자(36.3점)’ ‘이혼ㆍ사별(15.5점)’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평균(38.4점)보다도 5점이나 높다. 2014년만 해도 기혼자(44.6점)와 미혼자(44.9)의 경제행복지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 간극이 2년 만에 크게 벌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사는 게 ‘편한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로 2010년(427만 가구)에 비해 25.6% 증가했다. 전체 1911만 가구의 27.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은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 전반에서 이들을 겨냥한 식품과 서비스가 잇따라 나오는 이유다.

편의점 시장은 소포장ㆍ간편식을 내세웠다. 영화관은 혼자 앉을 수 있는 ‘싱글석’을 설치했다. 주거형 오피스텔의 공급량도 크게 늘었다. 덕분에 ‘혼밥(혼자 식사)’ ‘혼행(혼자 여행)’ ‘혼영(혼자 영화보기)’ 등 혼자서 취미와 여가를 즐기는 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에 돈을 쓰는 데 적극적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16조원에 불과했던 1인 가구 소비액은 2015년 86조원 규모로 5배 이상 급증했다. 2030년에는 19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덕ㆍ김미란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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