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 ‘한국 내 프랑스의 해’ 연회에 참석한 조원태(왼쪽) 사장, 조양호(가운데) 회장, 조현민 전무.[사진=뉴시스]
정유년 새해 들어 조원태(42) 대한항공 사장이 조종간을 잡고 이륙 채비에 나섰다. 기장機長인 그에게 주어진 목표는 회사 실적개선과 오너 3세 경영능력 증명이다. 하지만 시계視界는 흐리고 불투명하다. 40대 초반의 신예 조 기장이 불순한 일기 속에서도 창공을 보란 듯이 날며 회사와 자신의 꿈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지켜봐 주시면 기대에 부응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원태 사장은 1월 20일 기자들에게 자신이 ‘준비된 CEO’라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항공가족 신년인사회’ 자리에서였다. 1월 11일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지 열흘 만에 언론을 통해 자신의 각오를 회사밖 사람들에게 밝힌 셈이다. 대한항공이 어떤 회사인가. 수송물류그룹인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 얼굴 역할을 하는 국적항공사가 아닌가.

한진그룹 오너 3세인 그는 지난 14년 동안 대한항공 등에서 다양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하지만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글로벌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의 기장機長을 맡았으니 좀 빠르지 않느냐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의 누나 조현아(43)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관련됐던 소위 ‘땅콩 회항’ 사건(2014년 12월 5일)의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런 중책을 맡아 “그는 잘 해낼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한진그룹 삼각편대(대한항공-한진해운-한진)의 하나였던 한진해운이 심각한 경영난 끝에 그룹에서 떨어져나가 공중분해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에 편대장격인 대한항공 CEO를 맡아 더욱 그러하다. 

항공가족 신년인사회에서 그는 경청할 만한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도 했다. “대한항공에서 주력 사업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회사를 이끌어갈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새로 왔다고 기존 것을 뒤집어엎을 생각은 없고 기존에 하던 대로, 선배들이 하던 걸 이어서 잘해보려 한다.” “직원들과 소통을 많이 해 실적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겠다.” “노조와 대화를 하다 보면 중간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자주 만날 계획이고,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은 준비된 CEO이며 ▲당분간 변화보다 기존 시스템을 중시하고 ▲소통과 실적 개선에 주력하는 한편 ▲교착상태에 빠진 조종사 노조와의 분규 해결에도 전향적으로 임하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재계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한진가家 오너 3세 승계 작업이 이번 조 사장 승진인사를 계기로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표이사였던 그가 모처럼 대한항공 실적개선을 이끌어낸 만큼 올해가 그의 사장 승진 적기라고 한진 측은 판단한 것 같다.

일부에서는 이번 인사로 한진가의 3세 경영승계 작업이 8부 능선을 타게 됐다는 진단까지 내놓는다.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이었던 장남 조원태씨를 사장으로 올리고, 차녀 조현민(34)씨는 대한항공 전무B에서 전무A로 승진시켰다. 다만,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아 향후 위상 변화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인사를 하며 오너 2세 조양호(68) 한진그룹 회장의 고심이 무척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창업자였던 선친(조중훈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형제간 다툼을 겪은 그였기 때문이다. 승계 과정에서 3남매의 포지션을 각각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지, 이번 인사가 과연 적기에 이뤄지는지 등에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는 얘기다. 그는 14년 전인 2003년(54세) 한진그룹 경영권을 승계 받아 그룹 회장에 올랐다. 1992년(43세) 아버지 밑에서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고, 10년 정도 경영수업 끝에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부자가 비슷한 나이에 대한항공 사장 자리에 올랐다는 결론이 나온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중책 맡아  

사실 조양호 회장에게 지난 몇년은 보기 힘든 고난의 시기였다. 장녀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큰 고초를 겪었고, 선친이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마침내 공중분해 되는 아픔을 겪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위원장을 맡아 대회 준비에 몰두했지만 권력에 밉보였는지 중도 하차하는 수모도 겪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직접 관련자도 아니면서 청문회에 나가야 했고, 대한항공 노사 분규가 장기화하면서 파업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번에 조 사장이 CEO를 맡게 된 것은 한진가家의 여러 가지 사정과 그룹이 처한 상황, 지난해 조 사장의 실적개선 등이 종합 고려된 결과물로 이해된다.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조 사장은 그룹지주사(한진칼)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호텔사업, 조현민 전무는 광고 및 LCC(저비용항공사) 사업을 주로 맡는 구도를 보였다. 3남매가 그룹 역점 사업을 3분할해 경영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장남 조 사장에게 경영권이 더 많이 주어지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그는 2015년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가 됐다. 지난해 1월 정기인사에서 대한항공 여객ㆍ화물 영업 및 기획부문 부사장이었던 그가 신설된 총괄부사장 직을 맡으면서 업무 영역도 정비ㆍ운항ㆍ객실ㆍ호텔 등 전 부문으로 확대됐다. 그는 이제 그룹 지주사는 물론 대한항공ㆍ진에어ㆍ한국공항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모두 맡고 있다.

조 사장이 지난해 실적 개선을 이뤄낸 점도 승진에 원군援軍이 됐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40% 이상 늘어난 9424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 이후 6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내다보게 만들었다. 조 사장 승진 인사를 발표하면서 대한항공은 이런 설명을 붙였다. “젊고 역동적인 조직 분위기로의 쇄신을 위해 조 총괄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해 경영전면에 배치했다. (조 사장은) 조직 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글로벌 항공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버지처럼 40대 초반에 글로벌 유수 항공사 대한항공 CEO에 오르긴 했지만 그의 앞에는 숙제도 많다. 당장 미국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 유가 상승이란 악재 속에서 실적 개선을 계속 이뤄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1월 11일 취임하면서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원가 경쟁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모든 업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과감한 원가 절감 방안을 찾자”고 강조했다. 2011년 이래 실적 악화로 주주배당을 못해왔는데 이번 주총 때는 ‘배당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노사문제, 부채 등 난제 많아

취임 후 곧바로 노조 사무실을 찾는 등 노사분규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노조와 타협을 이뤄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재무구조 개선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3월 중 4577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계획 중인데 부채비율 1000% 이하 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조양호 회장은 아들 조 사장과 함께 대한항공 각자 대표이사로 아들의 경영 성적을 보아가며 승계 절차를 진행시켜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그룹을 총괄하면서 대한항공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도 수행해 나갈 것 같다. 이래저래 3세 경영의 시험대에 오른 조 사장의 경영 능력이 증명되는 한해가 될지 궁금하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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