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중국의 대철학가

▲ 중국을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로만 바라보면 샤오미의 성공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당신은 중국과 중국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전히 중국을 짝퉁 제조국으로, 중국인은 돈이면 환장하는 ‘왕서방’ 쯤으로 생각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런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은 빠른 속도로 첨단산업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중국과 중국인에게 내재된 생각을 읽어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타오싱즈陶行知를 소개한 이유다.

“행동은 앎의 시작이고 앎은 행동의 완성이다.” “천번만번 교육해 진리를 구하고, 천번만번 공부해 진실한 사람이 되자.” 2007년 4월(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 시절)과 2014년 9월(스승의날 기념 베이징사범대 연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식석상에서 했던 얘기다. 이 선문답 같은 문장은 중국의 교육사상가인 타오싱즈陶行知(1891~1946년)가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타오싱즈의 교육철학 일부를 인용했다는 얘기다.

타오싱즈는 시진핑의 입에만 오르내린 인물이 아니다.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毛澤東은 그를 두고 ‘위대한 인민교육자’라고 했고, 중국 여류 정치가 송칭링宋慶齡은 ‘영원한 스승의 본보기’라 했으며, 중국 시인 궈모뤄郭沫若는 “2000년 전에 공자가 있었다면 2000년 후엔 타오싱즈가 있다”고 칭송했다. 타오싱즈를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로 추앙한 셈이다.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중국을 움직이는 이들이 타오싱즈를 이처럼 높게 평가하는 걸까.

타오싱즈의 생애부터 보자. 그는 1891년 10월 18일,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서셴歙縣에서 태어났다. 진링대학金陵大學(현 난징대학)에서 문학을, 미국 일리노이대와 컬럼비아대 교육대학원에서 각각 도시행정학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원래 이름은 타오원쥔陶文濬이었는데, 왕양명王陽明의 심학心學(이하 양명학ㆍ인식과 실천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강조하는 유학의 한 갈래이며, 주자학에 상반되는 실용주의 철학)에 심취해 양명학의 핵심가치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좇다 타오즈싱陶知行으로 개명했다. 그러다 1934년 타오싱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명했다.

그는 당시 중국의 교육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점에 착안, 양명학에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J.Dewey)의 교육이론을 접목한 ‘생활교육이론’을 내놨다. 이를 통해 ‘생활이 곧 교육’ ‘사회는 곧 학교’ ‘가르침과 배움은 하나’라는 걸 강조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타오싱즈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생에 무엇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 무엇을 가르친다. 인생에 빵이 필요하면 빵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인생에 연애가 필요하면 우리는 연애하는 생활을 보내야 한다. 연애의 교육을 받는 것이다. 어떠한 생활은 즉 어떠한 교육이다.” 타오싱즈는 비생산적인 논박에만 시간을 낭비하던 당시 중국 교육계에 실용을 입힌 셈이다. 

중국 교육체제 관통한 타오싱즈

1932년엔 효장사범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하이에 사회교육조직인 산하이공학단山海工學團을 창설, ‘어린 선생 제도小先生制’를 도입했다.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면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어린 선생 제도’의 도입 취지다. 이 제도는 1930~1940년대 중국 교육보급과 문맹퇴치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항일전쟁 직후인 1939년 7월에는 충칭重慶에서 특수한 재능을 가진 아동들을 교육하는 육재학교育才學校를 창설했다. 지금으로 치면 특별한 아이들에게 일종의 선행학습을 시킨 셈이다. 이처럼 타오싱즈는 단순히 교육철학을 이론적으로 설명만 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도전과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 보이려 한 실천가였다. 중국의 사회지도자들이 타오싱즈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타오싱즈 실험적인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는 뭘까. 바로 교육을 통해 ‘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는데, 이때 타오싱즈는 중국식 민주공화국을 지향했고, 그래서 강조한 게 ‘학생자치’다.

타오싱즈는 “교육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전제국가에 필요한 시민은 ‘통치당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반면 공화국에 필요한 시민은 ‘공동으로 자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민이 있기를 원하면 반드시 먼저 공동으로 자치할 수 있는 학생이 있어야 한다.”

그는 자치와 더불어 실천도 강조했다. “이전의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정신노동자만 가르치고, 육체노동자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지식계급은 정신노동만 하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엔 ‘책벌레’가 된다. 책을 가르치는 사람은 죽은 책을 가르칠 수밖에 없고, 책을 읽는 사람도 죽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몸에는 두개의 보물이 있다. 두손과 머리다. 머리를 쓰고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쓰고 머리를 쓰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머리와 손을 모두 쓸 수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가 된다.”

▲ 타오싱즈는 현대 중국의 교육 방향성을 제시했다.[사진=뉴시스]
실천에 관한 타오싱즈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타오싱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이 6세와 8세가 됐을 때, 이들은 타오싱즈의 후광 덕분에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는 ‘도련님’이 돼버렸다. 그러자 타오싱즈는 두 아들의 미래를 걱정해 자신이 스스로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급여도 5분의 1로 줄여 평범한 교장선생님이 된다. 가르침과 배움과 실행을 합일하는 것인 동시에 머리와 손을 함께 쓰라고 손수 가르친 거다. 

개인과 전체 공존하는 중국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생길 거다. “중국은 공산주의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다. 타오싱즈가 강조하는 자치는 민주주의의 가치다. 만약 이를 완벽하게 실천하려 한다면 중국의 정치체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타오싱즈의 교육철학은 중국에서 절대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철학도 이상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 중국에 존재하는 타오싱즈 연구회와 기금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85년 설립된 중국타오싱즈연구회는 중국 교육부 산하의 국가 1급 사회단체(비영리 민간조직)다. 중국 전역에서 23개 성급 회원을 갖추고 있다. 타오싱즈교육기금회의 모태인 중국타오싱즈기금회는 1984년 12월 중공중앙선전부의 비준을 거쳐 만들어졌다. 교육부가 업무주관단체이고, 중국교육과학연구원이 부속단체다. 중국 정부가 타오싱즈를 연구하고 배우는 일에 스스로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물론 타오싱즈의 가치를 중국 정부가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지, 혹은 통치수단으로만 적당히 이용하고 있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나라든 지향하는 가치대로만 나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중국이 스스로 타오싱즈의 교육철학을 받들고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중국엔 타오싱즈의 초상을 걸어둔 학교들이 꽤 많다. 타오싱즈 교육사상의 영향을 받은 중국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의 총리였던 리펑李鵬 전 총리는 타오싱즈 육재학교의 첫번째 제자이기도 했다.

중앙집권과 자치, 상충되는 두 개념이 중국에 공존하고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데자뷔가 느껴지지 않는가. 1970~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정치체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경제만 개방하겠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은 투 트랙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공산당 일당독재만으로 중국을 떠올리면 설명되지 않는 게 숱하다. 대표적인 예가 샤오미다. 애플의 짝퉁으로 출발한 샤오미는 낮은 가격과 양으로 승부했다. 지금은 짝퉁 꼬리를 떼어 내고, IT 융복합 제품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넘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제까지 중국을 미개한 족속쯤으로 낮춰볼 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만으로 중국을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가 중국의 대철학가 타오싱즈를 몰랐던 이유도 어쩌면 이 질문과 맥이 같다. 

▲ 「중국 현대교육가 타오싱즈」를 한글로 번역한 임형택씨는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유연한 국가”라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중국 바라보는 시각 바꿔야 할 때

첫째는 레드콤플렉스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 때문에 애초부터 색안경을 끼고 봤다는 거다. 우리가 여전히 좌익 독립운동가들까지 진정한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역사교육의 허점이다. 우리는 입시교육에 밀려 역사교육을 등한시한 지 오래다. 제 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를진대 남의 나라 역사에 관심을 기울일 리 없다. 셋째는 부에 기반한 막연한 우월감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인 한국에서 가난했던 중국은 배울 대상이 아니라 가르칠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지금껏 단면만을 보고 중국을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시장이 커지고 무역규모가 늘어나면서 중국 진출을 선언한 국내 기업이 수없이 많지만 제대로 안착한 기업 역시 많지 않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을 관통하는 또하나의 키워드 타오싱즈를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형택 「중국 현대교육가 타오싱즈」 역자 bdai4884@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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