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침체 어쩌나

▲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소비심리 저하 현상의 고착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사진=뉴시스]
“5월 첫째 주의 앞, 뒤 주말에 대체근무를 하면 황금연휴가 가능하다.” 지난 9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자 이 장관은 “소비 진작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그의 빈말이 남긴 여운은 길었다. 소비 진작을 위한 방안이라는 게 늘 이렇듯 즉흥적이고, 실속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헛발질이 소비절벽을 깎고 있다.

서민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불안한 사회 환경에 밑바닥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탓이다. 소비재 수입 증가율이 2015년 3.4%에서 2016년 1.9%로 추락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을 보자. “2016년 9월에 2017년 한국 경제를 전망할 당시에는 대체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경기 회복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정치 리스크 발생으로 심리가 급속도로 악화돼 소비심리 냉각은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서민의 팍팍한 삶은 지표에도 나타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2016년 3분기)’를 살펴보면 주머니를 열지 않는 서민가구가 지난해 1분기 이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3분기에는 100만원 미만을 소비하는 가구가 13.01%를 차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2009년 2~3분기에 기록한 14.04%에 이은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4만5400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0.7% 증가했지만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소득을 따져보면 되레 0.1% 줄어 400만6700만원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2009년 3분기에 비해 소득과 소비는 얼마나 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질소득은 두자릿수(13.15%), 실질소비지출은 한자릿수(3.61%) 증가율을 보였다. 늘어난 소득보다 소비를 줄였다는 얘기다. 왜일까.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여기에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소비자물가가 16.2% 오른 것까지 생각하면 소비는 더 줄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계동향 숫자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전체가구와 100만원 미만을 소비하는 가구 사이에서 명확한 간극이 드러났다. 소비품목을 살펴보자. 식료품ㆍ비주류음료 소비는 2009년과 비교했을 때 전체가구는 33만1700원에서 30만8900원으로, 100만원 미만 소비 가구는 20만9200원에서 19만원으로 줄었다. 주류ㆍ담배 소비도 전체가구(2만7900원→2만3200원), 100만원 미만 소비 가구(1만9500원→1만1700원) 둘 다 감소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너나할 것 없이 먹을 것은 물론 기호식품도 줄인 결과다.

하지만 의류ㆍ신발, 음식(외식)ㆍ숙박 소비에선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전체가구의 의류ㆍ신발 평균소비는 2009년 10만9600원에서 2016년 11만1400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00만원 미만을 소비하는 가구는 2만3800원에서 2만3200원으로 줄었다. 증감폭이 적긴 하지만 소비규모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난 거다.

경기전망지수 4년 만에 최저

음식ㆍ숙박 소비도 전체가구는 2009년 29만4400원을 소비하던 것이 2016년 31만5900원으로 늘었지만 100만원 미만 소비 가구는 8만5800원에서 7만6600원으로 씀씀이를 줄였다. 이처럼 100만원 미만을 소비하는 가구의 ‘여유소비’가 없어진 셈이다.

이런 소비심리 위축은 유통업계의 상황과도 연결된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발길이 뚝 끊긴 유통업계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힘겨운 2016년을 지나왔는데 2017년은 더 힘들 거란 암울한 전망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전국의 939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2017년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분기 경기전망지수는 ‘87’로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RBSI가 80점대를 기록한 건 2013년 1분기 만에 처음이다. 특히 인터넷쇼핑몰(108)과 홈쇼핑(104)을 제외하곤 모두 90 미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마트는 유통채널 중 가장 낮은 79를 기록, 침체된 업종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응답한 업체의 과반수는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매출부진(50.2%)’을 그 이유로 꼽았다. 소비심리 위축이 유통업계 부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 100만원 미만으로 소비하는 가구가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유통업계는 살아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부정적인 견해뿐이다. 남성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저성장으로 소비여력이 감소되다 보니 산업성장률이 둔화되고, 이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우려했다.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나날이 심각해지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물론 정부도 소비심리 회복을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놨다. 지난 연말 ‘2017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밝힌 ‘소비심리 조기 회복 및 구조적 소비부진 대응 강화’라고 발표한 정책과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과연 그것이 소비회복을 위한 방안인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헛다리짚는 정부 정책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이렇다. 소비심리 회복을 위해 소비 인센티브 강화 및 관광ㆍ여가를 활성화한다는 것과 청탁금지법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한다는 거다. 특히 ‘인센티브 강화’ 방안은 10년 이상 된 노후경유차를 말소등록하고 신차로 교체하면 개별소비세와 취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준다는 건데 이것이 과연 소비진작을 위한 방안인지는 의문이다. 고령층의 일자리를 창출해 고령의 소비성향을 높인다는 방안도 있다. 이 역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소비회복 방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확한 타깃’을 정하는 게 위축된 소비심리의 고착화를 막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소비회복을 위해서는 소비성향이 높은 1인 가구, 소비 규모 자체가 높은 고소득층의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소비성향이 높으나 소비여력이 적은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소비진작책을 펴는 것은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헛발질이 소비심리를 오히려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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