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재테크 | 자영업자 재무설계 어려운 이유

자영업자의 재무설계를 할 때면 흔히 드러나는 실수가 있다. 가게 통장과 집 통장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디서 지출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수익이 뻔한, 아니 되레 줄 가능성이 더 높은 자영업자들이 ‘지출 통제’를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자영업을 할 땐 사업장과 집의 가계부를 따로 관리해야 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 하나. 사업장과 가정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 거다. 직원을 두지 않고 가족끼리 운영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문제는 사업장에서의 수익과 손해를 가정에서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익이 나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가정의 재무상황까지 나빠질 우려가 있다.

양영모씨는 20대 후반에 창업해 청년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5살 연상인 부인과 결혼, 가정도 이뤘다. 승승장구할 거란 생각도 잠시, 지인과 동업한 회사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운영 부실에서 비롯된 문제는 점점 커져 사업 규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악화일로를 걷던 양씨는 결국 폐업신고를 하고 말았다.

한번 실패했지만 그래도 양씨는 다시 ‘내 사업’을 택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퇴직 후 가장 많이 하게 된다는 ‘국민자영업’, 바로 치킨집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선택한 탓인지 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매출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양씨는 월 평균 2200만원을 번다. 가장 큰 지출은 본사에서 재료를 제공받는 비용으로 월 1200만원가량이다. 한번씩 뿌리는 홍보용 전단지 비용과 화재보험 등에 104만원 정도 들고, 본사보증금 100만원, 매장임대료 66만원, 매장관리비 60만원까지 하면 월 1530만원을 지출한다. 치킨집 차리느라 25% 고금리 대출도 받아 월 150만원의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다.

지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부부가 집의 관리비(10만원)와 통신비(20만원), 생필품(30만원) 구입에 쓰는 돈은 모두 합해 60만원. 식사는 주로 가게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따로 돈이 크게 나가진 않지만 재산세나 자동차보험료, 명절비용 등으로 월평균 23만원 정도 지출한다.

보험도 여럿이다. 국민연금(8만원), 국민건강보험(8만원), 청약(2만원) 등 규모가 작은 보험부터 상대적으로 납입 규모가 큰 보장성보험(47만원), 저축보험(30만원), 연금(32만원)에도 가입돼 있다. 이렇게 양씨 가정에서 쓰는 돈이 월 평균 210만원이다.
매장과 가정에서 지출하는 지출 규모는 월 1890만원. 그렇다면 2200만원에서 매달 310만원이 남아야 하는데, 문제는 회계상에는 존재하는 이 돈이 어딘가로 사라져 남지 않는다는 거다. 매장과 가정이 분리돼 있지 않다보니 빠져나갈 구멍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돈을 벌긴 버는 것 같은데 통장잔고가 늘 황량하다는 양씨 부부에겐 잃어버린 돈을 찾는 동시에 매장과 가정을 분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장사는 되는데 남지 않아”

일단 매장부터 재설계를 했다. 재료비와 매장운용비, 대출금 상환, 본사보증금, 매장임대료, 매장관리비를 포함한 1680만원은 철저하게 매장 지출로 정했다. 매장에서 이것저것 지출하고 남는 순수익 520만원 중 400만원은 매달 부부의 급여 몫으로 25일마다 생활비 통장에 이체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120만원이 남는데, 이는 매장 비상자금으로 저축하기로 했다.

다음은 가정의 가계부다. 부부는 이제부터 고정적인 소득(400만원)이 생겨 가정에서 따로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관리비ㆍ통신비ㆍ생필품ㆍ비정기지출은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고, 주택청약ㆍ국민연금ㆍ건강보험ㆍ보장성보험ㆍ저축보험도 기존의 것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월 32만원 납입하는 연금보험만 해결하면 된다.

부부는 중장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2% 고정금리’라는 말에 혹해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연금이 아닌 종신보험이었다. 해당 회사 홈페이지에도 ‘이 상품은 저축이나 연금으로는 맞지 않습니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지만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탓에 잘못 가입한 거다.

사업 실패와 재창업으로 현금 여유가 없는 양씨 부부를 위해 종신보험은 해지해 비상자금으로 두기로 했다. 연금은 매장과 가정 양쪽에서 어느 정도 여유자금을 모을 수 있을 때 시작하기로 했다.

이로써 210만원이던 월 평균 지출은 연금보험 해지로 178만원까지 줄었다. 부부의 여유자금도 222만원(400만원-178만원)으로 껑충 늘어났다. 이 돈은 가정의 비상금 몫으로 두고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변수에 대응하기로 했다. 800만원이 모아지면 차차 연금 등 단기ㆍ중기ㆍ장기자금을 준비해볼 생각이다. 
김명선 한국경제교육원 선임연구원  bluemyung@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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