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황금라인 지하도로

서울시가 ‘지하도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도로 곳곳이 ‘상습 체증’에 시달리자 선택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지상의 도시 환경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호재를 부동산 시장이 놓칠리 없다.

▲ 서울시를 가로지르는 간선도로들이 속속 지하화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부동산 투자자들이 땅에 투자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도로 개설이다. 지인이 고급정보라면서 던져준 정보에 쌈짓돈을 쏟는 경우가 숱하다. 교통 여건이 좋아질수록 신규 인구 유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각종 개발호재도 늘어나 주변 부동산 가치도 덩달아 상승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쓸모없는 땅도 주변에 큰 길이 뚫리거나 넓어지면 금세 값이 뛰곤 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길이 난다고 부동산 가격이 다 오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습적으로 차량이 정체되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면 부동산 가격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 지역의 부동산이 그렇다. 이미 이 지역의 도로는 포화상태다. 출퇴근시간을 막론하고 ‘교통지옥’이 되기 일쑤다. 뜻하지 않게 매연이나 소음 등 유해 요인이 커질 수도 있다.

최근 서울 부동산 투자에 ‘지하도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지하도로가 교통시스템 혁신의 필수 요소로 꼽히면서 주요 도로 지하화가 활발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로 지하화’로 쏠쏠한 재미를 본 사례가 있다.

 
미국 보스턴 시가 1991〜2007년 추진한 ‘빅디그(Big Dig)’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푸른 괴물(green monster)’로 불리던 4㎞ 길이의 고가도로를 지하 터널로 대체하고, 지상 공간에는 녹지와 건물을 배치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M30’, 프랑스 파리의 ‘A-86’, 영국 런던의 ‘도크랜드’, 일본 도쿄의 시부야 역세권 개발과 도라노몬 힐스 복합 개발 등도 도로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인프라를 새로 확충한 사례다.

현재 서울시가 지하화를 추진 중인 주요 도로는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경부간선도로,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등이다. 계획 중인 지하화 거리를 더하면 총 53.96㎞에 달한다. 가장 발빠르게 진행 중인 사업은 서부간선도로다. 이 사업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성산대교 남단과 금천구 동산동 금천 IC를 잇는 10.33㎞ 구간에 지하 4차로의 터널을 뚫는 프로젝트다.

2014년 착공이 목표였지만 자금 조달에 애를 먹으면서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최근 10여개 국내 기관투자가가 8300억원의 자금을 대기로 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미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하도로가 완공되면 기존 서부간선도로 상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일반도로로 변경돼 주변지역 접근성 및 주민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될 공산이 크다. 교통량이 줄어든 서부간선도로의 도로폭은 기존 20~30m에서 15m로 축소해 보행자 중심의 친환경 공간이 조성된다. 주거환경 개선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막힌 길, 지하로 뚫으니…

이 도로는 과거 상습정체구간으로 악명을 떨쳤다. 서울 서남부와 광명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등에서 도심으로의 접근성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그만큼 찬밥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하도로가 추진 중인 지금은 다르다. 금천구 부동산 시장의 지난 1년간(2015년 8월~2016년 8월) 집값 상승률은 8.72%로 서울 평균 상승률 7.31% 보다 높다.

서울시는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랑천 중심, 동북아 미래비전’을 발표한 것도 그 일환이다. 동부간선도로가 없어진 중랑천 일대에 여의도 공원의 10배에 이르는 약 221만㎡(약 67만평) 규모의 친환경 수변공원이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1991년 개통한 동부간선도로는 서울 동북권과 강남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다. 하지만 잦은 정체로 평균 통행속도가 24㎞에 그치는 등 사실상 도시고속도로로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 특히 집중호우 때는 중랑천 물이 넘쳐 침수가 자주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장거리 통행에 유리한 도시고속화도로와 단거리 통행 차량을 위한 지역간선도로로 이원화해 지하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집값 상승세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동부간선도로 일대에는 공릉 풍림 아이원, 공릉3단지 라이프 아파트, 학여울 청구 아파트와 상계 주공 아파트 단지 등이 모여 있다. 특히 이 아파트들은 학교나 마트와 근접해 있다보니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거주자들에게 호응이 높다. 학여울 청구 아파트 84㎡(약 25평)가 4억1000만~4억5000만원선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경부고속도로에도 지하화 소식이 있다. 양재~한남IC 간 총 6.4㎞ 구간(경부간선도로)에 지하길을 내는 것이다. 서초구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로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매연, 소음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초구는 1월 18일 대한국토학회ㆍ도시계획학회 등 5대학회에 의뢰한 연구 용역 결과도 발표했다. 공사비 3조3000억원, 재원조달 가능금액 5조2000억원, 서울지역의 생산유발 5조4000억원, 부가가치유발 2조원, 일자리 3만9000여명 창출 등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재정사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불투명한 지하화 사업의 미래

물론 이런 장밋빛 전망은 이 사업이 순탄하게 굴러갈 때의 얘기다. 정작 사업 주체인 서울시가 소극적이라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에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집중돼 있다. 영동대로 지하복합환승센터 및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과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리모델링 등을 포함한 동남권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이 진행 중이다. 업계는 서울시가 강남ㆍ강북의 불균형을 고려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만약 서초구가 서울시의 반대를 뚫고 이 사업을 추진하면,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이 지나는 반포동 서초동 양재동 등의 부동산시장은 장기간 호황을 맞을 공산이 크다. 지하도로가 서울 부동산 지도까지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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