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리베이트 끊기 어려운 이유
대부분의 제약사가 신약 대신 복제약으로 승부를 한다. 신약 개발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돈과 시간 덜 들이고’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문제는 리베이트의 고리가 여기서 꿰어진다는 거다. 복제약으로 차별화를 꾀하기 힘드니, ‘리베이트’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2020년 세계 7위 제약강국 도약.” 우리나라 정부가 제약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제약시장의 규모를 보자. 2014년 기준 1조272억 달러(약 1176조원)에 이른다. 스마트폰 시장보다 3배 크다. 최근 10년간(2005~2014년) 성장률은 연평균 6%를 훌쩍 넘었다.
이런 성장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시장은 매년 4.8% 성장, 2019년이 되면 1조2986억 달러(약 148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다 만성ㆍ난치성 질환도 증가하고 있어서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도 제약시장의 파이를 넓히는 요인이다. 중국은 혁신 정책으로 자국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컨설팅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2007년 3억9700만 달러(약 4548억원) 규모였던 중국 제약시장은 지난해 28억300만 달러(약 3조2116억원)로 성장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20%를 훌쩍 넘는다. 중국보다 먼저 제약시장에 발을 디딘 인도는 2020년이면 550억 달러(약 63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스마트폰 시장보다 큰 제약 시장
문제는 글로벌 제약시장의 성장 대열에 우리나라는 올라타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내 제약산업 규모는 19조원으로 세계 14위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2%도 채 안 된다. 최근 5년간(2010~2014년) 연평균 성장률은 0.5%에 불과하다. 글로벌 50대 제약기업 중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글로벌 시장은 크게 성장하는데 우리나라만 제자리걸음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부진한 신약 개발’을 원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연간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동력은 ‘글로벌 신약개발’이다. 미국 애브비의 ‘휴미라’와 길리어드사이언스의 ‘하보니’의 연 매출액은 15조원이 넘는다. 신약 하나만 잘 개발해도 글로벌 기업으로 점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대박’은 국내 제약사와는 먼 얘기다. 여태껏 미국과 유럽에서 승인받은 우리나라 신약은 12개뿐이다.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 품목으로 좁히면 4개로 쪼그라든다. 국내 기업들이 개발 비용은 낮고 개발 기간이 짧은 개량신약과 복제약(제네릭ㆍ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복제약) 개발에만 치중한 결과다. ‘혁신신약’을 통해 질적 성장을 해 온 선진국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진한 신약개발은 국내 제약업계 성장만 발목 잡는 게 아니다. 업계 고질병 ‘리베이트’가 판을 치는 이유로 이어진다. 실제로 크고 작은 업체들이 사실상 ‘똑같은 약’을 포장만 바꿔 팔고 있기 때문에 의사와 병원의 환심을 사지 않으면 실적을 올릴 수 없다. 결국 제약사로선 “우리 약을 처방하면 매출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방식으로 리베이트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리베이트의 악영향은 국민에게도 이어진다. 리베이트로 인한 ‘웃돈’이 포함된 약값을 내기 때문이다. 물론 약값을 정부가 못 박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약값에 영향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의약품 대부분이 보험약인데, 보험약가를 정할 때부터 조정하는 데에까지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해서다.
언뜻 타당한 주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제약회사의 수입은 약을 팔아 얻은 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리베이트는 지출 비용에 포함되고 지출이 늘면 영업이익은 준다. 반대로 뒷돈을 챙겨주지 않고 모든 제약회사가 공정한 거래를 했다면 이들의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제약회사의 영업이익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정부에서는 약값을 더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환자의 부담을 덜고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거다.
사라지지 않는 리베이트
정부가 ‘쌍벌제’ ‘투아웃제도’ 등을 시행했지만 리베이트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감시망이 촘촘해지자 방식만 교묘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판매대행 법인을 위장으로 설립해 처벌을 피해가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좌담회나 강의를 빙자해 뒷돈을 건네는 신종 리베이트도 있다.
결국 리베이트를 뿌리 뽑고 국내 제약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 신약’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약의 효능이 좋으면 의사든 외국이든 먼저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경진 KDB산업은행 산업분석부 연구원은 “글로벌 제약기업이 외부 기술 도입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의 기술 수출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국내 신약관련 투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환경이 마련된 만큼 활발한 신약개발로 국내 제약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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