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기업 무덤 된 이유

“13억명이 1개씩만 사도 13억개를 팔 수 있다.” 어떤가. 한국으로 변환해보자. “5000만명에게 1개씩만 팔아도 5000만개를 팔 수 있다.” 어떤가. 가능한 일인가. 한국인의 성향이 가지각색인 만큼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중국인을 우습게 봤다. 그게 패착이다.

▲ 이마트는 현지화 작업에 실패하면서 중국시장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 기업들은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역사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다. 기술력이나 상품성으로도 중국 현지기업의 제품을 한참 앞설 수 있다는 우월감까지 있었다. 진출만 하면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는 ‘낙관론’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낙관론 앞에 많은 기업이 무너졌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중국 진출 기업을 돕는 한 회계사의 쓴소리다.

중국시장이 개방된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먼저 진출해 시장만 선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13억명의 인구가 한달에 한 제품을 한번씩만 구매해도 한달에 13억개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가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급격하게 하락세로 전환한 기업도 수두룩했다.

대표적인 게 이마트다.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이마트는 한때 중국 내 매장을 27개나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적자의 늪에 빠진 뒤엔 재기에 실패했다. 이마트의 현재 중국 내 매장은 고작 7개. 명맥이 언제 끊길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롯데쇼핑 중국법인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798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3.5%나 줄고, 적자 규모는 1444억원으로 100억원 이상 늘었다. 적자 점포 폐점과 점포별 리뉴얼도 시작했다. 한국에선 글로벌 기업 월마트와 까르푸를 제친 국내 유통기업들이 중국에선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고전한 이유로 ‘현지화 실패’를 꼽는다. 중국 소비자들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거다. 중국 소비자들은 우리나라 소비자와 달랐다. 키높이 선반에 상품을 보기 좋게 가지런히 배치하는 방식은 중국인들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수록 물건값이 더 싸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성향 파악하기 어려운 중국인

중국 현지 마트들이 창고형 매장 형태를 띠거나 재래시장처럼 내부구조가 산만한 것을 눈여겨봤다면 파악할 수 있던 일이었다. 고기나 생선을 직접 만져보고 사는 중국 소비자의 특성을 간과하고 비닐랩으로 포장한 신선식품을 진열한 것도 유명한 실패사례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대로 외형키우기에만 집착했던 것도 패착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마트들이 중국 진출 초기에 무작정 신규 점포 출점에만 신경 쓴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한국 점포를 그대로 옮겨오기에 바빴을 뿐 현지인들이 원하는 점포를 구현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물론 기업의 경영 실패 이유를 단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 진출에 실패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꼭 끼어있었다. ▲중국 시장 이해 부족 ▲진출 전략 기준 모호 ▲협력사의 선별 및 평가 기준 모호 등이다. 결국 제2의 내수시장이 될 줄 알았던 중국은 생각보다 문턱이 높았다. 중국인들은 까다로운 입맛과 기준을 갖고 있었다. 인허가 장벽, 중국 정부의 정책 리스크, 다양한 소비 계층, 협력사 갈등, 빠르게 변하는 시장 등에 부딪히자 ‘13억명 동시 구매의 환상’은 깨졌다.

중국시장에 자리를 잡은 한국 기업들도 안심할 게 아니다. 중국 경기침체가 심상치 않은 데다 매출도 되레 줄어들고 있어서다. 여기에 중국 현지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향상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 특유의 중앙주도 정책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한 해외 투자 전문가는 “지금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중국 진출 성공 사례들이 향후 5~10년 내 실패 사례로 바뀔 수도 있다”면서 “‘중국에서 어떻게 성공할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중국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5년새 15%포인트나 하락했다. 2012년 10.5%에 달했던 현대차의 중국 내수시장 점유율은 2015년 8.9%까지 떨어졌다. 2011년까지만 해도 효자 노릇을 하던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법인(DICC) 건설부문은 적자가 이어지자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2007년부터 중국 내 타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던 금호타이어는 2011년 리콜 사태를 시작으로 현지 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 그사이 중국 신생기업들의 저가 공략에 금호타이어는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잘나가던 기업도 하락세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임에 틀림없다. 중성장기를 겪고 있다는 중국은 여전히 우리보다 배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내수진작정책은 시장 확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경제 성장이 소비자 소득 수준 향상과 구매력 증가로 이어진 점도 호재다. 물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부지가 확정되면서 중국이 우리 기업에 전방위 압박을 펼치고 있는 점은 변수다. 하지만 우리는 변수가 해결된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김기찬 가톨릭대(경영학) 교수는 “중국 시장은 넓고 소비계층도 다양한 데다 트렌드 변화도 빠르다”면서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 경영을 펼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제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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