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이유

▲ 커피가격에는 커피숍에 앉아 경험하는 것들이 포함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값도 싸고 맛도 좋은 1000원짜리 커피를 놔두고 굳이 5000원짜리를 마시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과시일까, 허영일까. 흥미롭게도 둘 다 아닐 공산이 크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상실과 좌절을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으로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작은 사치’이자 ‘경험 사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 투숙한 미국인 부부가 프런트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주변에 갈만한 데가 있나요?” 호텔 직원은 망설이지 않고 세인트마크 광장의 한 유명 카페를 추천했다. 그의 추천에 따라 멋진 건물들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향 좋은 커피를 마신 부부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카페를 나왔다. 이날 부부가 커피 두 잔을 마시며 지불한 돈은 30달러. 커피값으로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이렇게 답했다. “전혀요. 그 값어치만큼 충분히 누렸어요.”

부부가 커피값이 전혀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로지 커피가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였을까. 아니다. 향기로운 커피 외에도 카페의 멋진 인테리어,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옷차림이 주는 이국적인 이미지, 친절한 직원의 미소, 카페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던 배경음악까지….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가격치고는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커피 한잔 가격을 고객이 체험하는 가치로 분석한 연구가 있다. 카페에서 지불하는 커피 한잔 가격이 5달러라고 하자. 이 중 커피의 원두 가격은 10~20센트에 불과하다. 원두를 가공해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데 드는 여러 비용은 25센트. 직원이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50센트다. 커피값 중 채 1달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머지 4달러를 어디에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연구에 따르면 그것은 고객이 카페에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다. 인테리어 장식과 음악, 직원들의 친절하고 신속한 응대, 고객에 대한 감사와 존중, 고객의 편리함을 위한 결제제도나 기타 도구를 갖추는데 쓰이는 비용이란 얘기다.

한 때 커피숍들이 과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원두가격과 커피 한 잔의 원가만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1000~1500원짜리 커피 맛도 좋다는데 굳이 5000원을 주고 비싼 카페에 가는 심리는 뭘까. 많은 소비자는 이를 두고 자릿값이라고 말한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렇게 쾌적하고 편안한 자리에서 눈치 안 보고 한두시간 앉아 있는 게 어디냐고. 카페는 누군가를 만날 장소로도 좋지만 혼자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이런 생각도 한다. 단돈 5000원으로 프리미엄 제품을 소비하는 최고급 소비자로서의 이미지를 즐기는 게 아닐까. 5000원으로 고급자동차를 사거나 명품가방을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급커피는 마실 수 있잖는가. 이게 요즘 유행하는 ‘작은 사치’ 트렌드다. 가만 들여다보면 작은 사치의 많은 부분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이다.

요즘 소비자는 경험사치를 원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겪은 좌절과 실망을 보상할 경험, 존중받고 낭비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원한다. ‘경험’이 원자재와 가공된 재화, 서비스의 뒤를 이어 제4의 시장재(economic offering)라 불리는 이유다. 경험사치가 죄스러운 낡은 세대인 필자는 여전히 1000원을 들고 편의점 커피를 사러 가지만 말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