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의원직 던진 노병

▲ 의원직을 내던진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더 늦기 전에 도전을 택했다.[사진=뉴시스]
‘맨 오브 라만차’는 미겔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작가는 미치광이 같은 늙은 망상가 돈키호테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이 더럽고 혼탁한 세상에 이상을 부르짖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그렇다면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헛된 망상일지라도 그 꿈을 간직해야 하는가. ‘맨 오브 라만차’는 헛된 꿈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노래한다.

김종인은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탈당은 곧 의원직을 포기를 뜻한다. 현실주의자와 실용주의자를 자처해온 그가 금배지까지 던지며 당 밖으로 뛰쳐나가 도모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튼 그의 도전은 신선하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 뇌물이나 성범죄에 연루되어 마지못해 의원직 사퇴를 했지만 자의에 의해 의원직을 던지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3가지로 요약된다. 올해 77세로 나이가 너무 많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 철새정치인이라는 점과, 따르는 세력이 별로 없어 조만간 제풀에 지쳐 포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먼저 나이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다. 강한 미국의 대명사인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0살이 넘어 재선에 성공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은 90살이 가까운 나이에 남방순례를 하면서 시장경제로 중국을 일으켜 세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70대이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 생각이 얼마나 진취적이냐의 문제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100세 시대에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김종인이 대통령에 출마해 공약대로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3년간 집권한 뒤 개헌으로 7공화국에 넘기고 물러난다면 나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고 국가시스템을 뜯어고치기에 딱 좋은 나이다.

두번째 비판인 철새정치인이라는 지적은 뒤집어 말하면 여야를 넘나들며 세상을 보는 혜안이 뛰어나다는 강점이 될 수 있다. 김종인은 ‘산신령’ 별명처럼 시야가 넓어 정치적 감각이 남다르다. 청와대 경제수석, 5선의원, 여당 책사, 야당 대표를 섭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정권교체와 국정안정을 동시에 바라는 유권자의 딜레마를 해소해 줄 내공을 가진 정치인은 흔치 않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3월 10일)에 이틀 앞서 탈당계를 던진 것도 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상징되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전이 될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나라는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서 무너뜨린다”는 말을 되새겨겼다. 1636년 청나라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앞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뒤 인조가 한 말이다. 이 땅의 정치인 중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투철한 안보관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세번째 비판인 따르는 세력이 없다는 지적은 그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정치는 세력으로 하는데 그는 아직 단기필마單騎匹馬에 가깝다. 권위적인 문화 종식을 위해 개헌과 대연정은 필요하다. 우선 문재인과 2파전을 벌이겠다고 별러온 안철수 전 국민당 대표를 빅텐트에 끌어들여야 한다. 나아가 강성 친박을 제외한 자유한국당, 더불어 민주당의 비문세력과 바른정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

손학규ㆍ정운찬 같은 대권주자들도 이 시대의 인재들이다. 모두가 킹(King)이 되려 한다면 지대와 연정은 찻잔 속 태풍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인 채로 남는다. 그러나 밀알이 죽어서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1990년 3당합당과 1996년 DJP연합의 이면에는 JP(김종필)라는 인물이 있었다. 먼저 자신을 던져야 희망이 보인다. 킹이 되려고 노력하되, 킹을 버릴 용기 또한 필요하다. 해거름에 산마루에 서서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더 먼 길을 떠나려는 용기를 가진 인간 김종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싸우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 중에서).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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