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서 씹어볼 만한 말의 성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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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덕 기자
  • 호수 225
  • 승인 2017.01.2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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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논박할 만한 잠룡들의 약속

▲ 설 연휴 기간,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선 잠룡들의 공약을 논해보면 어떨까.[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경제공약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여차하면 정치권과 국민 모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대선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이번 설 연휴 기간,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선 잠룡들의 공약을 논해보면 어떨까. 중요한 검증 절차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절차가 법정기한(6개월) 안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서다. 벌써부터 대선주자들은 참신한 공약 찾기에 분주하다. 주목되는 공약도 조금 있다. 대표적인 게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지급’ 공약이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두가지다. 하나는 생애주기별 배당으로 아동배당(0~12세), 청소년배당(13~18세), 청년배당(19~29세), 노인배당(65세 이상)이다. 또 하나는 장애인과 농민을 위한 특수배당이다.

재원마련 방법은 명확하다. 우선 정부 재정 약 400조원 중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7%(약 28조~30조원)를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국토보유세를 걷어 추가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전체 토지자산 가격은 약 6500조원 정도인데, 연간 보유세가 약 7조원(종합부동산세 2조원+재산세 5조원)에 불과한 만큼 고액자산가들에게 부담을 가하겠다는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기본소득제’ 공약을 냈다. 두 시장은 이미 서울과 성남에서 청년배당과 청년수당을 실현한 전례가 있다. 이를 경험삼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거다.

朴, 공약만은 100점 만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최장 3년간 육아휴직 연장’ 공약도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육아휴직을 최장 3년(3회 분할)에 걸쳐 쓸 수 있는 건데, 공공부문 실시 후 민간부문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다. 특이한 점은 만 18세 자녀를 위해서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휴직수당을 현행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도 담고 있다. 재원마련 방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국민 휴식제’를 내걸었다. 교수들이 일정 기간 이상을 근무했을 때 안식년 혹은 안식월 휴가를 떠나는 것처럼 직장인에게도 안식월을 주자는 게 골자다. 물론 기업 상황에 맞게 도입하고, ‘국민 휴식제’를 실시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공약들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게 되겠지만, 현실이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공약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공약이 참신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2012년 12월 대선. 박 대통령이 내건 경제공약들은 당시로선 꽤 혁신적이었다. 재원 마련의 해법이 모호했다는 걸 빼면 야권조차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늘 야권이 주장해온 재벌개혁을 전제로 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내놔서다. 그만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참신한 공약들을 내놨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딴판이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거미줄처럼 얽힌 정경유착의 고리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일부 재벌 대기업에 집중돼 대기업의 위기가 곧 한국경제의 위기인 수준까지 왔다. 내수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고, 가계부채 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경제양극화는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약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거나, 잘못 이행했거나 혹은 용도 폐기하면서 공약 이행에 따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공약 중에는 현재 대선주자들이 재활용할만한 공약들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가 간단히 정리해봤다. 일단 18대 대선 공약의 핵심키워드는 경제민주화였다. 경제양극화로 인해 부의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주머니 사정이 계속 나빠지자 등장한 공약이다. 하지만 공약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알맹이는 대부분 빠졌다.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불법ㆍ사익편취 행위 근절’ 공약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어길 경우 형량을 강화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사면권 행사도 제한하기로 했다.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부당내부거래 금지규정 강화와 부당내부거래로 인한 부당이익 환수’는 규제대상(자산 5조원 이상, 총수일가 상장사 지분 30% 이상)을 지나치게 좁게 설정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재벌들은 지분매각이나 합병, 분할을 통해 규제대상에서 벗어났다.
더구나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에 일감몰아주기를 허용한 꼴이 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입법목록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은 ‘새 공약’이다.

고치고 다듬으면 새 공약

일자리 공약은 어떨까.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새 일자리 창출’ 공약은 비정규직 확대 공약으로 변경됐다. 경기변동에 대비해 고용을 안정화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공약 역시 성과연봉제를 통한 정리해고 요건완화로 바뀌었다. 청년고용을 늘리겠다고 했음에도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9.8%를 찍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노동 공약에서는 사용자의 갑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률안 개정’을 내걸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기준을 마련해 근로자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은 2013년 시급 4860원을 2017년 6470원으로 1610원 올리는 데 그쳤다. 시급 1만원을 현실화할 방법론만 있다면 재활용에 문제는 없다. 복지에서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는 완벽히 실패했다. 따라서 합리적인 재원마련책만 잘 보완한다면 ‘증세 있는 복지’를 다시 논의해볼 수 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부 시스템 개편 공약과 외교 공약도 있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 강화’ 공약은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서 보듯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때문에 대선주자들이 반드시 처방전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메르스 약 10조원, AI 약 1조4000억원, 세월호 침몰은 가늠 불가)이 크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따른 남북관계 정상화 공약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비정상화돼서다.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할 해법도 필요한 상황이다.

18대 대선에서 재활용할 공약은 또 있다. 야당 공약이다. 그중에서도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노동자 경영참여를 통한 기업민주화 실현’이 눈에 띈다. 지금과 같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경영을 하지 않았으니 해고당할 이유도 없다”는 노조의 주장을 막을 수 있는 만큼 사측에서도 충분히 고려해볼 일이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18대 대선 공약을 차용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이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심 대표의 공약을 재활용하고 있다. 18대 대선과 달리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내걸고 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재벌 대기업들의 목소리가 약해지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 광풍 불 것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팀장은 “특히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경제민주화 문제는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18대 대선과 지금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더 강력한 경제공약들을 내놓지 않으면 차별화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한 재벌개혁을 받아들일 여론이 형성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재활용할 만한 공약은 많다. 다만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공약은 무용지물이다. 박 대통령이 좋은 공약을 들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좋은 공약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인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좋은 공약이 제 주인을 만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얼마나 일관된 공약을 냈는지, 공약 실천을 증명할 사례는 있는지, 지금껏 말바꾸기를 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잘 살피는 거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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