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3구 공인중개사 사무소 가보니…

‘강남 집값이 떨어진다’면서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조이면서 강남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현장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강남 3구 일대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반응은 구별로 제각각이었지만 뒷골이 서늘한 이야기도 있었다. “강남 부동산이 진짜 무너질 것 같아요? 죽는 계층은 따로 있어요.”

▲ 11ㆍ3 대책 이후 강남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사진=이지원 기자]

삭풍이 불던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강남 대표 부촌富村 중 하나로 꼽히지만 고급빌라가 즐비한 청담동ㆍ대치동 분위기와는 무언가 달랐다. 1970년대 초반에 지어진 낡은 5층짜리 주공아파트와 아케이드형 상가 때문이다. 신반포로를 중심으로 양 길가에 편의점ㆍ미용실ㆍ베이커리ㆍ호프집 등이 자리한 모습은 지어질 당시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 취재팀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읽고 싶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문을 열고 먼저 11ㆍ3 대책의 여파를 물었다. 11ㆍ3 대책의 골자는 집단대출 보증요건과 청약요건 강화 및 전매 제한 등이다. “문의가 줄어들기는 했는데, 그뿐입니다. 원래 거래가 잘 이뤄지는 동네가 아니에요, 반포동은….” 공인중개사 A씨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심심한 표정으로 PC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서도 취재팀과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집값 하락’의 뉘앙스가 담긴 질문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이번엔 시장 전망을 물었다. 고객도 없고 걸려오는 전화도 없었지만 A씨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껏 서울에 아파트가 없어서 강남으로 몰렸던 게 아니잖아요.” 불편한 표정으로 A씨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언론이 ‘2억원 올랐네, 3억원 떨어졌네’하고 떠드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결국 살 사람은 사거든요. 이 정도 가격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한정돼 있습니다. 경쟁률이 어떻고, 문의가 어떻고 해도 결국에는 팔립니다. 아무리 비싸도 팔린다구요.”

부쩍 줄어든 거래 문의

인근의 다른 사무소를 방문했다. 이번에도 고객은 없었다. 방문 당시 이 일대 최대 이슈를 떠올렸다. ‘재건축 승인.’ 현재 5층짜리 2090가구로 이뤄진 반포 주공 1단지는 최고 35층짜리 5875가구의 매머드급 대단지로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강남을 들썩이게 했던 수많은 재건축 단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개발 시기다. 이들은 18일 오후에 나올 도시계획위원회의 재건축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의를 넘지 못하면 2018년 부활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참고:이 단지는 18일 늦은 오후 서울시로부터 사실상의 승인을 받았다.]

이런 초조한 분위기는 중개 현장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공인중개사 B씨는 “지난해 상반기 중 3.3㎡(1평)당 가격이 7000만원이 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2억원가량 호가가 빠지긴 했습니다만, 재건축이 계획대로만 되면 또 분위기가 달라지겠죠. 우리나라 역사상 한강변에 이런 대규모 단지가 공급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방문 고객은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지도 않았다. 1월 들어 단 한건의 거래도 진행하지 못했다며 한숨부터 내쉬는 곳도 있었다. 정부 대책의 타깃이 또 강남이 된 점을 두고는 불만을 쏟아냈다. 왜곡된 시장을 만든 게 바로 그 정부였기 때문이다. 다만 B씨는 11ㆍ3 대책을 두고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제 밥벌이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필요한 대책이었습니다. 그간 투기꾼들이 어질러놓은 시장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늦었지만, 강남 부동산 시장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는 흐름이길 바랍니다.”

이번에는 개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해 분양 당시 고분양가 논란으로 도시보증공사(HUG)가 3차례나 분양 보증 거부했던 디에이치아너힐즈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높게 올린 방음벽에서도 고급아파트 위엄이 느껴질 정도였다.

공인중개사 간판으로 뒤덮인 개포동 주공4단지 상가에 들어섰다.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방문객과 상담 중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방문객이 없는 사무소마저 “고객과 중요한 통화 중”이라면서 손을 내저었다. 생색을 내듯 인터뷰에 응한 공인중개사 C씨는 “11ㆍ3 대책 이후 거래 자체가 줄었지만 상담을 원하는 고객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에 재건축 매매거래에 대한 강력한 처방은 포함되지 않아서다. 신규 분양에 집중된 대책은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강남 재건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거다. 얘기를 하는 중에도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그제야 한때 ‘개가 포기한 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곳이 고급 아파트촌으로 바뀐다는 게 실감이 났다.
▲ 디에이치아너힐즈는 고분양가 논란을 겪고도 분양에 성공했다.[사진=이지원 기자]

끝으로 송파구 신천동을 찾았다. 이 지역은 지난해 재개발 이슈에는 한발 비켜나 있었다. 대신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 롯데월드타워 완공 등 여러 호재로 집값 상승이 꾸준했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얼마 전 송파구에 ‘역전세난’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대체 어떤 근거로 쓴 기사인지 궁금했어요. 여전히 전세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송파구에서만 30년을 일했다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사장은 되레 질문을 던졌다. “강남 집값, 크게 떨어질 것 같으세요?” “아무래도 떨어지지 않을까요? 대출금리도 오르고 공급도 많고, 규제도 하니까요.” 그는 헛웃음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들, 강남은 강남이에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나도 강남에 살아봤으면…’하고 생각하죠. 강남이 그 모진 풍파를 겪고도 아직 부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에요. 교통도 편리하고 생활 인프라가 좋으니까 그렇죠. 어차피 투기꾼들은 이미 시장을 대부분 나갔어요. 이들이 올려놓은 웃돈을 주고 사는 실수요자들, 자녀 교육을 위해 빚을 내 전월세로 강남에 입성하는 임차인들이 집값 하락을 막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거죠.”

“강남은 그래도 강남이다”

그는 언론에서 강남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호들갑을 떨 때도 문의 전화가 자주 왔다고 했다, “가격을 물어보고 실망하더라구요. ‘아직 그것밖에 안 떨어졌어요?’하고 말이죠. 이게 강남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제일 비싼 동네만을 타깃으로 삼는 정부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높은 분들은 강남 부동산 시장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저는 못한다고 봅니다.” 그는 “오히려 한국 부동산 시장에 시급한 문제는 저소득층 주거가 아니었나요? 이번 대책으로 무주택 서민은 집구하기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요? 결국 서민만 죽는 거예요.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강남만 보고 있으니…”라며 혀를 찼다.

한채에 10억원을 가뿐히 넘는 아파트를 거래하는 부동산 중개인의 시선에도 ‘고단한 서민의 삶’이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결국 현장에서 읽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키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남’이었다. 규제를 푸는 곳도 규제를 하는 곳도 강남인데, 정작 이 도시는 의연한 모습으로 시장에 흐름을 맡기고 있었다.

김다린ㆍ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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