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적완화 왜 효과 없나

2017년 우리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가계부채ㆍ청년실업률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우울하다. 물론 경제는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정책은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정책적 차이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미국과 일본 모두 경기회복을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양적완화는 주요국 중앙은행이 침체에 빠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통화정책이다. 쉽게 말해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2002년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 의장이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헬리콥터를 띄워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2013년 당선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고 말하며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지난해 9월엔 ‘장기국채금리목표제’까지 도입했다. 일본의 ‘장기국채금리목표제’는 질적완화 정책을 강화한 정책이다.

단순히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 돈을 푸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채의 가격까지 조정하겠다는 셈이다. 기존에는 일본중앙은행(BOJ)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대규모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했다면 이제는 국채의 목표금리를 0%대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장기국채금리를 0%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장ㆍ단기 금리 격차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는 장ㆍ단기 금리 격차가 향후 경제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경제선행지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은 단기 국채 금리가 낮고 장기 국채 금리가 높으면 정상적인 경우로 간주하고 향후 경제 전망이 밝다고 여긴다. 장ㆍ단기 금리 격차가 있어야 시중에 풀린 돈이 투자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은행은 낮은 단기금리로 예금을 받아 높은 장기금리로 대출을 해준다. 이에 따라 장ㆍ단기 금리 격차는 은행이 벌어들이는 수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격차가 크지 않으면 은행의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장ㆍ단기 금리 격차가 작으면 투자도 일어나지 않고 경기도 회복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일본이 장기국채금리를 0%대로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0.1%인 상황에서 장기국채금리를 0%대로 유지하면 완만하고 정상적인 장ㆍ단기 금리 격차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장기국채금리목표제’가 양적완화에 질적완화를 결합한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에는 경기회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높이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경제지표 자체를 경기회복 기대가 반영된 것처럼 변경해 경제의 여건을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BOJ가 0%대 국채금리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공급량과 무관하게 채권을 사들여야 한다”며 “극단적으로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매수 요건에 부합하는 시중의 모든 증권을 보유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채금리 관리 나선 일본중앙은행

국채 금리가 BOJ가 설정한 금리 목표인 0%대를 유지하기 위해 보유ㆍ매입해야 할 채권 규모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의 대내외적인 여건이 BOJ를 거세게 압박할 경우 장기국채금리를 더 높이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장ㆍ단기 금리 격차 안정화를 통한 경기회복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전세계 국채금리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국채만 0%대로 유지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일본정부가 머지않아 장기국채 금리목표제에 수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BOJ가 실물경제를 자극하기보다 지표를 중심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려 하는 화폐적 해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비슷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던 미국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건 비슷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정책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시장의 심리가 아닌 실물경제에 주목하고 이를 반영하는 통화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목한 실물경제는 실업률이다.

▲ 숫자에 매몰된 경제정책은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취임 전부터 실업률을 출구전략의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실업률이 목표치를 달성했을 때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지표가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이 경제지표보다 실물경제를 중시한 사례는 또 있다.

미국의 캔자스시티 연준 은행은 매년 8월 전세계의 금융업 종사자ㆍ경제학자 등 전문가를 초정해 ‘잭슨 홀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2014년에는 ‘노동시장 다이내믹에 대한 재평가’라는 주제로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당연히 대형투자은행 관계자나 경제학자가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캔자스시티 연준은 투자은행의 전문가가 아닌 미국 노동총동맹(AFL-CIO)의 수석 경제학자인 윌리엄 스프리그스를 초청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의에 민주노총의 정책 담당자를 초청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자문을 듣는 것과 같다.

지표 아닌 실물경제 살펴야

숫자만 보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 실물경제를 반영하는 노동시장의 목소리를 들으려했던 미 연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라는 얘기다. 결국, 일본이 장기국채금리를 관리하는 숫자에 집중했다면 미국은 고용의 극대화라는 목표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일본의 장기국채금리목표제와 미국의 실업률 중심 정책 모두 양적완화 정책이다. 하지만 일본은 지표를 조작해 경기전망이 밝은 것처럼 꾸며 경기침체를 해결하려고 했고 미국은 실물경제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정책이 됐다. 물론 일본의 정책이 악惡이고 미국의 정책이 선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정책적 태도가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로 구성된 자본주의 국가에 득이 되는 정책일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종운 새사연 자문위원(경제학 박사) menwchen@mac.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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