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리단길의 역설

▲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일대가 이태원 경리단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망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사진=뉴시스]

조용한 골목에 젊은 방문객이 늘며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곳곳에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가 눈에 띈다. 경리단길 못지않게 인기가 많아 ‘망리단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주택가였던 망원동의 풍경이 활발한 상권으로 바뀌고 있다.

흔히 ‘상권’ 하면 명동이나 강남처럼 대규모 유동인구를 기반으로 발달한 대형 상권을 떠올리기 쉽다. 소비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데는 편리한 교통과 주차장, 대로변 중심의 평지 등이 필수 요건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보통 상권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과 달리 망원동은 망원시장 방향으로 뻗어 나온 ‘포은로길’이 중심축이다. 이 좁다란 골목길에 소규모 가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간판도 제대로 없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단독주택을 개조했거나 상가주택 1층을 활용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다.

망리단길의 숨은 매력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가게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태원의 인기 상권인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딴 ‘망리단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사람 냄새 나는 망원시장도 이곳의 명물이다. 인근 공인중개소에는 투자를 문의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사실 망원동 일대는 투자자들이 몰려들 만한 상권으로 성장하기에는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 동네는 원래 주택가다. 인근 홍대ㆍ합정에 개발 광풍이 불 때도 망원동은 비껴갔다. 하지만 홍대와 합정, 연남동 등 인기 상권에서 지나치게 임대료가 치솟는 바람에 쫓겨난 임차 상인들이 망원동에 둥지를 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고깃집ㆍ미용실ㆍ주점ㆍ유흥업소 등 오래된 가게들만 즐비해 쇠락한 느낌이 들던 이 길에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ㆍ음식점ㆍ주점이 열렸다.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권이 형성됐고 망원동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층이 살던 지역에 고소득층이 이사하면서 임대료와 주택가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기존 거주자가 터전에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망리단길을 만든 셈이다.

망원동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게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상권에 만족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늘 새롭고 문화와 개성 있는 대체지를 찾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찾아가는 재미’ 덕분에 조금 불편한 교통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커피숍이나 음식점이라도 블로그 같은 SNS를 통해 금세 입소문이 나 골목 명소로 떠오른다. SNS 메시지로만 예약을 받는 곳이 있고, 간판 없이 인스타그램 주소로 위치를 소개하는 가게가 있을 정도다.

상권 전문가들은 이제 골목만의 스토리와 문화가 없으면 골목길로서의 생명력이 지속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이나 대기업 브랜드 가게만으로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도 없다. 한때 첨단 유행을 상징하던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나 문화ㆍ연예계 인사들이 즐겨 찾는 청담동 거리가 과거의 매력을 유지하지 못한 채 그 명성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망원동 상권의 인기가 지속가능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엇보다 망원동의 땅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망원동 상권의 보증금을 제외한 순수임대료는 3.3㎡당 10만3090원 수준. 홍대 일대(12만1440원)와 합정동(13만840원), 상수동(12만8330원)보다는 확실히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임대료 상승 속도가 여타 마포 일대 상권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2015년 말 대비 순수임대료 상승률은 21.1%로 합정동(16.6%)이나 상수동(6.59%)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6년 3분기에는 연남동 순수임대료(3.3㎡당 9만9545원)를 추월했다.

가파른 임대료 상승세

임대료보다 더 가파르게 오른 것은 바닥권리금(시설ㆍ인테리어 비용과는 상관없이 상권에 따라 형성된 최초의 권리금)이다. 과거 망원동 상가의 바닥권리금은 아예 없거나 10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4000만원까지 뛰었다.

건물 몸값도 상승일로다. 망원로2길에 있는 상가주택은 3.3㎡당 3400만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포은로길 인근 상가주택은 3.3㎡당 485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이마저도 매물 자체가 쏙 들어가 거래가 쉽지 않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의 공통된 설명이다.

아직도 망원동 골목 곳곳에는 주택과 빌라를 상가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지만 전문가들이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망원동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 골목을 찾는 소비자도 줄 가능성이 높아서다. 넉넉한 임대수익을 기대하는 것도 힘들다. 아직 본격적으로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1층을 제외한 2층 이상 점포나 사무실은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실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콘셉트가 없다면 주변 상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공산도 크다. 유행에 민감한 20~30대가 주요 소비층이라는 것도 문제다. 빠르게 성장한 상권일수록 지는 속도 역시 빨라질 수 있어서다. ‘뜨는 골목 상권’ 투자에도 리스크는 있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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