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권고

“자유, 만족, 행복.” 글로벌은행 HSBC가 전세계 17개국 1만7000여명을 상대로 “은퇴란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물은 데 대한 대다수 선진국 사람들의 대답이다. 선진국에선 은퇴하면서 “잘가라 스트레스야, 반갑다 연금아(Goodbye tens ion, hello pension!)라고 환호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은 은퇴를 곧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해한다. 연간 근로시간이 2124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막상 은퇴하고 나면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9.6%(2013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OECD 평균(12.6%)보다 4배나 더 높다. 법적으로 정년이 60세이지만 실제 직장에서 퇴직 ‘당하는’ 연령은 5 2.6세다.

국민연금은 60대 중반부터 지급된다. 급여생활자는 20여년을 벌어서 마련한 밑천으로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공백기인 소득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라는 가시밭길을 거쳐 수명을 다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버텨야 한다는 결론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노후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넣어두고 잊어버려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래에 얻게 될 이익은 작게 평가하고 지금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과대평가하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을 보인다”며 “노후자금을 중도에 찾아 쓰지 않으려면 노후자금을 별도로 마련해 둔 뒤 ‘없는 돈’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후자금은 자동이체로 적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97년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노후준비를 할 때 자산목표(예를 들어 10억원) 대신 소득목표(예를 들어 월 300만원)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 노후 생계를 위해 필요한 최저소득이 얼마인지, 앞으로 금리는 어떻게 변할지 등을 예측해 대응할 수 있다.

예컨대 부동산을 전체 자산으로 계산해 노후를 준비하다가는 자칫 부동산을 팔지 못해 현금이 쪼들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월 소득 목표를 300만원이라고 잡고, 100만원은 국민연금, 50만원은 퇴직연금, 50만원은 연금저축, 100만원은 일과 임대소득으로 마련하겠다는 등 소득중심으로 계획을 짜라는 조언이다.

노후준비는 ‘재財테크’에서 ‘산産테크’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재산이라는 한자를 보면, 재물 재財, 생산 산産으로 나뉘어 있다. 재산은 재물과 소득이 둘 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재물을 불리고 쌓아올리는 stock(저장) 개념의 재테크만을 생각해왔다. 노후준비를 위해 최소한 10억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10억원 만들기 열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었는가.

이제는 재물보다는 평생 옹달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현금 흐름(flow)을 창출하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해야 한다. 배당을 잘해주는 안정적인 주식이나 채권, 월세가 나오는 소형 부동산 등으로 꾸준한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투자라고 볼 수 있다. 베이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은퇴해도 예상과 달리 주택시장이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은퇴자들이 임대수익을 위해 소형주택을 사들이고 있어서다.

1990년 노벨상을 받은 윌리엄 샤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노후자금의 수익률을 높여라” “분산하고 또 분산하라”고 강조했다. 미래 소득을 늘리려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에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것은 필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분산투자를 해 위험을 최소화하라고 했다.

선진국은 사회복지 수준이 탄탄한 상황에서 완만한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는데 우리는 공적연금 도입 후 겨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급격한 변동기를 맞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현세대는 자기 노후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은퇴 후 씀씀이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라도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고, 구체적인 소득포트폴리오를 짜보자. 퇴직 때까지는 조직 안에서 일했다면, 그 이후는 조직 밖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우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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