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의 흔적 없는 나가사키

▲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남산에 있는 걸 아는 이들은 드물다. 더구나 최근 이곳을 찾는 이들의 상당수는 '포켓몬스터'를 쫓는 유저들이다.[사진=뉴시스]
일본 규슈 지역 항구도시인 나가사키는 일본 쇄국 시기에 대외개방의 관문이었다. 기독교가 들어온 유럽풍 오우라 성당부터 산업의 현장까지 수많은 유적이 바닷가를 따라 남아있다.

가장 발길을 끄는 곳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이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두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나가사키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보내고 10만명이 사망한 처참한 현장이 녹아버린 강철과 사진으로 남았다.

이곳을 들른 한국인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전범국인 일본이 반성은커녕 마치 피해자인양 피폭을 교묘히 활용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료관 입구에서부터 수없이 쌓인 종이학이다. 두살 때 피폭된 소녀 사시키 사다코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듣고 종이학을 접다가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사다코와 1000마리 종이학’은 평화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5월 히로시마를 찾아 직접 접은 종이학 4마리를 건넸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올해 1월 핑크색과 붉은색 종이학 2마리를 직접 접어 나가사키 시장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원폭자료관에는 2가지가 없다. 하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벌인 잔인한 침략과 수탈에 대한 내용이 없고, 징용으로 끌려와 억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에 대한 애도는 고사하고 이런 사실조차 밝혀놓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서울 한복판 남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가사키 원폭 기념관은 유료인데도 하루 종일 관람객들로 북적이는데, 무료인 안중근 기념관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연간 13만명이 찾는데 대부분 학생이라고 한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안중근 의사는 31세의 일기로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새 옷으로 갈아입고 뤼순 감옥의 형장에서 순국했다. 사형 전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는 유언을 남겼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에 안치된 가묘에선 쓸쓸함을 넘어 적막감마저 느껴진다. 안 의사 가묘 인근에 모습을 보인 시민들은 대부분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를 즐기는 유저들이고, 참배객은 거의 없다.

얼마 전 부평경찰서는 ‘STOP 테러!’라는 홍보물을 만들면서 안중근 의사의 단지 손도장을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안 의사가 30살이던 1909년 10월 거사를 모의하면서 혈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약지를 절단해 남긴 ‘비장함이 서린’ 손도장을 테러 방지 포스터에 쓴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퀴즈를 풀던 유명 연예인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제작진의 힌트에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대답해 실소를 자아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비폭력 민족독립운동인 3ㆍ1절이 98주년을 맞았다.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쫓기듯 합의는 했지만 국민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소녀상 갈등을 기화로 일본은 오히려 대사를 소환하는가 하면 독도에 대한 도발수위를 높이고 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면 반일감정이 최고조에 달지만 그뿐이다. 몇개월 뒤엔 기억에서조차 희미하다. 긴 안목보다는 국내용 일회성 이벤트에 치중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국제관계는 얼음장보다 차가워야 하는데 한국은 쉽게 끓고 쉽게 식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정신이 없으면 일본을 극복하기 어렵다. 사실 독도는 한국이 가장 풀기 쉬운 문제다.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한국 땅이자 고문헌의 자료가 차고 넘친다. 바꿔 말하면 제3국에게 독도를 설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는 어떤 현안에서도 한국은 외국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하는데 아직 동굴 안에 갇혀 있다. 촛불을 켜도 동굴 내부만 환해질 뿐 밖은 보이지 않는다. 북적거리는 나가사키와 인적이 끊기다시피 적막한 남산 안중근 기념관을 보며 역사는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는 자만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죽어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3~4일간 추도기간을 정하고 이곳을 찾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첫번째 건물입구에는 스페인 철학자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이런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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