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갑론을박

‘정경유착’ 근절법인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법을 개정하려는 정치권과 이를 반대하는 기업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재계의 논리는 상법개정안이 기업방어에 취약한 국내 기업이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구조 개혁이 이번에도 애국주의 마케팅에 무산될지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구조 개선, 경제구조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성장의 늪을 헤쳐 나오기 위해서는 노동개혁, 규제완화, 구조조정 등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우리 경제의 돌파구 마련될 수 있다”는 말로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변화하는 경제 패러다임에 맞춰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막는 손톱 밑 가시도 확실히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삼성물산-재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나타난 정격유착 등 구시대적인 행태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서다. 경제를 이끌어갈 기업, 특히 한국 경제의 주축인 재벌기업이 변하지 않는다면 구조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최근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법개정안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재벌 기업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어서다. 문제는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정치권과 재계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상법 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외국 투기자본 등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그렇다면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업의 경영권과 생존을 위협하는 악법일까. 경제민주화의 초석일까.

■감사위원 분리선임 = 재벌 기업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내용 중 하나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외이사와 별도로 선임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기업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계 투기자본이 지분 쪼개기를 시도할 경우 대주주보다 높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외국계 자본을 향한 과도한 우려라는 지적이 더 많다. 정성엽 대신경제연구소 팀장은 “기업의 행보에 차질이 발생할 수는 있다”라면서도 “외국계 자본의 성향이 매우 다양해 쉽게 한 목소리를 내긴 힘들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 신뢰를 잃고 이제 와서 외국계 자본 탓만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그동안 거수기에 불과한 사외이사를 등용해 감독당국을 위한 로비의 목적으로 활용한 게 사실”이라며 “대기업 사회이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데는 기업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꼬집었다.

■집중투표제 = 집중투표제는 기업의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것을 막고 소액주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재계는 ‘1주 1의결권’이라는 기본 원칙이 깨질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가 아닌 투기자본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사회 내의 균형과 견제를 통한 경영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 소액주주가 연계해 대주주에게 맞설 수 있어서다.

▲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상법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통과제가 통과하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감소, 이사회 기능 회복 등의 순기능이 더해질 수 있다”며 “이는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에 1~2명의 ‘중립적’ 이사가 진출한다고 해서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외국계 자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관 투자자들이 기업에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자투표제도 의무화 =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스마트폰ㆍ컴퓨터 등을 이용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소액주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재계는 악의적 루머 공격에 따른 투표결과 왜곡, 기업 비용증가, 오류ㆍ조작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법개정안

하지만 전자투표는 이미 확대되고 있는 추세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자투표제를 이용한 기업은 2015년 338곳에서 지난해 487곳으로 44%나 증가했다. 또한 전자투표 계약 기업은 2015년 416곳(유가증권 127곳ㆍ코스닥 279곳ㆍ기타 10곳)에서 올해 2월 기준 985곳(유가증권 289ㆍ코스닥 651ㆍ기타 45)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의 우려와 달리 비용도 저렴하다. 한국기업지배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투표 이용 시 예상비용은 2014년 기준(184개사) 378만원으로 기업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위해 발송하는 우편 비용 970만~1950만원 대비 최대 5배가량 저렴하다.

재계의 반대를 두고 대기업이 ‘슈퍼 주총데이’에서 볼 수 있듯이 주주총회를 요식행위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전자투표 행가기간은 주주총회 10일 전부터 주주총회 전일까지”라며 “전자투표제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소액주주의 의사반영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선임 = 사외이사에 근로자 등 추천자 이사를 선임해 거수기에 불과한 사외이사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기업은 회사의 발전보다 소액주주와 근로자의 이익만 주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의사결정의 늦춰 비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근로자 사외이사가 선임 시 근로자나 노조의 이익을 주장하는 일이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이사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결정을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비슷한 사례도 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2015년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추천한 사외를 선임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샀지만 사외이사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진보적 시민단체의 추천으로 사외이사가 선임돼 우려를 산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지배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중대표소송 도입 =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봤을 때 자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재계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경영권 침해나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한 투지자본의 개입이 예상된다는 이유다. 또한 소송을 남발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대기업은 상법개정안이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침탈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를 찬성하는 입장은 한 기업이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얘기한다. 기업의 구조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상황도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한은 물론 모회사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 일감 몰아주기 등의 지원, 자회사 합병 등 모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결정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과) 교수는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재벌 기업이 사익 추구에 집중하는 만큼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게 쉽지 않아 재계의 우려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지만 재계가 개정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며 “상법개정안의 취지는 신뢰할 수 있는 기업과 이사회를 만들자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Mini Interview

이정희 교수의 중소기업 육성책
中企를 ‘네트워크’로 묶어라

대기업 하청업체 A사. 설립한지 올해로 어언 24년, 기술력은 물론 성장성도 탁월하다. 해외 4개국에 공장도 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해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인다. 2개국에선 이미 철수를 결정했다. 잘 나가던 A사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원청업체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A사에 신사업 하청을 줄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밀령密令을 내렸다. 이 말을 철석 같이 믿은 A사는 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런데 웬걸, 대기업이 돌연 계획을 취소하면서 A사에 손실이 떠밀려왔다. A사 관계자는 “대기업의 일감을 받아야 하는 우리로선 항변조차 제대로 못했다”면서 “한국경제가 동반성장에 취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소기업 육성책’을 설파하면서 독일과 일본의 예를 든다. 독일에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강소기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거다. 대대로 기술을 전수하는 일본식 자영업을 배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분명히 좋은 취지다. 하지만 이상론에 가깝다는 지적이 더 많다. 중소기업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기업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대기업 그늘을 벗어나 어디 한번 커봐라’한다고 해서 갑자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와 독일ㆍ일본 등 경제 선진국들이 성장해온 배경이 다른데 같은 모델을 적용할 수 있겠느냐.”

결국 지금 필요한 건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대책이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중요한 건 기업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대기업의 비중을 줄이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비중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대기업에 흡수되지 않고도 가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교수는 그 대안으로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을 제시했다.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은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중소기업끼리 협업을 하는 구조다. 대기업의 계열화를 중소기업들이 모여서 한다고 보면 된다. 연구개발(R&D)에서부터 디자인ㆍ마케팅ㆍ유통 등 사업의 모든 과정을 각 중소기업이 도맡는다.

이 교수는 “대기업의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전문성과 안정성, 독립성은 높이는 게 이 제도의 장점”이라면서 “협동조합은 조합 내에서 자체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은 각각 독립된 기업들의 전문성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서구ㆍ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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