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지원책 왜 안 먹히나

▲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이 27.3%에 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연 2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다. 해마다 쏟아지는 정책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자영업자는 여전히 한탄하고, 여전히 눈물을 흘린다. 자영업 지원책이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상인을 잡는 허무한 ‘악순환의 고리’를 취재했다.

서울시 상도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상훈(43)씨는 길 건너에 새로 생긴 고깃집을 염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뜩이나 손님이 없는데 옆 가게의 ‘오픈발’로 매상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한 골목에서 옆집, 앞집과 경쟁해야 하는 김씨는 아주 죽을 맛이다. “저집도 지금 반짝 잘되는 거지. 이 골목에서 2년 버티는 데가 없어요.” 이번이 두 번째 창업인 그는 “커피숍을 차렸다가 손해만 보고 2년 만에 정리했어요”라며 “권리금 조금 받고 가게를 넘겼는데 잘 되나 모르겠네요. 거기도 워낙 경쟁이 치열한 데라서”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창업과 폐업, 재창업을 반복하는 이른바 ‘회전문 창업’을 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문제는 창업과 재창업 모두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점업이나 소매업에 몰린다는 점이다. 숙박 및 음식점업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은 17.3%밖에 되지 않는다.  자영업자 5년 평균 생존율 27.3%에도 크게 못미친다. 벌이도 시원치 않다.

통계청이 2015년 자영업소 479만개를 조사한 결과, 매출액이 1200만~4600만원인 사업체가 30.6%(146만4000개)로 가장 많았다. 1200만원 미만도 21.2%(101만8000개)에 달했다.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연 2조원에 이르는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거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제도나 정책에 대한 체감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체감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89%에 달했다. 대체 자영업자 지원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2016년 기준 자영업자 지원사업은 375개, 예산은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사업이 305개(예산 2000억원)다.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65개(2조원)의 지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이 중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는 대표적인 지원책은 소상공인 사관학교다. 소상공인의 창업 지원을 위해 2015년부터 29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김병권(더불어민주당)의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소상공인사관학교 운영현황 및 투입예산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창업교육을 받은 448명 중 실제 창업을 한 인원은 110명(26.4%)이었다.

예산 2조원, 어디로 가나?

해외창업 지원사업은 더 심각하다. 2012년부터 5년간 41억원의 예산을 들여 578명의 해외 창업을 지원했지만 실제 창업한 사례는 5.4%(31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중 4명은 이미 폐업을 했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창업 시장에 대한 실질적 고민 없이 예산만 쏟아 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영업자 역량 강화를 돕기 위해 시행한 ‘소상공인방송(Yes TV)’도 한계를 드러냈다. 소상공인방송은 2009년부터 정부기금 366억원을 투입해 창업과 경영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문제는 시청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IPTV 기준 Yes TV의 시청률은 0.0034%밖에 되지 않는다. 저조한 시청률에도 집행되는 예산(2015년 53억원)은 매년 늘었다. 당연히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중기청은 소상공인방송을 별도 법인(소상공인방송정보원)화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자영업자 유통체계 효율화를 위해 건립한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는 이용률이 저조해 문제가 됐다. 이 사업은 골목 슈퍼의 가격 경쟁력 제고와 원활한 상품 공급을 위해 시행됐다. 지난해 기준 전국 14개 시도에 33개 물류센터가 운영 중이다. 물류센터 건립에 든 비용만 16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활용도는 크게 떨어진다.

홍의락(무소속)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물류센터의 활용도는 16%에 불과했다. 이는 물류센터 건설에만 열을 올릴 뿐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소상공인들은 물류센터가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안정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기청의 방만한 태도로 막대한 혈세가 들어간 물류센터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까지 1만개로 늘리겠다던 나들가게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나들가게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대형마트 등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에 맞서 골목슈퍼가 자생력을 갖추게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881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개설된 나들가게 1만957곳 중 2691곳(24.6%)이 폐업하거나 지정을 취소했다. 점포 수를 늘리는데 급급했을 뿐 내실을 다지는 데는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자영업자 지원책이 쏟아지는데 효과는 왜 이렇게 미미할까. 서정래 망원시장연합회 회장은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책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며 “시장을 통째로 대기업에 내주고 불쏘시개같은 정책만 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불공정한 시장 먼저 개선해야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도 “시장이 불공정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소상공인이 집결해 제 목소리를 내고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자영업자. 애초에 체급이 다른 선수들의 시합이기에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올해 3월 49개 업종이 해제되는 중소기업적합업종이나 대기업에 대규모점포를 허가해준 ‘유통산업발전법’,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와 ‘전기용품 안전법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등 굵직한 문제를 해결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고심할 때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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