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곡성 ❷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귀신 씌운 사람들과 토속적인 굿판, 작두 타는 무당이 전체를 지배하는 영화 ‘곡성’은 조금 생뚱맞게도 누가복음의 한 문장을 자막으로 깔면서 시작한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뼈와 살의 ‘실체’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된다. 종교의 전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말씀’과 ‘약속’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하지만 가장 종교적이어야 할 예수의 제자들마저도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을 믿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영화가 결말을 향해 갈 때쯤, 악령으로 의심받는 수상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은 자신이 악령이 아니라는 것을 뼈와 살의 실체로써 증명하고자 한다. “내가 누군지 내 입으로 아무리 말해봤자 네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넌 내가 악마라는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날 만져보아라. 영靈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보는 것처럼 모두 있다.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누가복음 24장을 표절한다.

▲ 악령으로 의심받는 일본인(쿠니무라 준)은 "넌 네 의심을 확인하러 왔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다.[사진=더스쿠프포토]
흔히 영국 실증주의와 경험주의의 선구자로 14세기 윌리엄 오캄(William Ockh am) 신부를 꼽는다. 오캄은 공허한 사변思辨이나 수사修辭 대신 면밀한 관찰에 의한 판단을 중시했다. 오캄은 더욱 정확한 관찰을 위해 안경까지 발명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실증주의의 진정한 효시는 예수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을 선뜻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뼈와 살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부활을 실증한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은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예수도 자신의 부활이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제자들에게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증명하는데 성공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12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Thomas)에게 발생한다.

12제자 중 예수의 부활 현장에 없었던 유일한 제자인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나머지 제자들에게서 전해 들었을 뿐이다. 도마는 “내가 직접 못자국과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면서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다는 가장 신뢰할만한 11명의 모든 동료들로부터 전해 듣지만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8일 후 도마와 모든 제자가 모였을 때 다시 나타난 예수의 상처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도마도 비로소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됐다. 그로부터 도마는 ‘쓸데없이 의심 많은 사람(Doubting Thomas)’의 대명사가 된다.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도마는 사실 대단히 치열한 실증주의자이자 경험주의자였을 뿐이다.

▲ 수많은 '사실'이 쏟아지지만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거의 없다.[사진=아이클릭아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도마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대부분의 사실들은 우리가 직접 보거나 만져서 확인한 것들이 아니다. 도마가 예수의 부활을 11명의 동료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처럼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거나 배운 것들이다. 우리는 파리에 가면 개선문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마에게는 아마도 어림도 없을 일이다. 도마 같으면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서야 ‘파리에는 정말 개선문이 있다’고 선언할 것이다.

나라를 뒤흔드는 정치스캔들을 둘러싼 온갖 ‘사실’들이 쏟아진다. 직접 스캔들의 주인공들이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가까운 사람들이나 온갖 매체를 통해 전해 들은 정보들일 뿐이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무 쉽게 혹은 열광하고 혹은 분노한다. 열광과 분노가 충돌하면서 사회가 갈가리 찢어진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함부로 믿지 않는 도마의 ‘불신의 미덕’이 아쉬운 요즘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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