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원 GS홈쇼핑 COE파트 부장

뼈아픈 실패를 가르치는 이가 있습니다. ‘망한 기업 CEO’ 유정원(45) GS홈쇼핑 COE 파트 부장입니다. ‘나처럼 하면 실패한다’는 그의 자책은 패자부활전을 허락하지 않는 꽉 막힌 한국경제에 울림을 줍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그를 만났습니다.

유정원 부장은 다시 창업을 할거냐는 질문에 “안 할 거다. 다시 해도 망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벤처인의 성공을 돕는 리치메이커로 살겠다”고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정원 부장은 다시 창업을 할거냐는 질문에 “안 할 거다. 다시 해도 망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벤처인의 성공을 돕는 리치메이커로 살겠다”고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1장. 술, 빚, 그리고 좌절

2014년 4월, 서울 잠원동의 작은 원룸. “쏵….” 그는 날카로운 빗소리에 눈을 떴다. 그날도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신 터. 눈을 뜨기 싫어 알코올을 그렇게 들이켰건만 소용없었다. 사람 한명 누우면 꽉 차는 방.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자신이 직접 세우고, 7년 동안 키웠던 회사의 ‘청산작업’ 때문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맨정신으론 불가능했다. 날카로운 꼬챙이가 심장을 후벼파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가 허구한 날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신 것도,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죽어가는 회사의 서류가 담긴 20여개 박스, 낡은 PC와 프린터, 그리고 ‘빚’. 그에게 남은 전부였다. 회사에는 빨간딱지가 붙었고, 그 많던 직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당장 줘야 할 미지급 월급, 퇴직금이 수천만원에 달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i사진폴더앱’으로 이름을 날렸던 벤처 1.5세대 유정원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촬영 콘셉트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유정원 부장은 “무엇이든 상관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하는 일보다 수동적인 삶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실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실패 Class가 필요한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촬영 콘셉트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유정원 부장은 “무엇이든 상관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하는 일보다 수동적인 삶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실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실패 Class가 필요한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 2장. “장기라도 팔아야 한다”

눈을 뜨는 것도 싫었지만 비가 오는 건 더 싫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면, 가뜩이나 지친 마음이 더 울적해져서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우중雨中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간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당신의 장기를 삽니다’, 이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한번 빚이 생기니까 정말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어요. 순식간이었죠. 그 때문인지 비가 오면 ‘장기라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지배했어요.” 그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창업시장에서 나는 패배자였다”며 고개를 떨궜다.

# 3장. 잘나가던 벤처기업 CEO

그는 꽤 잘나가는 ‘벤처기업 CEO’였다. 삼성SDS·싸이월드·네이버·다음 등을 거치면서 실력과 명성을 쌓았다. 2007년 7월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창업을 했다. 온라인 PR 대행사 ‘인사이트미디어’였다.

자본금 5000만원을 들여 만든 이 회사는 금세 ‘업계 톱3’로 올라섰다. 삼성전자·크리스챤디올·아모레퍼시픽 등 클라이언트도 빵빵했다. PR·마케팅 등 ‘을乙 비즈니스’만 했던 것도 아니다. 2009년 9월 아이폰이 한국시장에 상륙한 직후인 12월엔 애플리케이션(앱)도 론칭했다.

 

서울 영등포구 GS강서N타워에 설치한 천막사진관에서 유정원 부장이 인터뷰 중 활짝 웃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서울 영등포구 GS강서N타워에 설치한 천막사진관에서 유정원 부장이 인터뷰 중 활짝 웃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기민한 대응이었다. i사진폴더·라디오알람·세계의 명연설 등 30여개 앱을 출시했는데, 그중 몇몇은 대박을 터뜨렸다. ‘라디오알람(2010년)’은 글로벌 8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i사진폴더(2010년)’는 2012년 애플 앱스토어가 발표한 ‘역대 최고 유·무료 앱 톱25’에서 한·일 앱스토어 유료앱 부문 톱3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이대로만 가면 앱 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넘치던 때”라고 회상했다.

# 4장. 풍랑 만난 초짜 선장

회사를 세운 지 5년. ‘인사이트미디어’는 알차게 컸다. 보이는 실적보다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더 인정받았다. ‘흙 속 진주’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VC(벤처캐피탈)가 그의 회사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곳곳에서 투자 제안이 밀려들어왔다.

그는 고민했다. “투자를 받아서 회사를 확 키울 것인가, 지금의 속도를 유지할 것인가.” 장고 끝에 그는 전자를 택했고, 2012년초 20억원을 투자받았다. 그는 야심찼고, 당당했으며, 거침없었다. 실패는 패배자나 늘어놓는 변명쯤으로 여겼다.

 

천막사진관에서 포즈를 잡은 COE 파트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허정연, 오현석, 김동현, 유정원, 김나율, 서우석, 장정식. [사진=오상민 작가]
천막사진관에서 포즈를 잡은 COE 파트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허정연, 오현석, 김동현, 유정원, 김나율, 서우석, 장정식. [사진=오상민 작가]

하지만 위기는 자신감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능하다. 자신감이 강할수록 숱한 변수를 허투루 여길 공산이 커서다. 그도 그랬다. 자신감은 오만을 불렀고, 오만은 주변을 보지 못하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앱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 투자를 받았지만 ‘공룡앱(카카오게임·2012년 7월 론칭)’이 등장하는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룡앱이 기지개를 펴자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앱들에 붙던 광고가 줄줄이 떨어져 나갔다. 유료앱 매출만으론 투자를 받고 늘린 직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서둘러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돈 빠지는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무서웠다. 태풍을 처음 만난 초짜 선장처럼 키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렇게 1년여. 인사이트미디어는 사실상 ‘쭉정이 회사’로 전락했고, 그는 작은 원룸으로 들어갔다. 비가 내리면 발걸음을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옮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내 깜냥이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죠.”

# 5장. 리치메이커의 인생 2막

한탄·원망…. 그의 작은 원룸은 ‘좌절의 공간’이었다. 맑은 날엔 커튼이 드리워졌고, 비가 오는 날엔 텅 비었다. 그러던 2015년 7월, 친분이 있던 노상범 홍익인터넷 창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너한테 딱 맞는 자리가 있는데,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때?” 그는 되물었다. “저 따위가 필요하답니까? 실패한 사업가인데요.”

 

GS홈쇼핑이 개최한 해커톤 행사에 참가한 COE 초기멤버들. [사진=더스쿠프 포토]
GS홈쇼핑이 개최한 해커톤 행사에 참가한 COE 초기멤버들. [사진=더스쿠프 포토]

노상범 창업자가 추천한 자리는 GS홈쇼핑의 COE(Center of Excellency) 파트였다. 2010년 설립된 COE는 GS홈쇼핑 미래사업부 벤처투자팀의 한 파트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간접 투자를 진행한다. 사업개발·UX·커머스 등의 전문인력들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미국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Y콤비네이터’ ‘500 스타트업’과 유사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GS홈쇼핑이 COE를 중심으로 직접투자한 스타트업은 15곳(이하 2016년 3분기 기준), 금액은 440억원에 이른다. 간접투자액까지 합치면 900억원이 훌쩍 넘는다. GS홈쇼핑이 유망 스타트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대기업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GS홈쇼핑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다시 물었다. “전 실패한 사업가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추천될 이유가 없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당신의 실패담이 다른 스타트업에 좋은 교훈을 줄 겁니다.”

인생은 아이러니컬하다. 때론 성공이 실패를 부르지만, 그 실패가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망한 기업 CEO 유정원, 아니 리치메이커(Richmaker) ‘유부장’의 두번째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노래와 함께…. “나처럼 하지 마세요, 이렇게…♬♬”

2011년 11월 열린 ‘스마트콘텐츠 2011 어워드’ 이노베이트 부문에서 수상한 유정원 부장(당시 인사이트미디어 대표). [사진=뉴시스]
2011년 11월 열린 ‘스마트콘텐츠 2011 어워드’ 이노베이트 부문에서 수상한 유정원 부장(당시 인사이트미디어 대표). [사진=뉴시스]

# 6장. 실패 Class 「CEO 경영학」

✚ 많은 전문가들이 ‘실패의 경영학’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래서 실패했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정형화하는 건 어려워요. 그러기엔 변수가 너무 많죠.”

✚ 실패를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 헛발질을 참 많이 했어요. 실패를 숱하게 했기 때문인지 CEO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죠. 스타트업 CEO는 하루에도 수십개가 넘는 의사결정을 해요. 그 와중에 의사결정을 잘못할 수도 있죠. 이런 점에서 ‘실패 사례’를 탐구探究하는 건 중요한 절차라고 봐요.”

✚ 실패 사례를 탐구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뻔한 실패를 나열하고,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한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 스타트업 CEO에게 더 많은 ‘선택의 옵션’을 준다는 얘기군요.
“CEO가 지나치게 바쁘면 뻔한 실패를 하기 십상이에요. 10개가 넘는 옵션을 고민해도 시원찮은데, 2~3개만 살펴보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그랬구요.”

✚ CEO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반문할게요. VC가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무엇을 본다고 생각하세요?”

✚ 회사의 비전·기술력 등이 아닐까요?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수많은 스타트업의 비전과 기술력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CEO를 보면 그 기업을 알 수 있다.’ 같은 생각이에요. 스타트업의 8할은 CEO죠.”

벤처투자사는 능력 있는 창업인을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 창업시장에 활력이 깃든다. 사진은 벤처투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된 GWG 행사. [사진=더스쿠프 포토]
벤처투자사는 능력 있는 창업인을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 창업시장에 활력이 깃든다. 사진은 벤처투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된 GWG 행사. [사진=더스쿠프 포토]

# 7장. 실패 Class 「로망과 오만의 비극」

✚ 당신은 실패한 CEO였나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죠.”

✚ 실패 이유를 탐구한다면.
“로망·욕심·오만…, 수없이 많아요.”

✚ 로망이 뜻하는 건 뭔가요?
“인사이트미디어는 온라인 PR 대행사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도 저는 ‘을 비즈니스’에 만족하지 못했죠. 반면 SNS와 앱에는 집착을 했어요. 로망의 변질된 모습이었죠.”

✚ SNS에 집착한 결과는 어땠나요?
“2011년 론칭한 SNS 앱 ‘헬리젯닷컴’은 2억~3억원을 들여 론칭했는데, 10만명 모으고 접었어요. 뼈아픈 결과였죠.”

✚ 앱을 발판으로 인사이트미디어가 성장한 건 사실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욕심을 부린 탓인지 앱이 너무 많았고, 위기의 순간 이게 발목을 잡았어요.”

✚ 2012년 9월 카카오게임이 론칭된 후를 말하는 건가요?
“카카오게임이 출시되면서 시장이 흔들렸어요. 무료앱에 붙던 광고가 카카오게임으로 쏠렸죠. 혜안이 있는 CEO라면 쓸모없는 앱을 정리했을 거예요. 전 반대였죠. ‘선택과 집중’을 못하고 모든 앱을 성공시키려 했어요. 욕심이 화를 부른 셈이죠.”

GS홈쇼핑이 육성하는 스타트업. [사진=오상민 작가]
GS홈쇼핑이 육성하는 스타트업. [사진=오상민 작가]

✚ 역설적이지만 20억원 투자를 받은 후(2012년 초)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투자금을 어떻게 쓰겠다는 전략을 명확하게 세우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매출이 감소하니까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 돈으로 직원을 늘렸으니 부담은 배가됐구요. 그제야 ‘투자도 경영이구나’ 자책했죠.”

참 이상하다. 인사이트미디어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성공방정식’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팔색조처럼 적응했고, 사업 포트폴리오도 빠르게 다각화했다. 그런데도 이 회사의 간판엔 ‘실패’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그만큼 시장은 역동적이고, 불가측不可測하며, 위험하다.

# 8장. 실패 Class 3교시 「창업과 흙수저」

✚ 예비 창업자가 들어야 할 실패담이네요.
“창업만큼 어려운 것도 없어요. 100이면 100 실패하기 십상이죠.”

✚ 창업을 쉽게 여기는 이들은 여전히 많아요.
“치킨집이나 하지 뭐…. 이런 거겠죠?(웃음) 전 어쩔 수 없이 창업을 돌파구로 삼으려는 사람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봐요. 그런 마음가짐으론 살아남기 어려워요. 하지만 창업을 꿈꿔온 사람에겐 ‘도전 가치’가 분명히 있어요.”

✚ 왜죠?
“창업의 발목을 잡던 규제가 느슨해졌어요. 예전과 달리 자본금 100만원만 있으면 회사를 만들 수 있고, 연대보증도 사라졌죠.”

✚ 벤처 생태계가 달라진 건 아니지 않나요?
“옳은 지적입니다.”

 

유정원 부장은 창업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정원 부장은 창업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업시장의 문턱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벤처 생태계’에 활력이 넘치는 건 아니다. 관官 사람들은 “벤처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보고 싶은 통계만 본 데서 기인한 허상일 뿐이다.

벤처기업협회의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 결과(2016년)에 따르면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스타벤처는 2004년 68곳에서 2015년 474곳으로 7배가 됐다. 하지만 통계의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5년 스타벤처는 2013년(454곳) 대비 고작 4% 늘었다. 매출 1조원 벤처기업은 2013년 7곳에서 2015년 6곳으로 되레 줄었다. 관官 사람들이 봐야 할 건 건조한 통계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팍팍한 현실이다.

✚ 벤처시장도 정체기를 맞은 듯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그렇죠.”

✚ IT 기반의 벤처시장은 더 그런 것 같아요.
“2000년대 벤처 시대가 열린 뒤 20여년이 흘렀지만 IT 벤처 생태계는 여전히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김범수(카카오), 이해진(네이버) 등 4명이 이끌고 있어요. 이들을 위협하는 인물도 사실 없죠.”

✚ ‘배달의 민족’ ‘쿠팡’ 등의 성장세가 놀랍지 않나요?
“브랜드를 알리는 덴 성공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브랜드들이 지속성장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해요.”

✚ 벤처시장도 양극화됐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더 위험한 흐름도 있어요.”

✚ 뭔가요?
“미 아이비리그 출신의 인재들이 국내 벤처시장에 진입하고 있어요. 시장에 활력을 넣는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그림자도 짙죠. 이들은 외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문화도 경험했어요. 네트워크도 나름 갖추고 있고, 부모 덕분인지 자금력도 괜찮죠.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흙수저들로선 맥빠지는 환경일지 몰라요.”

무겁고 예민한 그의 말. 험난한 시장에서 분투奮鬪 중인 우리네 흙수저 창업자들을 낙담케 할 만하다. 그는 “그럴수록 기회의 문을 침착하고 냉정하게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9장. 실패 Class 4교시 「준비의 미학」

✚ IT 벤처 창업자는 어디서 기회를 모색해야 할까요?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 원론적인 해법 아닌가요?
“때론 원론도 중요해요. 무엇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라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이곳의 문화를 파악한 다음 기술력을 얹어야 기회가 생길 겁니다.”

✚ 좋은 예가 있나요?
“아자르를 아시나요? 벤처기업 하이퍼커넥트가 2013년 11월 출시한 영상 메신저 앱이에요. 세계 200여개국에서 기록한 다운로드 수가 1억건에 육박하죠. 특히 중동에서 인기가 많아요.”

✚ 이유가 뭔가요?
“중동 사람들은 대면對面 대화를 즐겨요. 그런데 오후 2~3시면 퇴근을 하니까, 영상앱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죠. 기술력도 한몫했어요. 하이퍼커넥트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하이퍼RTC’라는 솔루션을 개발했는데, 이를 통해 유저가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구글 웹브라우저에서 채팅을 할 수 있게 됐죠. 아자르는 성공 교본으로 삼을 만해요.”

✚ 해외시장과 기술력. 이 둘은 성공의 전제인가요, 출발의 전제인가요?
“출발의 전제입니다.”

✚ 창업 하기 전 준비를 차분히 하라는 거군요.
“당장 창업을 하는 것보다 해외시장을 탐구하는 절차를 밟는 게 더 중요해요. 창업만 독려하는 사람들도 이젠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말할 땐 화통하게 웃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넬 땐 매서운 말투를 썼다. ‘나처럼 실패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느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엘리베이터 피치’를 강조해요.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짧은 시간에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창업을 꿈꾸시나요? 용기를 갖고 선배 창업가를 찾아가 물으세요. 엘리베이터도 상관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창업 선배들도 좋아할 겁니다.” 리치메이커 ‘유부장’의 진짜 클래스(Class)는 지금부터다.

글=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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