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허위매물 판치는 이유

신차 가격이 1억2000만원인 스포츠카가 출고된 지 1년 만에 중고차시장에 나온다. 가격은 고작 2000만원 초반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중고차 광고다. 하지만 이 차는 절대 살 수 없다. 허위매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 몇 개만 뒤져도 수두룩하게 골라낼 수 있는 중고차 허위매물이 버젓이 판치는 이유가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알아봤다.

▲ 인터넷 중고차매매 사이트에는 대놓고 허위매물이 판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6년 3월식 지프 컴패스 2.4 가솔린. 주행거리 150㎞. 사고ㆍ압류 내용 없음. 가격은 750만원. 할부시 월 20만원.” “2015년 8월식 재규어 뉴 XF 2.2 디젤. 주행거리 1000㎞, 사고ㆍ압류 내용 없음. 가격은 990만원.” 맞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가격이지만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오는 중고차 광고다.

문제는 “가격 대비 좋은 차를 고르겠다”는 소비자로서는 이런 문구에 마음을 뺏기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200만~300만원 차이라면 소비자의 발걸음은 더 싼 가격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해당 매물을 내놓은 중고차 딜러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 매물이 있는지 물어봤다. 딜러는 “있으니 와서 직접 보라”면서 “나중에 고맙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매매단지에서 만난 딜러는 기자를 경기도 부천의 국민차매매단지로 데려갔다.

그런데 딜러가 보여준 차는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과 차종은 같지만 번호판이 달랐다. 딜러는 “사이트에는 홍보용 차량을 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허위매물이 아니냐는 말에 되레 목소리를 높인다. “허위매물이라뇨. 여기 차 있잖아요!”

인터넷에 떠도는 ‘중고차 잘 고르는 법’에 근거해 침수 유무를 확인했고, 성능점검표를 요구해 사고이력도 확인했다. 가격을 물었다. 750만원에 이전비 등을 포함하면 약 800만원에 매입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계약하겠다고 하자 딜러는 “자동차등록원부를 조회해봐야 한다”면서 “미지급금이 얼마인지 봐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세금을 안 냈거나 압류가 됐거나 할부금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중고차를 딜러가 판매하는 건 불법이다.

결국 딜러는 “1600만원 안고, 총 2400만원”이라고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생각보다 비싸다”고 말하자 그는 되레 “싼 가격에 좋은 차를 구입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라면서 툴툴 거렸다. 매매사원종사원증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보여주지 않았다. 이 사원증이 없으면 불법이다. 해당 차량의 이력을 조회해보니 이미 팔리고 없는 차다.

이쯤 되면 그 차를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다. 그럼 딜러는 왜 기자를 끌고 부천까지 왔을까. 가격에 맞는 다른 차를 보여주고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허위 미끼매물을 보고 현장을 제 발로 찾아오게끔 만드는 게 목적이라는 얘기다.

살림살이가 어려울수록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게 마련이다. 오픈마켓에서 중고품 거래규모가 최근 7~8년 사이 많게는 10배 이상 뛰어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자동차 시장도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이전거래 현황’에 따르면 2012년 328만4429대였던 자동차 이전거래는 2016년 기준 378만116대로 15.1%나 늘었다.

유명무실한 허위매물 처벌 규정

하지만 중고차시장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인터넷에 중고차를 검색했을 때 허위매물 관련 얘기가 한 단어처럼 검색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시장의 약 20~30%가 허위매물”이라고 귀띔했다.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허위매물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처벌규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허위매물 처벌 규정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9월 허위매물(2회)이나 허위점검(1회) 적발시 영업 등록을 취소하는 중고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놔서다. 그럼에도 허위매물이 줄지 않고 버젓이 포털 파워링크에 올라오는 이유가 뭘까.

먼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허위매물 판매자를 처벌하려면 허위매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일단 기자가 경험한 것을 몇몇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들은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실제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변호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이트에 소개된 매물이 이미 팔린 차라도 딜러가 ‘바빠서 못 내렸다’고 하면 처벌이 힘들다. 특히 허위매물 신고의 경우 매물 자체가 없어서 실질적인 금전적 피해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처벌하는 상황이니 쉽지 않은 거다.”

허위매물 신고는 해당 지자체가 직권으로 조사해서 신고하는 경우보다 소비자 신고가 많다. 하지만 신고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허위매물 신고를 위해 부천시에 전화했다. 해당 공무원은 “딜러가 소속된 업체, 허위매물을 증빙할 만한 광고사진, 통화 내역, 차량 정보 등을 제출해달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허위매물을 올려놓는 딜러들은 자신의 인적사항이 될 만한 것은 소비자에게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명함 한장 주지 않는다. 휴대전화 번호만 알고 누군지는 모르는 이를 신고해야 한다는 거다. 자격이 있는 딜러인지조차 알 수 없다.

신고를 위해 바쁜 일과를 쪼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도 맹점이다. 때문에 지난 2015년 허위매물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에서 다룰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법안은 ‘대안반영’으로 폐기됐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ㆍ한국중고차협회 회장) 교수는 “처벌을 받은 이들이 있어야 선례가 될 텐데 실제로 처벌받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신고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신고방식은 실용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직권으로 허위매물을 적발ㆍ고발하는 방법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현실의 중고차시장은 그야말로 법이 통하지 않는 범죄의 무풍지대다. 지난해엔 딜러가 허위매물로 소비자를 유인한 후 폭행하고, 중고차를 강매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엔 보험사와 중고차 매입업자가 짜고 성능검사표를 위조해 폐차 수준의 차를 중고차로 재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고차시장의 신뢰도가 더 떨어지기 전에 시장을 손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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