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마케팅의 불편한 민낯

▲ 사은품, 할인쿠폰 등이 제품가격에 포함되는 이른바 ‘가짜쿠폰 마케팅’이 소비자의 권익을 해치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최근 한국GM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사은품 값을 자동차 판매가격에 포함해놓고 공짜인 것처럼 마케팅을 펼쳤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가짜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현혹했다는 건데, 문제는 이런 양심 없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가짜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취재했다.

# ‘아이스크림 40% 할인’. 대학생 유종우(가명)씨는 집에서 불과 10m 떨어진 마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마트 정면 아이스박스에 붙어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 광고피켓’ 때문이다. 어느샌가 유씨에겐 하굣길 마트를 들러 아이스크림 한봉지씩을 사가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씨는 의문을 품었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할인된 게 맞을까”라는 거였다. 유씨는 “40% 할인이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막상 계산하려고 보면 가격이 만만치 않다”면서 “편의점에서 사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정건호(가명)씨의 경우도 유사하다. 정씨는 최근 문자메시지를 통해 한 인터넷쇼핑몰의 할인쿠폰을 받았다. 마침 신발이 헐어가던 차에 정씨는 한달음에 할인쿠폰을 사용해 새 신발을 구매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인터넷을 서핑하다 자신이 지불한 금액보다 더 저렴한 가격의 동일 제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할인 품목도 아니었다.

돈 주고 사는 사은품

‘가짜 마케팅’이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할인 이벤트’가 아님에도 그런 것처럼 꾸며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숱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유씨와 정씨의 사례처럼 말이다. 가장 최근 ‘가짜 마케팅’으로 논란을 일으킨 건 완성차업체 한국GM이다.
지난 12일 한국GM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차량 판매가격에 선팅가격을 포함해놓고 ‘고급 선팅 무상장착 쿠폰’을 증정한다며 허위 광고를 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업계 관계자는 “미리 가격에 포함해 놓고 사은품을 증정한다거나 추가사양을 적용하는 행위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6만~7만원하는 선팅필름은 애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더 심각하다. 경쟁업체가 무수히 많은데다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가짜 마케팅’이 파고들 여지가 많다.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말 한 소셜커머스는 ‘성수기 특가상품’이라면서 올 1월 제주도 항공권을 할인가 2만5000원가량(편도)에 팔았다. 특가상품이니 환불은 안 된다는 조항도 덧붙었다.

이 상품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하지만 지난 1월 해당 항공사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한 같은 기간 항공권 가격은 2만원 중후반대. 소셜커머스가 ‘특가’라면서 판매한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할인쿠폰을 주겠다’면서 소비자를 꾀어놓고 경쟁업체보다 기본가격이 높은 제품을 파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소비자들은 할인쿠폰 등으로 값싸게 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제값을 다 치렀다는 얘기다.

위법인지 아닌지 구분 어려워

문제는 가짜 마케팅이 ‘위법행위’인지 ‘마케팅 수단’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가격의 기준이 없어 정가인지 할인가인지 알 길이 없다는 거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사무국장은 “공정거래를 위반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해쳤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프로모션 전후의 가격변동을 명확하게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가령 사은행사를 위해 1000원이었던 제품을 1100원으로 높인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소비자가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업체가 가격을 정할 때 적용할 만한 기준과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2010년 정부는 제품에 가격을 표시하는 권장소비자가격제도를 없앴다. 시장 내 자유로운 경쟁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업체 간 경쟁이 활발해지면 가격이 낮아지고, 자연스레 소비자의 이익이 커지는 순기능을 노린 셈이다. 하지만 기준점이 사라지면서 소비자가 제품가격을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어졌다. 처음부터 비싼 가격으로 출시한 뒤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영 상명대(소비자학) 교수는 “통조림 등 공장제품처럼 가격 비교가 명확한 제품을 제외하곤 소비자가 가격의 적정선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권장소비자가격이 판매가를 부풀린다는 주장이 설득력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소비자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준가격을 정하는 것도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