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세계 금융위기 당시 한국 경제 사령탑이었던 윤증현(71) 전 기획재정부 장관(윤경제연구소장)은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말했다. 대선 정국에 들어선 정치권에는 “‘위대한 국민’이라고 치켜세우기 전 올바른 정치부터 하라”고 일침을 놨다.

▲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수를 진작하려면 의료ㆍ교육ㆍ관광 등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증세 없는 복지’론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이 정부가 국민에게 정직하지 않았던 거죠. 공무원은 진정성이 있고, 국민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무원은 소신을 갖고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하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 공무원은 테크노크라트로서 정부와 색깔을 맞출 필요는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할 직업군인이 ‘영혼 있는 군인’이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윤 전 장관은 2009년 2월부터 2년 4개월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그가 경제 사령탑에 올랐을 땐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난 뒤였다.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그는 취임 열흘 만에 2009년 성장률 전망치를 -3%로 수정, 발표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7% 성장을 약속한 747 공약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정부가 희망을 줘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논란 끝에 그가 물러서 -2%로 조정됐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로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청와대와 협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정부가 제대로 일하고 국민의 협조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정직하게 밝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맬 때입니다. 마이너스로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했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2009년 한국경제는 0.3% 성장했고, 이듬해엔 6.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 언론이 한국 경제가 ‘교과서적 성장’을 했다고 격찬했다. “부총리 타이틀도 없이 2년 가까이 하고 나니 몸이 망가졌습니다. 병원의 6개과를 다니다 청와대에 더는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편하고 좋은 자리에 보내주겠다고 극구 만류해 반년 더 하고 물러났죠.”

✚ 한국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상당히 비관적으로 봅니다. 상당히 큰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겁니다.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 수준에서 12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여러 원인으로 일자리는 부족합니다. 이 판국에 정치권에선 공무원 숫자를 늘리자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합니다. 교육제도도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어요. 고학력자가 너무 많아요.”

▲ 윤 장관은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사진=뉴시스]
✚ 다음 정부에 무엇을 주문하겠습니까?
“저성장이 고착화돼 고용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수출을 유지하는 한편 내수를 일으켜야 돼요. 내수를 진작하려면 의료ㆍ교육ㆍ관광 등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해야 합니다. 산업 구조조정도 해야 합니다. 글로벌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 상태인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 등이 대상이죠. 조선 3사를 다 살리려다가는 다 죽습니다. 노동 개혁도 해야 돼요.”

✚ 노동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온건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조차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됩니다. 노동 유연성을 제고해야 돼요.”

✚ 기업들이 많이 어렵습니다. 일부 기업들이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고요.
“기업에 대해서는 동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부 기업이 일탈한 사례가 있지만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수출해 국민을 먹여 살립니다. 기업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도록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반기업 정서는 나라 팔아먹자는 정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국민이 기업에 반감을 가지면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은 누가 합니까?”

✚ 반재벌ㆍ반오너 정서 아닌가요?
“반기업 정서로 연결되니 문제죠.”

✚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삼성물산 합병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삼성이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런데 차등의결권제 등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는 도입하지 않으면서 기업이 경영권을 승계하려 규정대로 한 합병만 문제 삼으면 안 됩니다.”

✚ 삼성이 뇌물을 줬다는 게 특검의 시각인데요?
“대통령이 돈을 내라는데 버틸 기업은 없습니다. 권력을 악용한 권부에 철퇴를 내려야죠.”

✚ 복지와 증세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증세해야죠. 조세부담률을 올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론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이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그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19.6%인데 25% 수준인 OECD 평균보다 많이 낮습니다. 점진적으로 6~7% 올려야 합니다.”

✚ 세목별로 세율을 어떻게 올려야 한다고 봅니까? 현행 법인세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국가간에 경쟁하는 시대 법인세율이 높으면 투자가 안 됩니다. 대신 공제와 비과세를 줄여 실효세율을 올려야 돼요. 소득세와 부가세는 손봐야 합니다. 새 정부가 전면적인 조세개편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 가계빚이 1400조에 이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뚜렷한 대안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부동산 시세가 절반 수준으로 폭락해도 부실채권이 그렇게 많이는 안 생길 겁니다.  LTV(담보인정비율)ㆍDTI(총부채상환비율)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죠. 일본 정부가 부러워하는 제도죠. 문제는 저소득층이에요. 그래서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해주는 겁니다. 빚 문제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지금 스탠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권한대행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도자라면 무릇 나라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죠. 정치인은 ‘위대한 국민’이라고 말하기 전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합니다. 정치인(statesman)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 다음 자리를 생각합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 중 걱정스러운 것들이 뭔가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가치 중립국이 아니에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기본소득 같은 발상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공짜점심이란 없습니다. 경제 분야는 반드시 기회비용이 따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내놓아야 돼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버려 놓으면(spoil)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거둔 성과로 세계 금융위기 당시 모범적인 경제 회복 외에 재무장관으로서 G20 정상회담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 금융위원장 시절 원칙을 세워 정치권의 외풍을 차단하고 생명보험사를 상장시킨 일 등을 꼽았다. 금융위원장 시절 LTVㆍDTI를 만들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