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리베이트의 늪

여기 참 이상한 일이 있다. 리베이트를 받은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았는데, 제공한 곳은 법망을 빠져나간다. 리베이트를 주면서 금전적 수혜를 입었음에도 그렇다. 제약사 리베이트가 ‘심각한 수준’까지 다다랐다. 규제를 강화하고, 법망을 촘촘하게 만들었는데도 리베이트 사건이 줄지 않는다. 대체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살펴봤다.

▲ 동아제약이 리베이트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동아제약이 또다시 리베이트 의혹에 휘말렸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14일 동아제약 본사를 비롯한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ST 3곳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수사를 맡은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이어서 자세한 사안을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적발된 리베이트 혐의가 동아제약 본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제약이 리베이트 사건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2월~2012년 10월 영업사원과 에이전시 업체를 통해 전국 병ㆍ의원 소속 의사들에게 약 44억2288만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았다.

당시 동아제약은 “의사들의 동영상 강의료를 정당하게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동아제약 의약품의 처방 유도를 위한 리베이트라고 확정했다. 지난해 3월 부산 남구보건소 의사가 리베이트를 받고 약을 처방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직후에도 동아제약은 리베이트 의혹에 휩싸였다.

동야제약은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P) 등급평가에서 제약업계 최고 수준인 AA를 받았다. 동아제약이 이 정도라면 제약업계의 리베이트는 관행에 가까울지 모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1~6월 리베이트로 적발된 제약사는 34곳, 액수는 약 78억원에 달했다. 그나마 ‘혐의가 있어도 입증하지 못했거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리베이트’는 제외한 수치다.
 

제약사 리베이트 수사를 담당했던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관은 “현재 드러난 제약사 리베이트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정황이 포착돼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약업계는 ‘리베이트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대체 왜 그럴까.

지난 2월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보도한 부산 남구보건소 리베이트 사건을 살펴보면,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을 왜 뿌리뽑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산 남부보건소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로 거론된 곳은 두곳이었지만,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가 구속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준 사람은 죄가 없는데, 받은 이만 죄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리베이트 제공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제약사다. 그럼에도 제약사는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리베이트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기존엔 제약사(영업직원)와 병원(의사) 사이에서 리베이트가 오갔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고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제약사는 판매대행사, 리서치업체 등을 끼워 넣어 ‘리베이트 유통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여 리베이트가 적발되더라도 제약사는 ‘판매대행사’를 희생양으로 내세우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됐다. 유현정 변호사(유현정 법률사무소)는 “대행사의 결산보고, 지휘보고 등 문건을 확인하면 입증할 수 있겠지만 1~2인으로 이뤄진 판매 관련 개인회사는 공시 의무가 없는데다 문건을 남겼을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둘째, 짧은 시효다. 리베이트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약사법 47조에 따르면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제약사와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2년 이하의 징역형은 공소시효가 5년(형사소송법 249조 근거)이다. 이 말인즉, 뒷돈 주고 의약품 팔아먹은 뒤에 5년만 버티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에서는 5년이면 충분히 길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리베이트 사건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리베이트 사건은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지 수년이 흐른 뒤에야 정황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판결이 내려진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도 실제 행위가 있었던 건 2009년~2012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 남구보건소 리베이트 사건에서 동아제약 직원이 기소되지 않은 이유도 공소시효가 지난 탓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이 “리베이트는 그 특수성을 따져 예외적으로 공소시효를 길게 두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솜방망이 처벌이 자행되고 있는 건 마지막 문제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약 44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받은 벌금형은 3000만원(과징금 제외)에 불과했다. 2009년 동아제약이 철원보건소 의사에게 1800만원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했을 당시에도 벌금은 500만원에 그쳤다.

리베이트를 직접 제공한 임직원의 징역형은 최대 2년, 해당 약품의 판매금지 기간도 3개월에 불과하다. ‘리베이트 쌍벌제(2010년)’ ‘리베이트 투아웃제(2014년)’를 도입하며 처벌 규정을 강화했지만 처벌 수준은 여전히 약한 셈이다. “솜방망이를 휘두르면서 겁주면 누가 무서워하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약가의 비정상적인 상한가’도 리베이트 관행을 잇는 원인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책정돼있는 약가(상한가)는 시장적정가에 비해 상당히 높다. 그만큼 마진이 많이 남는다는 건데, 그 마진의 대부분이 리베이트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의약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복제약은 더 심하다. 결국 리베이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약값을 적정선으로 낮추면 그만큼 리베이트 관행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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