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ㆍ23 내수활성화 대책 해부

▲ 87개 정책과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2ㆍ23 내수활성화 대책은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23일 또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말 발표한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소비제고 방안을 담았음에도 두 달도 안 돼 내수활성화 대책을 들고 나온 것은 그만큼 소비 둔화세가 심각해서다. 경제성장률 목표치 2.6%를 달성하려면 1분기에 적어도 0%대 중반은 성장해야 하는데 마이너스 성장까지 우려되는 판이다.

87개 정책과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맹탕 정책 투성이다. “경제 문제는 경제부총리에 맡기겠다”는 공언과 달리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직접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지만 메뉴만 화려하지 먹을 게 없는 ‘황교안표’ 탁상행정이다.

일본 제도를 본뜬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대표적이다. 한달에 한번 ‘가족과 함께하는 날(금요일)’을 지정해 두시간 이른 오후 4시에 퇴근해 가족과 쇼핑과 외식을 하며 돈을 쓰란다. 대신 그 주 월~목요일 30분씩 연장근로를 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현실에서 금요일 조기퇴근은커녕 월~목요일 퇴근시간만 늦출 거라는 게 근로자들 반응이다.

이미 평일에 두시간씩 야근하므로 금요일엔 아예 출근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금요일까지 야근해도 좋으니 일자리 좀 달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 근무가 원칙으로, 초과근무시 연장근로수당을 50% 가산해 줘야 하는 기업들로선 부담이 늘어나 달가워하지 않을 게다. 결국 공무원이나 공기업에나 해당되지 일반 근로자에겐 빛 좋은 개살구란 얘기다.

세금감면을 통한 호텔ㆍ콘도 요금 10% 인하 유도 방안도 마찬가지다. 호텔ㆍ콘도 요금은 정찰제가 아닌데다 다수 숙박업소가 예매 사이트를 통해 고시가보다 싼값에 손님을 받고 있다. 재산세 감면을 인센티브로 제시했는데, 소비자 혜택도 없이 숙박업소들만 감세 혜택을 볼 수 있다. 지방세인 재산세를 30% 깎아주면 가뜩이나 취약한 지방재정이 악화될 수 있어 지자체들이 선뜻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5월 초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최장 9일 연휴를 만드는 방안을 놓고도 정부 입장이 오락가락한다.

기획재정부가 고심해 내놨다지만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자체와 협의하지 않았거나 법을 고쳐야 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이 4월 중 나오거나 3분기 이후에나 실행 가능한 것들도 상당수다. 설익은 상태에서 발표부터 한 것인데, 대통령 탄핵 및 조기 대선 정국에서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아니면 말고식 대책은 정부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겨준다.

 

소비절벽 현상이 심각한 것은 돈 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 돈이 없어서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소비가 살아날 텐데, 2ㆍ23 대책의 상당수는 돈 쓸 시간이 없어 내수가 위축됐다고 인식하는 무능한 정부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구매력이 증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휴일이나 여가시간을 늘려준다고 돈을 더 쓰겠는가.

사람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다.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중하위층 소득은 줄고 있다. 1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가 입증하는 고용불안과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가계를 협공하고 있다. 농ㆍ축산물 등 밥상물가 앙등과 치솟는 전월세 등 생계비 증가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사중고四重苦다.

소비는 경제ㆍ사회 현상의 결과물이며 상당 부분 심리에 좌우된다. 경기에 민감하지만, 정치ㆍ사회적으로 불안하면 영향을 받는다.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대외변수야 우리가 어쩌기 어려운 한계가 있더라도 대내적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소비심리가 안정된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정반대다. 박근혜 대통령과 자유한국당은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는커녕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지연하는 전략에 골몰하고, 황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기념시계를 제작해 돌리는 등 대통령 코스프레에 바쁘다. 4당 체제로 개편된 국회는 당리당략에 빠져 민생법안 처리는 안중에 없고 조기 대선을 겨냥한 표 계산에 열심이다. 청와대와 대통령 권한대행, 여야 정치권 모두 입으로만 민생을 강조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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