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최병오(64) 패션그룹형지(이하 형지) 회장이 최근 고향 부산에서 복합쇼핑몰 ‘아트몰링’을 오픈하고 유통업을 본격화했다. 무작정 상경해 사업에 손댄지 38년 만이다. 그의 금의환향錦衣還鄕 스토리는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 주고 있다. 3.3㎡(약 1평) 남짓한 동대문 옷가게로 시작해 매출 1조원대의 중견 패션그룹을 일군 그가 굳이 고향 부산에 쇼핑몰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 38년 만에 고향 부산에 ‘몰’을 건립한 최병오 회장의 금의환양 스토리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3일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서 열린 ‘아트몰링’ 그랜드 오픈식은 동네잔치 분위기였다. 다른 쇼핑몰 오픈식과는 사뭇 모습이 달랐다. 호스트 최병오 회장은 행사 내내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1979년 맨손으로 상경해 천신만고 끝에 내로라하는 패션그룹을 일구고 다시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보란 듯이 큰 쇼핑몰까지 세웠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오픈 테이프를 자르면서 기쁜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혔다. “어릴 때 추억이 가득한 고향 하단에 지역 주민을 위한 쇼핑몰을 열었으니 꿈을 이룬 게 아니겠느냐”는 소회도 밝혔다. 고향 사람들이 편한 차림으로 영화를 보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게 돼 무척 뿌듯하다는 말도 했다. 평소 “패션을 통해 행복을 나눈다”는 말을 많이 해온 그가 이번에는 유통을 통해 고향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게 된 것이다.

아트몰링(ART MALLING)은 ‘A URBAN TASTE MALLING’의 줄임말로 ‘도시인의 감성 놀이 공간’이란 뜻을 담고 있다. 연 면적은 5만8896㎡(약 1만7816평). 축구장 8개 크기로 부산 서부 일대에선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몰이다.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을 지향하며 3년 동안 건축비 1100억원 상당을 들였다. 패션관과 문화관 등 2개동이 마주보는 형태로 지어 내부를 ▲패션 ▲리빙 ▲외식 공간 ▲문화 공간 등으로 꾸몄다. 쇼핑은 물론 푸드 코트, 영화관, 문화시설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최 회장은 부산 서부 일대의 랜드마크를 꿈꾸며 이번 아트몰링을 건설했다. 또 20~30대 쇼핑문화공간 조성에 초점을 두고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나 대학생, 직장인 등 젊은 연령층을 주요 고객층으로 설정했다.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 특히 7층 CGV 멀티플랙스 영화관부터 17~18층까지 이어진 문화관 조성에 공을 들였다. 7층에 부산 서부권의 유일한 영화관이 들어섰고, 15층엔 문화전시회장 ‘B/O42’, 18층엔 옥상 야외 ‘아트가든’ 등이 자리 잡았다.

▲ 형지는 아트몰링이 제2의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 회장은 “문화시설이 아트몰링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지은 곳”이라며 “이를 통해 부산 서부권의 열악한 문화시설을 보충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쇼핑도 쇼핑이지만 고향 사람들의 문화욕구 충족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아트몰링 건설 이면에는 자수성가한 패션업계 백전노장 최병오의 고향 사랑 스토리가 짙게 깔려 있다. 대개 재벌기업 수준으로 기업이 커지면 시스템이 일을 하게 되지만,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우는 오너의 생각이 고스란히 사업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아트몰링 탄생도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애향심 하나로 세운 쇼핑몰

그는 언젠가는 고향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겠다는 생각을 평소 품고 다녔다. 10년도 넘는 2006년부터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고향 하단에서 부지를 사모았다. 그해에 하단동 용지 600㎡(약 181평)를 처음 매입했다. 회삿돈이 아닌 자기 돈을 썼다. 7년에 걸쳐 조금씩 땅을 사들인 결과 2013년에 부지 매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중간에 알박기를 하는 사람도 나타나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회고도 했다. 준공을 앞둔 어느날 건물 옥상에 올라 어릴 적 뛰어놀던 을숙도 갈대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최 회장은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일가친척이 아직도 아트몰링 인근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동네 영화관이 없어진 걸 못내 아쉬워한 나머지 아트몰링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들였다. 직원들도 고향 주민 중심으로 뽑았다. 아트몰링 170여개 입점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 800여명 중 95%를 하단 등 사하구 주민들로 채웠다. 

아트몰링 부근은 그가 어릴 때 뛰놀던 동네이자 장터가 있던 곳이다. 조상들의 산소가 근처에 있고 멱을 감거나 얼음 치기와 낚시를 했던 낙동강도 인근에 있다. 50여 년 전 조부와 부친이 운영하던 횟가루 공장도 근처에 있었다. 패션으로 커온 형지가 제2창업에 필요한 성장 동력을 고향에 세운 유통 거점 아트몰링을 통해 찾아 나선 게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그래서 든다.

그의 사업 이력에는 드라마 같은 데가 많다. 고교 2년 때 부산 국제시장의 외삼촌 페인트 가게 일을 거들며 사업에 입문했던 일(1972년), 서울 반포에서 빵집으로 재기한 에피소드(1981년), 동대문시장에서 ‘원더우먼 바지’로 대성공을 거뒀으나 원단 장사에 손댔다가 부도난 일(1993년), 다시 동대문시장 쪽방에서 형지물산을 세운 일화(1994년) 등등이 그것이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후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시작해 버버리힐스, 폴로클럽, 크로커다일 등의 브랜드를 앞세워 기반을 쌓았다. 특히 30~50대 여성 패션브랜드로 사세를 키웠다. 

그는 최근 몇년 동안 패션업 시황이 별로 좋지 않은데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냐는 업계의 우려 속에서도 영토 확장을 계속해왔다. 여성패션 중심에서 남성복ㆍ아웃도어ㆍ골프웨어ㆍ학생복ㆍ유통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2012년에 37년 전통의 남성복 전문 ‘우성I&C’를 인수했다. 2013년엔 여성 커리어 캐주얼 ‘캐리스노트’와 학생복 ‘에리트베이직’을 손에 넣고 새 고객 확보에 나섰다. 유통업 진출을 위해 서울 장안동 프리미엄 복합쇼핑몰 ‘바우하우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는 패션ㆍ외식ㆍ문화를 원스톱으로 즐기는 복합쇼핑몰로 이번 부산 아트몰링의 전초기지가 됐다.

매출 2조원 달성 견인할까

2014년에는 프랑스 명품 골프웨어 ‘까스텔바쟉’ 국내 상표권과 이탈리아 여성복 ‘스테파넬’의 국내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2015년엔 ‘에스콰이어’(구두)와 ‘에스콰이어컬렉션’(핸드백) 브랜드로 유명한 이에프씨를 인수ㆍ합병(M&A)했다. 이들을 통해 2013년 이랜드ㆍ제일모직ㆍLFㆍ코오롱인더스트리 등에 이어 패션기업 1조원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다. 형지는 이번 아트몰링 오픈을 계기로 패션에 이어 유통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아 제2의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아트몰링의 올해 매출 목표는 1200억원. 최 회장은 아트몰링이 2020년 그룹 매출 목표 2조원 달성에 큰 밑거름이 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을 전후해서 교통체증이 유발되고 주변 중소 상권에 피해를 주게 됐다는 반발에 직면한 것은 앞으로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다양한 브랜드 입점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의 유별난 고향 사랑이 형지를 글로벌 No.1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 키우는 일에 일조하게 될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