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적수는 안철수 자신이다
안철수 적수는 안철수 자신이다
  • 이필재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기자
  • 호수 4
  • 승인 2012.08.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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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말하지 않은 5가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스스로 ‘말하지 않은 5가지’가 있다. 그가 대권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밝혀질 것들이다. 하지만 안 원장의 대권가도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만일 대선 출마 선언 후 정치적 반대자들이 “왜 당신이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안 원장은 어떻게 대답할까? 과연 자리 욕심 때문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선선히 믿어줄까?

“힘이 세지면 책임도 무거워진다(Wit 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 onsibility).”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스파이더맨은 스스로 원해 초능력자가 된 건 아니지만 초능력이 생기자 그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50)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근에 낸 자신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이 말을 차용해 자신의 행보를 설명했다. “저 역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다 보니 저에게 사람들의 기대가 쌓이더군요. 그래서 적어도 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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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 나와 만났을 때도 그는 이 대사를 인용했었다. 당시 그는 분명한 어조로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편하게 할 수 있는 안연구소(안랩의 전신) CEO의 길을 벗어나 업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책임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을 물었을 때 그는 “내용을 자세히는 잘 모른다”면서 “동기가 중요한데 (4대강 사업을) 왜 하는지를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인 이슈에 사실 저는 흥미가 별로 없어서요.”

불과 2년여 전 일이다. 이번 대담집에서 그가 과거 4대강 사업에 대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고 했지만 적어도 이땐 그러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 대담집에서는 이렇게 입장을 정리했다.
“사업의 효과를 떠나 과연 이렇게 단기간에 엄청난 국가재원을 쏟아야 할 만큼 국가적인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이었느냐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업이 이미 진행됐으니 그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만약 사업의 성과가 부정적이고 추가적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야 한다면,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성크 코스트(매몰비용)로 보고 냉정한 결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기는 했지만 이 전국적인 규모의 국가 인프라에 대한 투자비를 고스란히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안철수에게 환호할까?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안 원장처럼 유능하면서도 도덕적인 인물은 새로운 메시아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유권자들은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 기성 정당 대신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덕적이지만 무능한 인물도, 유능하지만 사악한 인물도 아니다. 강자를 압도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공감능력을 보여줬다.

대담집을 통해 선보인 콘텐츠도 아직은 원론적이지만 눈길을 끈다. 그는 2012년 한국을 ‘불안 사회’로 규정한다. 높은 자살률은 지금 불행한 사회, 낮은 출산률은 미래 희망이 없는 사회를 가리키는 지표라고 주장한다. 이런 진단을 근거로 그는 복지, 정의, 평화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한다. ‘평화 위에 세우는 공정한 복지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안한다. 이런 나라가 되려면 점진적으로 세금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내비친다. 증세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또 재벌 개혁과 관련해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자고 제안한다. 재벌체제에 우호적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펼치는 주장과 상통한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진보로의 좌표 이동도 주목된다. 그는 2010년 봄 나에게 정부의 역할은 코디네이터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분야마다 전문성이 생겼다. 이런 시대에 과거처럼 정부가 사회를 견인할 수 없다. 나의 이런 인식은 ‘작은 정부론’과 통한다.” 작은 정부를 지지했던 그가 지금은 스웨덴 식 복지국가를 논하고 있다.

출마 선언도 없이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든 그이지만 약점도 있다. 치명적인 건 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적은 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고 응수한다. 그로서는 이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겠지만 경험 부족으로 악수를 둘 때 국민들이 얼마나 수긍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정치 경력이 없기 때문에 그가 국민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양날의 칼이듯이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은 안 원장에게 자산이자 부채다.

그는 왜 정치에 참여하려 할까? 대담집에서 그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 대상 여론조사를 했는데 당초 보기에 없던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나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 10% 정도 들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이 야기한 시정의 공백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시 같은 당 후보가 메우는 건 정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는 그의 대권 행보가 나는 안 원장 특유의 사회적 책임감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태도를 권력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가 정말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2008년 가을 내가 그와 만나 정책을 맡아 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었다. 이때 자신이 입각 제의를 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번 대담집에서 그는 그 자리가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정치 참여 동기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순수한지도 모른다.

그가 출마 선언을 미루는 것에 대해 날선 비판이 있지만 이런 전략적 모호성은 동기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과연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7월 23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그는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액면’만 보면 여전히 유보적이다. 하지만 “(힐링을 하고 나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출마를 강력히 시사했다.

대담집 여는 글에서 그는 “지난 4•11 총선이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끼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설명에 대해서는 정치 참여의 타이밍을 조절하고서 둘러대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문재인 의원, 김두관 전 경남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 같은 날 MBN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 방송합동토론회에 참여한 여덟 명의 예비 주자들은 안 원장의 출마 여부을 묻는 질문에 모두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안 원장의 지지도는 이미 일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박근혜를 표본오차 범위 안에서 앞질렀다.

반장선거서 누구 찍었을까

출마한다면 그는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것인가? 「안철수의 생각」의 대담자인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이 책의 여는 글에서 “모략과 음해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나서 싸우기엔 그의 권력의지가 약해 보인다”고 썼다. 내 눈에도 완주하기엔 그의 권력의지가 박약해 보인다. 선출직 공직에의 도전은 권력에의 의지가 필수적이다. 당선의 제1 요건이다.

선거는 50%대의 지지를 얻고도 5%대의 지지를 확보한 경쟁자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착한’ 사람들이 벌이는 게임이 아니다. 지지율은 5%에 불과하지만 지지율 50%의 후보를 이긴다고 믿는 확신범끼리 치르는 총력전이다.

안 원장은 중학교 때 어느 2학기 선거에서 반장에 당선된 일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가 그 날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궁금하다. 권력의지가 있다면 물론 자기를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면.
후보 검증으로 포장된 진흙탕 싸움을 돌파하기에 그는 아무래도 여려 보인다. 제정임 교수는 “안 원장이 대선에 나가서 망가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만일 대선 과정에서 가족이 상처를 받는다면 어떨까? 그의 딸은 미국에서 중고교를 나와 4년 만에 석사학위를 마쳤다. 화학과 수학을 복수 전공했다. 미국 유학을 보낸 것에 대해 그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가 미국에서 만학을 하느라 중학교 때 데려갔다. 거기서 중고교를 나와 국어도 잘 못하고 역사는 백지다. 미국에서 진학을 하는 게 유리했고, 어떻게 보면 좋은 대학에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치열한 대학입시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국을 돌며 젊은 세대를 다독거린 ‘국민 멘토’다. 그러나 대선 참여를 밝히는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딸은 그 암울한 현실로부터 도피시킨 파렴치한 정치인이라고 공격을 받을 것이다.

이런 비난을 그가 감내할 수 있을까? 그의 부인 김미경(49)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학을 마친 후 안 원장과 함께 카이스트를 거쳐 서울대에 자리잡았다.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인 김 교수는 미국 워싱턴주립대 법과대학원 법학박사로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의 변호사이기도 하다. 귀국 전엔 스탠퍼드대 법과대학원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법대와 의대 두 곳에서 논문을 썼다고 한다. 도미 전엔 성균관대 의대 부교수였고 안 원장에 따르면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부교수가 됐다.

하지만 그가 대선 모드로 전환하면 경쟁자들이 부부가 두 번이나 국내 최고의 국립대에 나란히 부임한 건 특혜라고 공격할는지도 모른다.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명예를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그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이 될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때 지지율 1위였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한 것은 무엇보다 권력의지가 허약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것도 권력의지가 약했던 탓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CBS는 케네디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앵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십니까?” 머뭇거리던 그가 장황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그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가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일까? 과연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도 되는 걸까? 에드워드 케네디는 이 인터뷰 후 인기가 추락 중이던 경쟁자 카터 대통령을 이길 기회를 잃었다고 한다. 결국 민주당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고, 카터는 변화를 요구하는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에게 백악관을 넘겨주고 만다.

박성민씨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그 목표에 걸맞는 인물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데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안 원장은 대담집에서 자신이 직업을 전환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기준, 그래서 가장 고민한 것은 개인적으로 뭘 많이 얻을 수 있나 또는 성공의 확률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였다고 밝혔다.

대선은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파노라마로 보여준) ‘영욕의 자리’를 얻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각축전이다. 그는 자신이 정치에 참여하느냐 아니냐는 자기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열망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막상 레이스가 시작되면 경쟁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수의 국민이 그를 스파링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챔피언 결정전에 뛰어든 정치적 신데렐라로 취급하려 들 것이다.

▲ 안철수 원장의 소통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대통령병 환자라고 매도할지 모른다.
어떤 유권자들은 국민 멘토로 위장한 ‘대통령병 환자’라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안 원장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사실상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이변이 없었던 한 그는 지금 시장실에 앉아 있을 것이다. 박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후 비판적 반응을 각오했었다는 그는 대담집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만 망가지고 다시 좋은 일을 하러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안철수에겐 자리 욕심 없을까

만일 대선 출마 선언 후 정치적 반대자들이 “왜 당신이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안 원장은 어떻게 대답할까? 과연 자리 욕심 때문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선선히 믿어줄까? 서울시장 후보 포기 때와 달리 도중하차를 한다면 이번엔 퇴로도 없다. 대통령은 만인지상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최대의 적은 그래서 안철수 자신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그가 레이스의 어느 지점에서 다른 주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다고 그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지미 카터처럼 퇴임 후 활동에 대한 평가가 더 높은 대통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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