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영웅❶

요즘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면서 정치 뉴스 제목에 ‘패권’이라는 말이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패권이 우리 정치와 사회 모든 적폐의 근원이고, 패권청산이야말로 개혁의 시작이며, ‘반패권’의 처방은 만병통치약처럼 선전된다.

▲ 진나라는 강력한 부국강병책으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했지만 20년 만에 패망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종잡을 수 없이 어지러운 ‘패권’ 논란에문득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이 떠오른다. 중국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통하는 장예모 감독의 2002년도 작품 ‘영웅’은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하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제를 그렸다.

중국의 국가대표 감독답게 ‘영웅’의 출연진 또한 이연걸(무명), 장만옥(비설), 장쯔이(여월), 양조위(파검), 견자단(장청)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중국 국가대표급으로 드림팀을 구성한다. 스케일 또한 압도적이다.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배제하고 족히 수천, 수만이 돼 보이는 엑스트라들을 실제로 동원한다.

쩨쩨하게 인건비와 제작비를 따지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와는 무관하게 영화는 마치 중국여행 소개 프로그램처럼 중국 대륙이 품고 있는 찬란한 역사, 수려한 비경과 광활한 사막까지 훑는다. ‘영웅’의 스케일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수만명에 달하는 진나라 병사 엑스트라는 실제로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출연시켰다고 전한다. 제작비와 인력동원 모두 중국정부가 뒷받침했던 국가 프로젝트 영화였던 셈이다.

‘붉은 수수밭’ ‘황후화’ 등에서 구현한 강렬한 색채미로 널리 알려진 감독 장예모는 중국 사랑이 충만한 어찌 보면 애국 감독이라 할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중국주의ㆍ중화주의로 무장한 감독이기도하다. 세계를 향한 중국의 ‘대륙굴기大陸倔 起’ 선포식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을 장예모에게 맡긴 것을 보아도,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 조금은 난폭하게까지 느껴졌던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떠올려보면 장예모라는 감독의 ‘뇌 지도’를 대강은 짐작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영화 ‘영웅’이 남기는 잔영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그것과 묘하게 중첩된다.

장예모 감독은 ‘영웅’에서 중국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에서 시황제로 통칭되는 진시황제를 소환한다. 진시황제는 중원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업적만큼이나 논란도 많은 인물이다. 진시황제는 2000년 전 500여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라는 전란과 변혁의 시기를 마감하고 중원을 통일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오로지 성악설과 법치, 부국강병책으로 일관하는 강경법가 사상에 기반을 두고 백성을 일사분란하게 단속하고 전국시대 주변 7개국을 오로지 무력으로 제압해 나갔다. 영화 속에서 시황제(영정)의 진秦나라가 자랑했던 강력한 화살부대가 조趙나라를 향해 화살공격을 퍼붓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수만 수십만개의 미사일 같은 강력한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속수무책이다. 어떠한 설득이나 협상도 없다. 화끈하다.

그렇게 화끈하게 중원 통일의 꿈을 이루고 최초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벅찬 감동 이후에도 제국의 ‘통합’을 위해 그가 꺼내든 통치철학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대표된다. 법가사상 이외의 사상을 지지하거나 전파하는 선비들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법가 사상서와 실생활에 필요한 농사서와 복서卜書를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살라버리는 대단한 과단성을 발휘한다. 또 한번 화끈하다.

▲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는 흡사 진나라 화살부대가 조나라를 습격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사진=뉴시스]
그러나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진시황제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와도 같다. ‘한번의 화끈한 전쟁과 인명의 희생을 통해 끝없는 전쟁의 희생을 막는 것이 낫다’는 진시황제의 ‘전쟁 불가피론’과 ‘대大를 위해 소小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난폭한 ‘양적量的 공리주의功利主義’를 그대로 옮겨준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패권주의’의 정수이기도 하다.

국민은 ‘천하(국가)’ 에 종속됨이 마땅하다는 ‘국가주의’의 정수도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진시황제의 암살에 일생을 걸었던 절세의 두 영웅 무명(이연걸)과 파검(양조위) 모두 진시황제의 패권주의와 국가주의에 승복하고 스스로 사라져준다. 천하의 영웅들이 진시황제라는 장예모 감독의 진정한 영웅을 인정해준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패권 논쟁이 어지럽지만, 외부의 패권 논쟁도 어지럽다. 중국 주변의 독립국이 안보를 위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미사일을 배치한다는데 난데없이 중국이 당당하게 응징에 나선다. 인민해방군을 제외한 모든 폭력수단을 총동원하는 느낌이다. ‘말’ 폭력, ‘돈’ 폭력 모두 퍼붓는다. 영화 속에서 진나라의 화살부대가 조나라를 향해 화살로 하늘을 덮어버리는 기세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세계 최강들이 세계질서를 독점하던 시대 미국과 소련을 패권세력이라 규탄하고 반패권을 부르짖던 중국이 이제 스스로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에서 패권을 휘두른다. 항상 남이 휘두르는 패권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지만 자신이 휘두르는 패권은 정의로운 법이다.

그러나 주변국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고 책을 불살라버리는 패권을 추구했던 진나라는 천하통일 대업 20년 만에 막을 내렸다는 사실史實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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