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는 왜 경쟁하지 않나

자고 일어나면 1위 사업자가 바뀌는 ‘혁신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은 10년 넘게 같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왜 경쟁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지금도 먹고 살만한데 치열한 경쟁으로 제살을 깎아먹고 싶지 않아서”라고 진단한다. 배부른 돼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탐욕이 문제다.

▲ 우리나라 이동통신 3사의 점유율은 '5대 3대 2'로 고착화됐다.[사진=뉴시스]

미국 4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티모바일이 최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티모바일원)의 속도제한 기준치를 올렸다. 한달에 28GB를 사용하면 적용되던 속도제한 기준이 30GB로 늘어났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혜택을 늘려 많은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개편이다. 미국 통신업계 1위인 버라이즌은 올해 2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2011년 폐지한 이 회사는 시장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시 꺼내들었다.

미국 이동통신 업계가 요금제 제도를 손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이동통신시장은 포화상태다. 가입자가 100%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가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거다. 결국 다른 회사의 기존 가입자를 뺏어와야 수익을 늘릴 수 있는 미 이통사들이 ‘요금제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미국 이통업계만 포화 상태인 건 아니다. 우리나라 이통업계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 이동통신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스마트폰 보급률만 따져도 8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내 이통사들은 태평하다. 미국업체들처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그 증거가 점유율이다. 국내 이통시장은 ‘5대 3대 2(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점유율로 고착된 지 오래다. 2015년 알뜰폰의 공세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50% 점유율이 무너졌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SK텔레콤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KT와 LG유플러스가 나머지를 나눠 먹는 형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나타내는 통계도 있다. ‘허핀달-허쉬만지수(HHI)’다. 이 지수는 시장 내 특정 사업자가 갖는 집중도를 보여준다. 1000 미만이면 ‘경쟁적’, 1000~1800은 ‘다소 집중된’, 1800 초과는 ‘매우 집중된’ 시장을 뜻한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의 집중도는 3752. ‘매우 집중된 시장’의 수치보다 2배 더 높다. 그만큼 점유율 구조가 굳어졌다는 거다.

고착화한 시장점유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2016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을 두고 경쟁이 활발하다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신규 사업자 진입이 제한된 시장에서는 후발 기업들의 전략이 중요하다”면서 “문제는 이들의 전략이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의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들 사업자의 기술력은 고만고만하다. 국내 이통사들은 전국에 빈틈없는 롱텀에볼루션(LTE) 커버리지(도달범위)를 확보하고 있다. 통화품질에서도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차이는 없다. 그렇다고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4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면서 강력한 유인책으로 꼽히던 보조금 경쟁이 제한됐다.

특정 사업자가 ‘파격 요금제’를 도입하면 치열한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통3사는 요금제 경쟁도 하지 않는다. 현재 3사가 운용 중인 데이터요금제는 큰 폭의 차이가 없다. SK텔레콤(밴드데이터요금제)ㆍKT(데이터선택요금제)ㆍLG유플러스(뉴음성무한데이터요금제) 등의 요금제를 비교하면 데이터 제공량과 추가 혜택의 사소한 차이만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신규요금제 출시 경쟁이 이뤄지고 있지만 요금구조와 수준은 비슷하다”면서 “오히려 신규요금제가 나올 때마다 이통 3사간 요금 수준 격차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왜 경쟁하지 않을까. 한현배 카이스트 통신공학 박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시장 점유율에 변화가 생기는 시기는 ‘혁신과 파격’이 등장할 때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환경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과 이후에도 점유율 구도가 그대로다. 혁신과 파격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만 해도 7465억원이다. 굳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미국의 티모바일은 지난해 약정과 보조금을 없애고 렌탈 모델을 도입하는 ‘언캐리어’ 전략으로 점유율 4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지금의 우리나라 통신 시장에서 이런 극적인 변화가 가능할 리 없다.”

파격 전략이 나오지 않는 이유

치열한 경쟁에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소비자다. 바꿔 말해 경쟁이 없다는 건 소비자들의 혜택을 볼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거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3사의 점유율이 ‘4대 3대 3’에 가까웠다면 소비자 후생이 10조원은 증가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면서 “통신요금 산정 기준도 불투명한 가운데 이통3사의 요금제가 대동소이한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쟁하지 않는 구조는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지금 현재의 가입자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서비스 투자를 강화할 필요가 없어서다. 이통 3사의 2014년 6조8710억원에 이르던 설비투자는 2015년 5조6983억원, 지난해 5조5788억원으로 떨어졌다.

이용구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이통 3사가 앞다퉈 신기술 개발을 공언하고 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금과 같은 구조가 유지되면 미래 먹거리 확보와 4차 산업혁명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통신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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