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돕는 사회복지사의 분투記

임수연·김혜영 복지사는 사회복지사에게 필요한 건 진심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임수연·김혜영 복지사는 사회복지사에게 필요한 건 진심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회적ㆍ경제적 약자의 마음에 ‘청진기’를 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티도 잘 안 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자들에게 헌신을 선물합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임수연ㆍ김혜영 사회복지사의 ‘아름다운 분투’를 취재했습니다. 천막사진관 세번째 주인공입니다.

# 1장. 나이지리아 사업가의 눈물

찜통 더위가 숨통을 사납게 조이던 2016년 8월 어느날. 자동차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A씨(40대 중반)가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수출계약 때문에 한국에 온 지 20여일. 다리가 영 불편했다. 팅팅 부은 것도 모자라 진물까지 줄줄 흘렀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한국이 낯설기도 했지만 진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A씨가 이주노동자ㆍ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애써 방문한 이유였다.

그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나빴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심각합니다. 다리를 잘라내야 합니다(의료진 판정).” 일 때문에 왔다가 다리를 잃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 A씨는 눈물을 머금었다. “나이지리아에 있는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김혜영 복지사(왼쪽)가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찾아온 이주노동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수개월 전 아기가 유산됐을 때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혜영 복지사(왼쪽)가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찾아온 이주노동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수개월 전 아기가 유산됐을 때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다. [사진=오상민 작가]

# 2장. “다리 잃었지만…”

그렇다고 수술을 당장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료비 지원, 비자 연장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두룩했다. ‘수술’은 의료진이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일’은 복지사의 몫이다.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복지사들은 비자 연장 등 행정 처리는 물론 A씨의 마음을 보듬는 일까지 마다치 않았다.

남들이 보든, 그렇지 않든 ‘헌신獻身’의 힘은 소리 없이 강하다. 복지사들의 배려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은 A씨의 마음을 조금씩 녹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A씨는 퇴원길에 복지사들을 찾아왔다. “한쪽 다리를 의족에 의지해 (나이지리아로) 돌아가지만 마음의 병은 치유한 것 같아요.” 복지사들은 고개를 떨궜다. 그 밑으론 따뜻한 눈물이 내렸다.

# 3장. 미혼모 선택한 이주노동자

남자도, 여자도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였다. 한국의 한 이주민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웠고,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고향에 가정이 있음을 숨기고 있던 남자는 ‘냉정한 이별’을 고했다. 낯선 땅에서 버림받은 여자. 태아를 지울 순 없었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온 B씨는 그렇게 미혼모의 길을 선택했다.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찾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은 이주 노동자다. 한 가족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찾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은 이주 노동자다. 한 가족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각오는 했지만 삶은 생각보다 더 팍팍했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라는 ‘주홍글씨’는 번번이 인생을 가로막았다. 고작해야 허드렛일밖에 못하니, 생활비를 버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행여 아기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치료비를 마련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그날도 그랬다. 아기의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이 퉁퉁 붓고, 혀는 딸기처럼 새빨개졌다. B씨는 황급히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를 찾아갔다. 기댈 언덕이라곤 ‘이주노동자의 성지聖地’라고 불리는 그곳뿐이었다.

의료진은 ‘가와사키병(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을 의심했지만 무턱대고 치료를 할 순 없었다. 이 병원엔 소아병동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떡해 어떡해….” 절박한 순간, B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 4장. 4시간의 사투, 그리고 희망

“아무 병원이나 가면 되지 않는가?”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독하고 못된 자본주의’는 대형병원도 종종 쥐락펴락한다.

돈 있고 배경 있으면 좋은 대우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문턱조차 넘기 어렵다. 더군다나 B씨의 신분은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이주노동자. 아기의 몸이 불덩이 같았음에도 그를 받아줄 병원은 없었다.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상담실을 찾은 한 가족. 엄마는 상담 내내 아이를 꼭 안고 있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상담실을 찾은 한 가족. 엄마는 상담 내내 아이를 꼭 안고 있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복지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기를 진료해줄 병원을 찾지 못하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다. 그렇게 4시간. 복지사들은 수많은 병원에 수백통가량 전화를 돌린 끝에 ‘아기를 진료하겠다’는 병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B씨는 털썩 주저앉았고, 복지사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생명도 그제야 안심한 듯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엄마가 복지사들을 찾아왔다. “다행히 가와사키병은 아니었어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도, 복지사도 미소를 지었다. 그곳엔 미혼모도, 이주노동자도, 못된 자본주의도 없었다.

# 5장. 음지를 빛내는 사람들

병원의 양지陽地는 의료진이다. ‘전지전능한 서전(surgeon)’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간호사)’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의 닳고 닳은 소재다. 하지만 병원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쏟는 이들도 있다. 사회적ㆍ경제적 약자를 돌보는 사람, 복지사다.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도 마찬가지다. 임수연ㆍ김혜영, 두명의 복지사가 아픈 약자들의 마음에 청진기를 대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티도 잘 안 나고, ‘수고한다’면서 등을 토닥거려주는 이도 드물지만 두 복지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하찮은 평가에 신경을 쓸 거였으면 이 일을 선택하지도 않았다’는 투다. 더스쿠프와 천막사진관이 두 복지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음지陰地가 있어야 양지가 더 빛나는 것 아니겠는가.

임수연(오른쪽)·김혜영 복지사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오상민 작가]
임수연(오른쪽)·김혜영 복지사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오상민 작가]

# 6장. 그들의 이야기 直問直答➊

✚ 병원에 복지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을 듯해요.
임수연 복지사(이하 수연) : “사회적ㆍ경제적 약자가 아니라면 잘 모를 거예요. 병원 사회복지사는 진료비를 내기 어려운 약자를 돕는 일을 하죠.”

✚ 음지에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김혜영 복지사(이하 혜영): “음지, 희생…. 일할 때는 이런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요.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만 하죠.”
수연 : “음지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복지사의 역할은 ‘도울 수 있는 것’만 돕는 게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보듬어줘야 하죠.”

✚ 약자를 상담하는 게 녹록지는 않을 듯해요. 몸도 성치 않은데, 경제적 상황까지 털어놔야 하니까요.
수연 : “복지사가 감수해야 할 일이죠. 환자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기 어려우니까요.”
혜영 : “복지사는 환자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불편할 수도 있어요. 처음 보는 복지사에게 ‘치부恥部’를 드러내는 느낌일 테니까요.”

그래… 누가 낯선 이에게 치부를 보이고 싶겠는가.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경제적 어려움까지 술술 털어놓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아픈 약자들은 복지사 앞에서 ‘딜레마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어려움을 말하긴 싫고, 그러면 혜택을 못 받는 식이다. 복지사에게 ‘소통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 환자와의 라포르(상호간 신뢰관계ㆍRapport)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수연 : “당신이 왜 마음을 터놔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줘요. 그 다음엔 들어주고, 공감해주죠.”
혜영 : “대학생 때 장애인 기관에서 실습을 한 적 있어요. 그때 경청만큼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죠. 환자에게 ‘나와 당신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건 중요한 작업이에요. 언젠가 환자분이 ‘내가 어디가서 이런 하소연을 하겠어요’라고 말하더라구요. 진심을 나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반대로 듣지 않으면 ‘불통의 벽’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남의 말을 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공자는 「논어」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하는 데에는 2년이 걸린다.

하지만 제대로 듣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는 복지사들의 경청론은 그래서 새겨들을 만하다. 이제 복지사 이야기를 해보자.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대학생과 헌혈소녀의 성장기다.

임수연 복지사는 “약자를 돕는 건 헌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했다.[사진=오상민 작가]
임수연 복지사는 “약자를 돕는 건 헌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했다.[사진=오상민 작가]

# 7장. 스튜어디스와 헌혈소녀

비서ㆍ스튜어디스ㆍ호텔리어…. 임수연 복지사는 화려한 서비스직을 꿈꿨다. 그래서 택한 전공도 ‘비서학’.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그의 뜻대로 구르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경험이 ‘화려함’을 꿈꾸던 그의 인생을 반대편으로 돌려놨다.

“대학교 때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봉사를 간 적이 있는데, 가슴이 찡하게 울리더라구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죠. 이를 계기로 대학병원 사회복지실에서도 일했어요. 단순 업무였지만 ‘약자에게 힘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죠.”

서비스직과 복지사. 언뜻 색도, 결도 달라 보인다. 하나는 예쁜 색조를 띠지만, 하나는 여간해선 알아채기 힘들다. 임 복지사는 이를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약자를 돕는 건 헌신의 결과물이 아니에요. 마음이 움직인 결과일 뿐이죠. 서비스직이든 복지사든 누군가에게 마음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결이 같아요.”

김혜영 복지사는 “헌신이라는 말은 복지사에게 사치일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혜영 복지사는 “헌신이라는 말은 복지사에게 사치일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여고생 시절, 누군가를 도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주머니 사정도, 시간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세살 터울의 언니를 쫓아가 우연히 하게 된 봉사활동이 ‘헌혈’이었다. “고 2때였어요. 제 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아빠가 ‘키 안 크면 어쩌려구’라면서 농을 칠 정도로 헌혈을 자주 했어요.”

그렇게 서른세번. 여린 마음의 여고생은 ‘헌혈소녀’로 불렸고, 인생 항로航路도 복지사로 잡았다. 김혜영 복지사는 “어린 나이에 적성을 잘 찾은 것 같았다”면서 활짝 웃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돕는 일이 힘겹지도, 어색하지도 않아요. 헌신이라는 말은 어쩌면 복지사에게 사치일지 몰라요.”

정균승 군산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천직天職을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서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가슴의 소리’ 적성을 짓누른다. 성적만 좋으면 도덕성이 어떻든, 가치관이 어떻든 ‘높은 자리’를 보장 받는다. 그런 그들을 사회는 ‘엄친아’라는 형편 없는 신조어로 떠받는다.

그러니 우병우(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전 문화체육부장관) 같은 ‘공부만 잘하는 괴물 아닌 괴물’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약자를 돕는 게 왜 어렵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이어서 힘들지 않다’는 두 젊은 복지사의 말은 병든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희망진료센터는 외국인 노동자·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등 특수한 소외계층을 주로 돕는다. 사진(위·오른쪽 아래)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다문화가족들이 환자를 위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왼쪽 아래 사진은 서울적십자병원이 경남 거창에서 실시한 농촌어르신 무료진료 프로그램. [사진=서울적십자병원]
희망진료센터는 외국인 노동자·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등 특수한 소외계층을 주로 돕는다. 사진(위·오른쪽 아래)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다문화가족들이 환자를 위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왼쪽 아래 사진은 서울적십자병원이 경남 거창에서 실시한 농촌어르신 무료진료 프로그램. [사진=서울적십자병원]

# 8장. 약자들의 성지, 힘겨운 싸움

사실 두 젊은 복지사의 역할은 평범하지 않다. 일반 복지사와 달리, 외국인 노동자ㆍ이주노동자ㆍ다문화가정 등 특수한 소외계층을 돕는다. 이는 두 복지사가 근무하는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의 성격 때문이다.

2012년 6월 대한적십자(진료 시설 및 지원), 서울대병원(의료진), 현대차 정몽구재단(재원) 등이 손잡고 설립한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는 소외계층에게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2년 7월 1일 의료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총 4만2543명(2016년 말 기준)의 의료비를 지원했다.

서울적십자병원 관계자는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는 경제적ㆍ문화적ㆍ물리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의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특화된 의료서비스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등을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두 복지사의 어깨가 무거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환자가 특수한 소외계층이어서 속깊은 상담이 쉽지 않아서다. 비非영어권 국가의 이주노동자는 상담은커녕 대화가 힘들 때도 많다. 두 복지사의 고민은 무엇일까.

# 9장. 그들의 이야기 直問直答➋

✚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에는 하루 몇명이 찾아오나요?
수연: “하루 평균 20명의 환자와 상담을 해요. 그중 10명 이상이 이주노동자죠. 어쩔 땐 상담실이 세계 각국 언어로 가득 차기도 해요(웃음).”

✚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겠네요.
혜영 : “한국 사람을 만나도 속마음을 알기 어렵잖아요. 어떤 말부터 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가 많죠.”

다양한 언어로 소개된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진료 과목. [사진=오상민 작가]
다양한 언어로 소개된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진료 과목. [사진=오상민 작가]

✚ 온드림 희망진료센터가 ‘이주노동자의 성지’로 알려진 건 부담스럽지 않나요?
수연 : “대부분의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품고 오세요. 지원 수준이 기대치를 밑돌면 실망하는 분들도 적지 않죠. 그래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까지 감안하면서 상담을 해요.”

✚ 이주노동자는 대개 어디가 아픈가요?
혜영 : “허리ㆍ척추 등 정형외과 진료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주노동자들이 일용직 건설노동(남성), 모텔청소(여성) 등을 많이 한다는 방증이죠. 남성의 경우, 호흡기 질환자도 적지 않아요.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인 듯해요.”

✚ 이주노동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뭔가요?
수연 : “첫째도, 둘째도 언어예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조직에 흡수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많이 해요.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그들에게 부당노동행위를 강요하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도 언어 탓 같아요.”

# 10장. 우리가 만난 슬픈 현실

이주민 문제는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도 이 문제로 떠들썩하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지난 1월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反이민 행정명령(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 미국 입국 한시적 금지)’에 서명하자, 곳곳에서 반기反旗가 펄럭인다.

제임스 로버트 판사(워싱턴주 서부 연방지방법원)의 법적 제동을 신호탄으로, 애플ㆍ구글 등 120여개 기업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는 5일(현지시간) 열린 슈퍼볼 경기에 맞춰 반이민정책을 꼬집는 광고를 내보냈는데, 내용은 이랬다.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진다.”

난민을 둘러싼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신중하게 해답을 찾아야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난민을 둘러싼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신중하게 해답을 찾아야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우리나라는 어떤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현재로선 답을 하기 어렵다. 이주노동자가 60만명을 훌쩍 넘은 지금, 우리나라는 아직도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고 있다. 그들이 노동력을 뺏는 존재인지, 메꿔주는 존재인지 사회적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2004년)가 실시된 지 13년이 흘렀지만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주노동자를 향한 욕설ㆍ폭행ㆍ임금체불 등 고약한 버릇은 여전하다. 두 복지사가 언급한 이주노동자의 불편한 진실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용을 베풀자는 건 아니다. 이주노동자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움’과 ‘제재’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몫이다.

✚ 이주노동자에게 정성을 쏟았는데, 되레 상처를 받은 적은 없나요?
혜영 : “지난해 말 한 이주노동자가 도망을 친 일이 있었어요. 진료비가 많이 나왔다는 이유였죠. 초과의료비 지원사유서를 작성해서 도움을 주려 했는데,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눈앞이 얼마나 캄캄했는지 몰라요.”

✚ 회의감이 들진 않나요?
수연 : “힘듦은 잠시뿐이에요. 제가 도움을 준 환자가 일상에 잘 복귀하면 가슴이 따뜻해져요.”
혜영 : “퇴근할 때 저만의 일지를 써요. 잘 한 일, 실수한 일 등을 복기하죠. 그러면 ‘환자분들에게 좀 더 위로를 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가슴을 때려요.”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의 상담실. 하루 20여명의 환자가 이곳을 찾는데, 절반 이상이 이주노동자다. 그래서 작은 상담실이 세계 각국 언어로 가득 찰 때도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의 상담실. 하루 20여명의 환자가 이곳을 찾는데, 절반 이상이 이주노동자다. 그래서 작은 상담실이 세계 각국 언어로 가득 찰 때도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두 젊은 복지사를 만난 그날. 우리는 뜻밖에도 ‘슬픈 현실’과 마주했다. 음지, 성적지상주의, 괴물, 이주노동자…. 답을 찾을 수 없는 난해한 질문들이 가슴을 울렸다. 그날 밤, 겨울비가 내렸다. 예고에 없던 비. 그 탓인지 많은 이들이 병원 처마에 몸을 숨겼다. 한기寒氣가 몰려왔다. 집에 가려면 ‘우산’이 필요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문득 ‘사회적 우산’이 절실한 약자들이 떠올랐다. 가슴이 또 울렸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청은 공감을 만드는 좋은 도구다. 임수연·김혜영 복지사가 현장에서 배운 경청론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청은 공감을 만드는 좋은 도구다. 임수연·김혜영 복지사가 현장에서 배운 경청론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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