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그 이후

▲ 한진해운 파산은 문제의 끝이 아니다. 한국 해운산업 위기의 시작이다. 차기 정부가 해운업 되살리기를 범정부적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한진해운이 17일 끝내 파산했다. ‘한진(HANJIN)’ 로고를 달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컨테이너선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는 일개 기업의 몰락에 그치지 않는다. 최대 국적선사가 침몰함으로써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를 세계로 이어주던 대동맥이 반토막 났다. 40년 동안 애써 구축한 물류네트워크도 망가졌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 북미항로 5위, 세계 7위 선사로 한국 해운산업의 상징이었다. 한진해운 침몰은 재벌 지배의 한계와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금융 논리를 앞세운 정부의 주먹구구식 구조조정이 빚은 합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선장’을 잘못 만났지만, 조난 상태의 배를 인도하는 ‘구난정’도 엉망이었다.

공교롭게도 국내 1ㆍ2위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둘 다 여성 오너 체제였다.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남편이 사망하자 물려받음으로써 기업경영은 물론 해운이란 업業의 특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권을 행사했다. 최은영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경기가 꺾이는 판에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로 선박계약을 맺어 위기를 자초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회사가 백척간두인데도 사재출연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와 채권금융단도 침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은행을 앞세운 정부는 선제적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채 금융 지원만 늘리다가 경영난이 가속화하자 대책없이 지원을 끊었다. 특히 해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배가 드나드는 다른 나라 법원에도 압류중지명령(스테이 오더)을 신청해야 하는데 소홀히 해 물류대란을 야기했다. 세계 곳곳 항구에서 한진해운 선박이 압류돼 오도 가도 못했다. 다급한 화주들이 직접 용선료 등 비용을 지불하며 화물을 찾아가거나 대체 선박을 물색했다.

한진해운 파산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한국 해운산업 위기의 시작이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 이상을 담당하는 해운산업의 한 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6m 컨테이너 106만개를 운송할 수 있었던 국내 선사의 선복량은 51만개로 반토막 났다.

 

한진해운을 대신하겠다던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컨테이너 40만개에서 46만개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국적 선사의 힘이 약해진 판에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을 외면하면 운임을 더 주고라도 수출입 화물을 운송할 배를 구해야 한다.

이제 국내 해운사 중 규모를 갖춘 곳은 현대상선 정도다. 한진해운이 있을 때는 세계 10위권에 들며 국제 해운사들과 동맹을 구축하며 어깨를 겨뤘는데, 홀로 남은 현대상선은 10위권 밖에서 해운동맹의 눈치를 봐야 한다. 현재 4대 동맹 체제로 움직이는 것이 오는 4월 3대 동맹으로 재편된다. 세계 경기침체 여파로 이합집산하는 해운동맹 재편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소외될 수 있다. 4월 위기설 등 한국 해운산업과 관련한 악소문이 나도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15일 뒤늦게 조선ㆍ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들고 나왔다. 최대 20척의 선박 건조를 지원하고 국적 터미널운영사를 만들기로 했다. 올해 지원하겠다는 6조5000억원은 지난해 법정관리 신청 당시 한진해운 부족자금(4조~4조6000억원)을 넘어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요, 1980년대 해운산업합리화 조치의 쓰라린 경험을 망각한 소치다.

해운은 육ㆍ해ㆍ공군에 이어 ‘제4군’으로 불리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3면이 바다이고 식량과 에너지ㆍ원자재 대부분을 해상으로 수입하는 우리 입장에서 국적 해운사 육성은 매우 중요하다. 차기 정부는 해운업 되살리기를 국가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실행해야 할 것이다.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사태 백서를 만들어 산업 및 금융정책의 교훈으로 삼자. 조선ㆍ해운업 부실에 대한 진상도 규명해 국책은행의 대규모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자.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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