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수활성화 대책 괜찮나

▲ 정부가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소비ㆍ민생 개선 대책’을 내놨다. 내수활성화를 꾀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비판이 만만찮다. 가계 빚을 늘리는 대출 중심의 지원책, 저소득층 저축 독려 등은 내수활성화 기조와 상반된다. 고속버스 영ㆍ유아 카시트 설치는 정부의 의식 수준을 의심하게 할 정도다. 황당한 정책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 기껏 고생해서 만들어놨는데 반응이 차가우니 힘이 빠진다.” 기획재정부 내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23일 기획재정부는 침체된 내수를 일으켜보겠다면서 ‘소비ㆍ민생 개선 대책’을 내놨다. 가뜩이나 정국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나름 애쓰는 모습을 보고 호응을 보내줄 만도 하지만, 비판이 더 많다.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 내수침체의 근본원인은 ‘쓸 돈이 없다’는 직장인들의 한마디로 대변된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지만, 월 200만원을 못 받는 직장인이 절반(45.8%)에 달한다. 임금상승률은 역대 최저치다. 취직을 해도 고용은 불안하고, 이미 정리해고 된 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달이다. 퇴직한 이들도 대부분은 부실한 노후대책 탓에 불안하다. 집값에 맞먹는 수준의 전세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정부 말을 듣고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을 갚느라 허리가 휜다. 정부는 소비자물가가 안 오른다고 난리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직장인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죄다 씀씀이를 줄이고, 자영업자들도 죽어 나간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내수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내수활성화 대책을 단순히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 식으로 내놔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소비ㆍ민생 개선 대책’이 이런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는 점이다. 

먼저 정부 대책에는 비현실적인 방안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월~목요일 30분 초과근무를 하고 금요일 2시간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거다. 여가시간을 벌면 이를 이용해 소비를 하지 않겠느냐는 건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정시퇴근도 못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침체된 화훼업종을 살리겠다면서 ‘1테이블 1플라워’ 운동을 추진하자는 건 탁상정책의 전형이다.

현실 모르는 황당 대책 투성이

가족단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다닐 수 있게 고속ㆍ시외버스에 영ㆍ유아 카시트 장착 가능한 안전벨트 도입을 권장하겠다는 건 애를 데리고 한번이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내놓을 수 없는 발상이다.

소비촉진을 위한 정책인지 의심스러운 대책들도 많다. 저소득층 지원은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취약계층이 저축을 하면 정부 매칭방식으로 저축지원금을 주겠다는 건 저축 여력이 있는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정책의 취지가 엇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체당금은 기업이 부도나면서 직장을 잃은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인데, 체당금을 빨리 내준다고 소비로 연결될지도 의문이다. 체당금을 빨리 내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내수활성화와는 무관하다.

각종 지원 정책은 가계 부담을 줄여 소비를 늘리겠다는 건지 가계 부담을 더 늘려 소비를 줄이겠다는 건지 의심스럽다. 지원책들이 죄다 저금리 대출 확대와 상환기간 연장 등에 맞춰져 있어서다. 전ㆍ월세 대출금 확대, 생계지원을 위한 햇살론 대출 한도 확대, 임차보증금 대출을 신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보호무역주의에 따라 피해를 입을 중소기업들을 위해서 경영안정자금 대출금리를 인하하겠다는 건 정부가 외교역할을 내팽개친 채 자생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아무리 정상적인 외교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지만 심각한 고민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실시했거나 실효성이 없었던 대책을 재탕한 경우도 있다. 임금체불 사업자 단속과 처벌 강화는 지금도 정부가 강조하는 것들이다. 징수가능성 없는 장기 체납 건보료 약 1200억원을 결손 처분하기로 했는데, 이미 지난해에도 약 1030억원을 결손 처분한 바 있다. 재산이 많은 이들에게 많은 건보료를 걷는 징수체계 개선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다.

또한 조선3사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은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조선업계 지원의 연장선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이나 사업주훈련지원금 지급은 이미 노동자들에게 큰 득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푸드트럭 영업장소 발굴은 제도적인 장벽들이 많아 현실은 막혀 있는 상황이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A부터 Z까지 모조리 쓸모없는 건 아니다. 다만 쓸모 있는 정책이 그리 많지 않고 실효성이 높지 않은 정책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다는 게 문제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충분히 토론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고, 거기에 충분한 재원을 투입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비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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