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상인정책 중간 성적표

‘그 나라의 현재를 알려면 시장을 가보라.’ 시장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서민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낯선 외국인은 지금 우리의 시장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혹시 “이 나라는 늙고, 생동감이 없다”고 느끼진 않을까. 그래서 정부가 시장을 살리겠다며 청년상인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성과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 부푼 꿈을 안고 전통시장으로 들어온 청년상인들이 하나둘 시장을 떠나고 있다.[사진=김미란 기자]

“경기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시장이 늙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봐요. 상인들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잖아요. 이러니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지난 연말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의 말이다. 시장이 위축된 수많은 원인 중에는 ‘노쇠’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시장에 손님 발소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15년 전통시장ㆍ상점가 및 점포경영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의 평균 연령은 56.1세다. 통계를 쪼개보면 39세 이하 점포주는 7.9%(29세 이하 1.6%ㆍ30~39세 6.3%)에 그쳤다. 40~49세는 17.3%, 50~59세는 36.4%, 60세 이상 점포주는 38.4%였다. 50대 이상이 약 75%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시장이 늙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정부가 찾은 돌파구가 ‘청년상인’이다. 정부는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청년상인’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활용해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게 골자다. 그렇게 되면 청년상인 점포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장을 찾는 젊은 세대가 늘어 시장에도 활력이 감돌 것이라는 계산이다.

서울시는 현재 3곳의 시장(구로시장ㆍ정릉시장ㆍ증산시장)에 입점한 24개 점포를 지원하고 있다. 각 시장당 2억원씩 6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초기 인테리어 비용, 1년간 임대료도 지원한다. 인테리어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 점포는 교육 등 컨설팅 비용으로 쓰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험이 부족한 청년상인들이다 보니 단기간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면서 많은 컨설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은 이보다 앞서 청년상인 지원정책을 폈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일정 구역에 청년상인이 운영하는 점포 20개 이상을 입점하는 몰(Mall) 형태의 ‘청년몰’ 사업도 있다. 벤치마킹한 모델도 있다. ‘레알뉴타운’을 운영해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전주남부시장, 소포장 판매 떡집을 입점해 인근 가게로 판매 비법을 확산시킨 하남의 신장시장이다. 올해도 중소기업청은 14곳 전통시장에 청년몰을 조성 중이다.

청년상인정책 ‘절반의 성공’

정부는 2015년에 51억원이던 청년상인ㆍ청년몰 예산을 2016년 178억5000만원으로 무려 250%나 증액하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폐점하는 청년상인 점포가 늘고 있다. 왜일까. 초기 보증금과 임대료를 지원해준다는 정부의 달콤함에 넘어가 창업을 한다 해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기존 상인들과의 조화도 중요한 문제다. 일부 지자체에선 시장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상인 세대교체를 위해 청년상인을 유치했지만 기존 상인들과의 마찰로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험이 부족한 청년상인들이 얼마나 버티느냐도 관건이다. 자생력이 부족하다보니 초기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청년상인들을 유인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낯선 환경에 놓인 그들을 보호하진 않았던 거다.

지난해 4월 부푼 꿈을 안고 구로시장 영프라쟈에 음식점을 오픈했다가 12월 폐업한 이형은(가명)씨도 그중 한명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긴 했지만 장사가 안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임대료를 지원받는다 해도 장사가 되지 않으면 거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글쎄요. 다시 가게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16개였던 영프라쟈의 점포는 현재 4개 점포가 비어 새로운 청년상인을 모집 중이다.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엔 지난해 12월 15일 5개 점포가 문을 열었다. 당초 성북구청은 10개 점포를 목표로 청년상인을 모집했지만 문을 연 건 5개다. 길음시장 창업지원사업단 관계자는 “처음부터 잘 되길 기대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기존 상인들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과 시너지를 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거다. “일단 인지도를 높여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야겠죠. 그러려면 1~2년 이상 사업을 지속해야죠.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일 같아요.” 중기청 관계자 역시 “정부 지원을 받은 청년상인들의 1년차 생존율이 80%로 평균인 60%보다 높다”며 성패를 논하긴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울풍물시장 ‘청춘1년가’는 봄을 준비 중이다.[사진=김미란 기자]
그래도 청년들은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2월의 첫날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청춘1번가’에서 만난 청년들도 그랬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물건과 수많은 장인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청춘1번가’ 청년들은 핸드메이드 액세서리, 소품, 드라이플라워 등 저마다의 장기를 살린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이곳은 서울풍물시장활성화사업단 주체로 1기 ‘청춘1번가’ 사업을 운영했다가 몇 달 만에 사업단이 해체되며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하나둘 청년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7개 점포가 한지붕 아래 모여 있다.

청년상인 생존율 높지만…

“1기 사업이 문제가 있었던 만큼 처음엔 서울시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저희가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이젠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도와주세요. 수익이 아직 많진 않지만 그것도 하다보면 되지 않을까요?”

온라인쇼핑몰을 하다 오프라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이것저것 알아보다 청춘1번가를 알게 됐다는 나수영(가명)씨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분명 자신의 인생에서 값진 시간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곳에서 처음 준비하는 봄이에요. 겨울에는 우리 나름대로 예쁘게 꾸민다고 트리 장식도 했어요. 지금은 봄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까 머리를 맞대고 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준비하는 청춘들. 봄은 끝내 겨울을 이긴다지만 그들의 마음에 과연 봄은 올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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