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간다고 쫓아서야…내 나침반을 가져라
남 간다고 쫓아서야…내 나침반을 가져라
  • 김미란 기자
  • 호수 230
  • 승인 2017.03.07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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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타오싱즈의 실천교육 사상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34년. 타오싱즈는 원래 이름이었던 즈징知行을 싱즈行知로 개명했다. 평생을 양명학 연구에 바친 한 양명학자는 타오싱즈의 이름을 보자마자 ‘그가 왕양명의 영향을 받았구나’ 직감했고, 타오싱즈에 빠져들었다. 2월의 마지막 날, 책으로 둘러싸인 서울 목동 연구실에서 정인재 서강대(철학) 명예교수를 만나 타오싱즈와 양명학,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 정인재 교수는 망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경제도 발전하지 못할 거라고 지적했다.[사진=천막사진관]
잘못을 해도 고개 숙이지 않는 사회, 흑백시비만 있고 논리는 없는 사회, 철학은 없고 돈만 좇는 사회. 정인재 서강대(철학) 명예교수는 “이게 다 철학은 온데간데없고 이데올로기만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인문학의 위기다’ ‘철학이 실종됐다’면서 인문학 되살리기 캠페인 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출세지향적인 사회구조 앞에서 인문학은 그저 하나의 이벤트이며, 수단일 뿐이다. 정인재 교수는 그런 사회를 개탄하는 대신 방향을 제시했다. “왕양명이 그랬고, 타오싱즈가 그랬던 것처럼 앎을 앎에서 끝내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 될 거라는 막연한 걱정, 망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벤처도, 기업도, 경제도 결국 더 발전하지 못하고 현실에만 안주하게 될 거라는 일침이다.

✚ 중국에서 타오싱즈는 어떤 인물인가.
“중국 교육에선 상당히 독보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에게 수학하고, 그를 중국에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자신 역시 중국 교육사에 획을 그을 인물이다.”

✚ ‘실천을 먼저 해야 한다’는 타오싱즈의 교육철학은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과 다르다.
“우리는 중국을 잘못 알고 있다. 타오싱즈의 사상이 조직화돼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공산주의 사상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에 국가 통제가 심하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에 가보면 해마다 다르다. 건물뿐만이 아니다.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번역서들이 있다.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거다. ‘개방적인 교육에 의해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는구나’라는 걸 타오싱즈를 통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 타오싱즈의 어떤 교육철학이 중국인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나.
“타오싱즈는 실천ㆍ실행을 강조했다. 타오싱즈 이전에 이미 내재된 사상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양명학 가르침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타오싱즈가 행지行知를 내세운 걸 보고 ‘아, 양명학의 영향을 받았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에 그의 스승인 존 듀이의 사상(실용주의)이 결합돼 타오싱즈 사상이 탄생했다.”

✚ 현재의 중국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공산주의 체제이지만 중국을 제대로 알고 보면 의외로 자유롭다. 벤처 육성도 활발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안주하려는 생각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다. ‘망하면 어떡하느냐’는 생각 때문인데 반대로 ‘나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물론 그들(벤처)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줘야 한다.”

✚ 중국이 싼 노동력을 기초로 해서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온 건 아니라는 얘긴가.
“노동자도 두뇌운동(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각을 하면 현장노동자들도 절차를 밟아 제도를 수정할 수 있다. 자율적으로 놔두면 알아서 잘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해 현지 노동자를 무시한다. 현지에서 그걸 가장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우리나라 특유의 기업문화인 ‘상명하복’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양명학이 비판하는 주자학의 골자는 득군행도得君行道, 최고 지도자의 마음과 행위를 지시받아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가 ‘나를 따르라’는 소수 엘리트 중심 사회가 된 이유다.”

✚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윗사람만 쳐다보면 안 되고 한 사람 한 사람 자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각민행도覺民行道, 백성 하나하나를 깨우쳐 도를 실천한다는 양명학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자기 입맛에 맞게 의식을 바꾸다보니 지금과 같은 위기에 당면해 있는 거다.”

한국 퇴보시킨 흑백논리

✚ 우리나라에 양명학이 퍼질 수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주자학이 중심에 있고,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생각한다. 한 예로, 성균관 관장을 선출하는데 양명학회 회원이 출마했다가 ‘왜 이단異端이 성균관 관장 후보로 나왔느냐’는 여론에 몰려 결국 떨어졌다.”

✚ 주자학 중심의 사회가 수직구조를 만들었다는 건가.
“주자학도 공功은 있다.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했는데, 주자학이 리더십의 동력을 제공했다. 주자학은 정리定理, 정해진 이치를 따라 간다는 가르침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선진국을 모델을 삼고, 부지런히 따라잡았던 게 주자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다.”

✚ 뭔가.
“따라간 뒤에는 자신만의 것으로 창조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약하다. 개인의 창조성이 결여돼 있다 보니 따라하려고만 하는 거다.”

✚ 사실 우리나라에선 뭘 하려고 해도 벽에 많이 부딪힌다.
“이데올로기화 돼 있어서 그렇다. 철학은 실종된 채 자꾸 이념에 의해 움직인다. 그걸 비판한 게 양명학이다. 이념화된 이데올로기, 그 벽을 넘어야 한다. 타오싱즈가 말한 자율성이 그 답이다. 남이 간다고 해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내 안의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결정해주는 등 의존성이 너무 높다. 이런 상태로는 민주화가 될 수 없다.”

✚ 진정한 민주주의도 우리보다 중국이 앞서게 될 수 있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자율성을 중시하지만 결국 중국은 국가주의다. 반면 우리는 과거 민주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보다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타오싱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타오싱즈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타오싱즈가 존 듀이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만들었듯이 우리는 서양과 중국, 일본에 우리의 전통을 더해 우리 몸에 맞게 만들 필요가 있다.”

✚ 그게 바로 선진교육 아닌가.
“교육이 선진화된 나라가 선진국이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인정하고 길러주는 것이 선진교육이다. 이데올로기는 흑백시비만 있고 논리와 철학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위기가 있다.”

✚ 우리는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있다.
“돈,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은 소인이라고 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소인 사회가 됐다. 제대로 교육이 안 돼서 그렇다. 자기 발전과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남에게 과시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변질됐다. 그러다보니 돈을 많이 벌고, 위로 올라가야 되는 사회가 된 거다.”

✚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너무 못살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보니 ‘잘 살아보자’는 게 목표가 됐다. 그런데 ‘어떻게’가 없었다. 그 바탕에 ‘다같이’ ‘남도 배려하면서’가 없었다는 거다. 그걸 잡아줘야 하는데, 교육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틀 속에 밀어 넣고 출세를 지향하는 교육이 됐다. 하지만 타오싱즈와 양명학은 그걸 지양한다.”

✚ 타오싱즈 사상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타오싱즈는 머리와 손을 함께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교육은 어떤가. 외우는 교육만 있지 실천교육이 없다. 오지선다, 찍는 교육뿐이다. 자기 생각을 펼칠 수가 없다. 정해진 틀 속에서 맞냐, 틀리냐만 기준이 된다. 안 틀리는 연습만 하는데 창의성이 있을 리 없다. 실행이 중요하다. 타오싱즈는 교육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주창한 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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