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 발전이 막힐 수 있다.[사진=뉴시스]
전기차는 급발진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다. 전기차에서도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정부와 완성차 제조업체의 태도다. 내연차의 급발진도 인정하지 않는데, 전기차는 더 모르쇠로 일관할 공산이 크다. 자동차 급발진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야 하는 이유다.

최근 배우 손지창씨의 전기차 급발진 사고소송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급발진 사고를 낸 차량은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X’다. 이 때문에 ‘전기차에서도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느냐’가 화제로 떠올랐다. 전기차 급발진 사고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사례는 없다. 세계적으로 보급된 전기차 대수가 워낙 적어서 급발진 사고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문제는 전기차의 급발진 사고가 지금부터 골치를 썩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내연기관차에 급발진 사고가 발생한 건 1980년대인데, 당시는 자동차에 전기전자 시스템이 본격 탑재되기 시작하던 때다. 자동차 기술이 한단계 올라설 무렵에 ‘사고’가 터졌다는 얘기다. ‘개방형 OS를 활용한 커넥티드카가 등장하는 지금이 전기차로선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통화 중에 끊기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전기차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없고 대신 모터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는 구조다. 모터에 이상 전력이 공급되거나 회로에 문제가 발생하면 모터가 과하게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동력이 곧바로 바퀴로 전달되면 급발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의 급발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내연차의 급발진도 인정하지 않는데 전기차는 더 모르쇠로 일관할 거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의 태도도 걱정스럽다. 국내 급발진 사고 신고건수만 해도 연간 80~100건에 이르지만 우리 정부는 급발진 원인을 모두 운전자 실수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도 미국처럼 자동차 급발진 사고 발생 시 운전자의 대응책도 전혀 알리지 않는다. 운전자 실수라면 매뉴얼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닌가.

소송이 쉬운 것도 아니다. 국내법에 따르면 운전자는 급발진 소송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자동차 결함을 밝혀야 하는 의무가 운전자에게 있어서다. 물론 자동차 제조사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결함이 없다는 걸 자동차 제조사가 밝혀야 한다.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제조사와 운전자가 합의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급발진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2009년말 이후 출시된 자동차는 대부분 진단 커넥터가 있어서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 운전자의 동작 정보를 실시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저장하는 장치만 있으면 급발진 체크가 가능한 셈이다.

특히 전기차에는 더 많은 급발진 제어장치를 추가할 수 있다. 내연기관차보다는 공간이 많아서다. 따라서 회로를 강제로 차단하거나 모터에 전자 브레이크를 다는 등 더 많은 안전장치를 장착해 여러 단계에서 급발진 위험을 줄인다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안전한 자동차로 거듭날 수도 있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자동차 급발진 연구회에서도 이런 장치를 개발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자동차에 이런 장치를 탑재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지 않고 있다. 결국 내연기관차의 급발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전기차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급발진 문제는 차근차근 풀어야 할 숙제다. 제조사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향후 등장할 자율주행차 등 산업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정부와 제조사 모두 깨달아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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