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로섬 게임의 방정식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9년 1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면서 한 말이다. 2017년 3월 10일 마침내 내려진 탄핵판결은 6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이 나라가 성장신화의 종말이냐 아니면 새로운 도약대로 들어서느냐의 갈림길에 선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 탄핵반대파들이 민주적 절차에 승복하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사진=뉴시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란 극언이 쏟아졌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의 신분이 자연인으로 바뀌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구금되거나 검찰과 법정에 불려 다니는 상황은 어쩌면 국민적 갈등을 분출하는 또 하나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탄핵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승복한다면 우리 공동체에 희망이 있다. 그러나 민주절차를 무시하고 헌재 결정에 불복종 운동을 전개한다면 한국 사회는 분열하고 표류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위기는 소통의 단절이 빚은 신뢰와 공존의 위기다. 4ㆍ19혁명, 5ㆍ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모든 대규모 시위는 국민과 권력과의 충돌이었다. 이번 탄핵 과정에서 벌어진 촛불과 태극기 집회는 국민과 국민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해결이 어렵다. 공상과학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소통의 문제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다리 7개 달린 생물체들이 탑승한 반원형 비행체가 지구촌 12곳에 일제히 출현하면서 인류는 큰 혼란에 빠진다.

침입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투입된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는 이들로부터 ‘무기(weapon)를 주다’는 첫 메시지를 얻는다. 놀란 지구인들은 전쟁 태세에 돌입하지만, 외계인이 말하는 ‘무기’가 총이나 칼이 아니라 ‘과학기술(테크놀로지)’과 ‘도구(tool)’를 뜻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위기는 종결된다. 소통 부재는 전쟁의 참화까지 부를 정도로 결과가 참혹하다.

 
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죄는 부패 대 반부패를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야당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대안을 찾기보다는 대권에만 골몰했다. 촛불은 국정농단에 화가 나 거리로 뛰쳐나왔고, 태극기는 안보불안과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가능성에 대한 불안심리로 맞불을 놓았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자성해야 한다.

2개월 후 누가 차기 대통령을 맡아도 고난의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탄핵 후유증으로 국론이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안보ㆍ경제 복합위기가 눈앞에 닥쳐와 있다. 북한의 도발은 거침이 없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의 통상압력 파고는 심상치 않다. 지금 서울에는 미국 대사도 없고, 일본 대사도 없다. 경제도 수출 홀로 버티고 있을 뿐 고용 모두 바닥없이 추락하고 있다.

영화 컨택트에는 ‘논제로섬(non-zero sum)’이라는 말이 소개된다. 제로섬은 한쪽이 얻는 만큼 다른 쪽은 잃는 역의 상관관계다. 그러나 논제로섬 게임은 이해가 상반되지 않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함께 승리할 수도, 패할 수 있다. 위기의 시대에 논제로섬을 실현하는 지름길은 소통을 통한 신뢰와 공존의 정신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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